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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은규는 무기력하다. 자신을 한심하다고 여긴다. 물론 실제로도 그렇다. 밀린 월세, 삐쭉 튀어나온 수염, 키보드에 묻은 손때.
"대체 취업은 언제 할 거니?"
때마침 들려온 지긋지긋한 목소리, 말하자면 생물학적 모친의 목소리다.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저 그뿐이다.
그런 그에게도 한때 잘 대해준 이들이 있었다. 사실 그가 어렸을 적에는 모두가 그를 응원했다.
"몇 살이에요?"
"세 살 정도 됐어요. 자 아가 저기 봐야지. 세 살 해봐. 세 살."
그땐, 이 구역질 나는 광고들을 볼 필요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옛날이 좋았는데 참...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요, 밤마다 불끈불끈!]
"진짜 작작 좀 하라고!"
유튜브 추천 영상.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문득 자신이 한심해져 고개를 숙였다. 키보드 자판 하나가 뜯어져 있었다.
"뭐라고? 너 또 게임하니?"
다시 엄마의 목소리, 밖에선 방바닥 닦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인터넷 창을 켰다. 돈 꽤나 벌었다는 이들의 자서전이며, 유튜브며, 모든 걸 찾아봤다. 그들처럼 바뀌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아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뼛속까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성공한 그들처럼, 그렇게.
"부자들은 특징이 있어요. 그들은 축구 같은 하급 스포츠를 하지 않습니다. 골프를 하죠. 축구는 상당히 수동적인 스포츠입니다. 공만 바라보며 질질 끌려다녀야 하죠. 하지만 골프는..."
"안녕하세요 가난 전문의 장도현입니다. 여러분도 잘만 하시면 가난을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우선 돈을 쓸 때는 거리낌 없이 쓰셔야 부자가 됩니다. 아낀다 아낀다 하면 그 사람의 퍼스널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그조차도 납득하기 어려운 게 많았다. 하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알고리즘이 괜히 추천해줬겠는가? 그는 그들의 말을 메모하곤 외워보기까지 했다. 골프를 치고, 돈을 베풀고, 아 다음이 뭐였더라...
"또 또 쓸데없는 짓 한다. 딱 봐도 실패할 텐데."
엄마의 핀잔,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헛소리일 뿐이다. 그런 거지 근성에서 벗어나야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했다.
그는 골프를 하려 했으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직접 하는 대신 골프 영상을 보기로 했다. 그 외에도 부자들이 자주 본다는 카메라, 자동차, 시계 영상을 찾아봤다. 평소 즐겨 보던 아이돌, 게임 영상 따위는 끊어버렸다.
그렇게 보낸 한 달 동안은 모든 게 똑같았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 지긋지긋한 광고도 여전했다.
[자기야... 잠이 안 온다고? :) 쿠쿠라디오]
"에잇!"
하지만 세 달 즈음 지나자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왠지 다른 느낌의 광고가 떴다.
[차원을 넘는 쾌속을 느껴보세요]
자동차 광고였다! 태어나서 겨우 두 번 봤던 광고였다. 하지만 이내 국산 차 광고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약간 실망했다.
"확실히 부자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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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을 얻은 그는 미친 듯이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너무 많이 보면 역효과가 있다는 걸 깨닫곤 적당히 조절해야 했다.
"부자들은 아침 7시엔 조깅을 하니까... 아마 8시에서 10시까지 영상을 보겠지? 그때 자동차 영상을 보고... 12시부터는 워킹 타임! 그땐 클래식을 틀고... 음, 골프는 저녁 즈음에 봐야겠어. 혹은 주말에 봐야지."
그는 나름대로 루틴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루틴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이렇게 방구석에 앉아 부자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그의 궂은 노력 끝에 드디어 외국 차 광고가 뜨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스위스 시계 광고도 떴다. 시끄럽고 지저분한 광고와는 달랐다. 그것들은 깔끔하고 정중했다.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그런데 그동안 알지도 못했다니,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제발 정신 차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못 배운 사람, 무책임한 사람, 도와준 건 하나도 없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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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오래 기다렸사옵니다. 어서 빨리...]
"뭐, 뭐야?"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개 같은 광고가 다시 뜨기 시작했다. 어느새 수입차 광고는 사라졌다. 알고리즘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라디오니 게임이니 뭐니 끔찍한 것들이 튀어나왔다.
"대체 뭐가 문젠데?"
그는 오랫동안 고심했다. 분명 부자들이 본다는 영상을 봤었다. 그건 문제가 안 됐다. 하지만... 부자들처럼 썼던가? 그건 아니었다. 그는 그동안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하..."
밀린 월세도 못 내는 처지에 어쩌자는 말인가? 돈을 펑펑 써야 하나?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고 만다. 그를 저주하고 못살게 굴던 그 사람 말대로 돼버린다. 그렇게 될 순 없다. 절대 그렇게 놔둘 순 없다.
"저... 대, 대출을 좀 받으려 하는데요."
그는 무작정 아무 은행이나 찾아갔다. 은행이 안 되자 사채업자한테라도 찾아갔다. 그러지 말자고 생각해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쓰레기 같은 일상이, 광고들이, 잔소리가 그를 떠밀었다. 혀에서 피 맛이 났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것도 소위 상류층만 쓴다는 사이트였다. 30만 원짜리 골프공. 50만 원짜리 볼펜. 200만 원짜리 옷.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그의 입지도 올라갔다.
[세상의 끝으로, 알래스카 북극 여행]
[안데르망의 선택, 서울 플로랄 데카 그라지움]
알고리즘은 그에게 고가 여행부터 미술품까지 모든 걸 보여줬다. 심지어 가끔은 우주여행 광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느껴본 적 없는 짜릿함이 진동했다. 엄마 같은 사람들, 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절대 모를 일이었다.
"대체 월세는 언제 갚을 겁니까?"
무시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이제 그건 중요치 않았다. 사실 그의 인생조차 중요치 않았다. 하루 중 몇 시간만 누릴 수 있는 순간의 환희, 그는 그 환희에 절여졌다. 어느새 그는 그쪽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었다.
"오베르크? 폰세? 오늘은 뭘 들어볼까? 쉬르레알리즘적인 그런 거 없으려나?"
잔고가 떨어져 갔다. 모든 사람이 그를 질타하고 옥죄기 시작했다. 남 잘되는 건 못 보는 족속들. 하지만 알고리즘은 알고 있었다. 알고리즘만은 그에게 기쁨을 주었고 그를 이해했다. 어쩌면,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 딸을 죽인 범인을...]
아주 가끔 끔찍한 악몽이 엄습해왔다. 쓰는 돈을 줄이려 해도 그 악몽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그렇게 살 순 없었다.
"제 시, 신장이라도 걸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하나둘씩 포기해갔다. 빚은 순식간에 쌓여갔고 그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까지 알고리즘을 유지할 수 있을까?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더 이상은 100만 원짜리 휴지를 쓸 수 없었다.
똑똑. 종말이 문을 두드렸다. 에드바르스러운 엔딩이군, 그는 생각했다.
"이은규 씨 계십니까?"
아, 내 이름이 이은규였구나. 그는 안경을 벗었다. 그리곤 십만 원에 샀던 안경닦이로 문질렀다.
"마지막인데 좀 품위 있게 가야지."
그는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비명이 들렸다. 밖에 서 있던 사람이 거기에 맞은 듯했다.
"저 개자식이?"
"아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사채업자인지 형사인지 하여튼 누군가의 목소리,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 지긋지긋한 것들이 다가왔다.
이은규는 뒤를 돌아봤다. 한 사내의 매서운 눈초리.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는 뛰었다. 그제야 맨발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내도 그를 쫓아왔다. 되돌릴 수 없었다.
계단, 계단이 보였다. 발을 디뎌 올라갔다. 콘크리트 조각이 발에 박혔다.
그는 자신의 동네인데도 헤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마 형사인 듯했다. 사내는 이제 바짝 붙었다. 뜸 들일 시간이 없었다.
달렸다. 앞으로 달렸다. 건물 하나가 우뚝 솟은 게 보였다. 유독 높은 건물이었다. 달렸다.
"야, 거기 안 서?"
이은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는 데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가슴이 찌르는 듯했다. 고비였다.
그래도 달렸다. 이제 건물 출입구가 보였다.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범죄자라도 잡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저 새끼 잡아!"
누군가 소리쳤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말 무례한 사람들. 예전 같았으면...
넘어졌다. 누군가 발을 걸었다. 사내의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일어서야 했다. 일어서야 하는데,
뒷목이 잡혔다. 사내였다. 어느덧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위에 핸드폰이 가득했다. 유튜브에 올리려는 것 같았다. 한 40초짜리 되려나? 그러면 광고도 안 붙을...
"아우! 드디어 잡았네. 문자는 확인도 안 하더니."
사내의 우렁찬 비웃음. 피 맛이 났다.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 이게 삶인가?
그러나 뿌리칠 수도 없었다. 사내의 무게는 너무나 묵중했다. 도망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럴 힘이 없었다.
무기력이 그를 눌러왔다. 차라리 죽은 척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는 늘어졌다.
"잠깐만, 저 사람 죽은 거 아냐?"
그때였다.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이 저 사람 참, 저렇게 누르면 안 되지."
"아저씨 빨리 놓으세요!"
누군가 외쳤다. 점점 상황은 이은규에게 유리해졌다. 지금이 기회였다.
사내가 잠시 팔을 풀었다. 그는 잽싸게 일어났다. 그리곤 건물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도망간다! 잡아!"
뾰족하게 솟은 건물, 용도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들어가야 했다.
로비 직원들이 달려왔다. 그를 내쫓으려는 것이었다. 그는 달렸다. 카드를 찍어야 열리는 개찰구는 뛰어넘었다.
이제 계단, 계단이 보였다. 사내는 고함을 지르며 쫓아왔다. 시간이 없었다. 맨발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이마에서도 피가 흘렀다.
2층... 3층... 층수가 높아져 갔다. 피 냄새가 났다. 누군가 쫓아오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덧 끝이 다가왔다.
그는 유튜브를 열었다. 평소 자주 듣던 클래식 영상을 눌렀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 그의 몸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한편 휴대폰에서 광고가 흘러나왔다.
[당신과 세상을 잇습니다. 현대 엘리베이터. 고객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현대 엘리베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