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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best_1545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ovepoolΩ
추천 : 100
조회수 : 2384회
댓글수 : 1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7/01/03 15:59:40
원본글 작성시간 : 2007/01/03 14: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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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빠..
보낸 날짜 - 200x. xx월 xx일, 오후 21시 40분 34초
보낸 이 - “인연이라면”
받는 이 - Lovepool
소속기관 - 후니 오빠 마음속.
.
.
.
대학 병원, 밤 11시.
난 그날도 대학병원 1층에 위치해있는 컴퓨터 앞에서 그녀가 보낸 메일을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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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나야.
나 알지? 벌써 까먹은 건 아니지?
나 연아야. 아직 기억하고 있는 거지??
그래. 기억하는 구나. 그럴 줄 알았어.
시간 참 빠르지?
우리가 헤어진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첨엔 오빨 무척 많이 원망했었어.
아니 원망하는 정도가 아니라..정말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잠도 오지 않았어.
매일 뜬 눈으로 밤을 지샜고, 영문 모를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더라.
[헤어지자]는 네 글자 문자 한 통에 홀연히 자취를 감쳐버린 오빠라는 사람
을 용서할 수가 없었어.
나 이유라도 알고 싶어.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니가 이래서 싫어졌다, 너의 이런 점이 싫어졌다, 너랑은 성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등등..이유 많잖아?
나 오빠가 원하는 데로 변하고 고쳐나갈 마음까지도 있었는데..그랬는데...
왜 그랬어. 정말 왜..
............
지금 와서 이런 소릴 하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치?
오빠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추억으로 변해버렸어.
..^^
나 이젠 괜찮아.
웃기도 자주 웃고, 밥도 잘 먹고, 하루하루가 무척 행복해.
지금은 오빠 아닌 다른 그이가 내 옆에 있으니까.
그래. 사람이란 게 그렇더라.
전화, 문자, 편지 한통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을 마냥 기다리기에 1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더라.
하지만 나 너무 미워하지 마.
오빨 향한 내 마음이 어떠했었는지는 오빠가 더 잘 알잖아.
이제 마음이 편하다..^^
오빠가 이 메일을 볼지 안 볼지도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 다 해버리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
오빠. 나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
........
이제 그만 나타나주면 안 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어.
나 그렇게 생각 없는 여자 아냐.
그냥 난 오빠가 너무 궁금해.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아픈데는 없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그렇게
좋아하던 컴퓨터랑은 여전히 붙어 지내는지. 글도 잘 쓰고 있는지, 여전히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빠져 사는지..-_-;
오빠 항상 테란만 했었잖아.ㅎㅎ 기억나지?
매일 다크만 뜨면 GG치고 나갔잖아..ㅋ
소식 좀 알려줘.
날 위해 그 정도는 오빠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그 정도는 오빠가 당연히 해줘야 되는 거 아냐??
그거 알아?
이 메일 오빠한테 보내는 100번째 메일이라는 거.
이번에도 내 메일을 그냥 씹어버린다면..
정말 내가 다크가 돼서 오빠를 썰어 버릴테야 -_-
그러니까 답장해! 꼭!!!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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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서 온 100번째 메일.
...휴...그녀는 아직 잘 모른다.
난 다크가 떴다고 GG치고 도망간 적이 없단 말이다!!
훗. 모르고 있었는데 그녀와 헤어진지도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나보다.
쓴 미소가 입가에 맴돈다.
답장을 보낼까 말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마우스로 [답장] 이라고 쓰여 져
있는 곳을 클릭했다.
그리곤 긴 메일을 써내려가기 위해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는데..
바로 그때였다.
“아저씨. 나 카트 할래.”
내 뒤에 서 있던 꼬마아이가 날 보며 말했다.
“준철아. 저 아저씨가 먼저 와서 하고 계시잖아.
우린 다른 자리에 앉아서 하자.”
옆에 아버지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아이를 조용히 꾸짖는다.
난 아이의 아버지를 향해 썩은 미소를 짓고는-_-; 다시 내 앞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긴 한숨을 내쉬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제목 - 나 사실은..
“신발! 저 자리 카트 안 된단 말이야! 나 여기서 할래!!!”
아이의 갑작스런 외침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씩씩 거리며 화를 내고 있는 아이였고, 눈가엔 물방울이 주렁주렁 맺혀
있었다.
“이새끼가..진짜 아빠한테 혼나볼래?? 저 아저씨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야지! 왜 자꾸 아빠를 피곤하게 만들어??”
“아 몰라!! 카트!!!!!으흐흑. 나 이 자리에서 카트 할 거야!!카트!!!!”
나 그렇게 성격 좋은 녀석 아니다.
진짜 마음 같아선..꼬마를 카트에 태워 저 멀리 달나라로 좌석을 땡겨
버리고 싶었다. -_-
아이의 질질 짜는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던 난 인터넷 창을 닫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마야. 여기서 할래?”
정말 울긴 울었던 건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물을 깨끗이 감추곤 환하
게 웃는 아이였다.
“앗싸~~ 드디어 카트 한다! 이제 카트 한다!!”
아이는 내 자리에 앉은 지 1분도 채 안되어 컴퓨터에 잔뜩 몰입이 되어
갔다.
“에고. 죄송합니다. 애가 아직 어려서..”
남자가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마우스를 쥐고 있는 아이의 작은 손등을 바라보았다.
손등 혈관에 연결되어있는 커다란 링겔..
그랬다. 아이는 환자였다.
머리 쪽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아이.
마음 한 켠이 무척이나 쓰라려 왔다.
아이의 아버지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곤 돌아섰다.
그리곤 나 역시 오른쪽 손등에 꽂혀있는 링겔을 끌고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
갔다.
결국 그녀에게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까 그 아이 때문이 아니라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한 1년 사이에 나에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
너무나 끔찍해서 차마 돌아보기도 힘겨운 시간들.
물론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왜 그녀에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차갑고 잔인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는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낮엔 엘리베이터 주변에 사람들이 수없이도 많은데..밤이라 그런지 사람이
한명도 보이질 않는다.
가끔 이렇게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앞에 혼자 서 있으면 링겔을 든 채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춰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_-;
10층. 9층. 8층..
1층 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터.
멍하니 엘리베이터 문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왠 사람의 인기척이 느
껴진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
바로 내 옆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여자.
커다란 키에 허리 위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회색코트와 주름치마에 검정색 스타킹.
빨강색과 흰색이 잘 어우러져 있는 목도리,
목도리 위로 살짝 드러난 새 하얀 피부의 목선,
그 위로..화사한 느낌의 연한 분홍색 입술,
흠잡을 데 없는 코,
코 위에 있는..차가운 눈동자.
근데 그 차가운 눈동자가 왜 날 쳐다보고 있지??
“...........”
그랬다. 여자는 자신을 쳐다보는 내 눈길을 느낀 것인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다.
순간 깜짝 놀라며,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는
나였다.
하지만 옆에서 계속 느껴지는 여자의 시선.
분명 내가 자신을 훔쳐봤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왠지 억울하다.
“이 엘리베이터는 일반용인데요.”
옆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명랑하고 밝은 톤의 목소리였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런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뭐라구요?”
알고 있다.
그녀는 내가 입고 있는 환자복을 보고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냥 해본 말인 걸 알면서도 난 여자의 그 말이 은근히 기분 나빴다.
사람들이 무척 많은 낮에도 환자용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는 나였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난..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 죄송해요. 그냥 별 생각 없이 해본 말인데..
기분 많이 나쁘셨나봐요..”
표정에서 티가 났던가?
옛 말에 사람은 속여도 귀신은 못 속인다더니..
난 사람도 못 속이나보다-_-;
그녀는 날 얼마나 한심하고 속 좁은 놈으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다. 아니라고 말하자. 여유 가득한 미소를 짓고선 그렇게 말하는 거다!
그러면 그녀도 오해를 풀 것이다.
“조금요.”
헐..오늘따라 내 컨셉이 왜 이래??
아까 카트 꼬마한테 당한 복수를 그녀한테 하고 싶은 것이냐?
“다시 사과 드릴께요. 죄송해요..”
하고 말하며 날 향해 떨떠름한 미소를 짓는 여자.
문득 그녀의 괴상망측한 미소가 참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땐 눈빛이 너무 차가워 보여서, 도도하거나 싸가지 없는
그런 여자정도로 생각했었는데..지금 그녀의 눈빛은 180도 달라 보인다.
너무나 따스해 보이는 저 눈빛.
나의 모든 잘못과 실수를 이해하고 받아줄 것만 같은 저 눈빛..
저 눈빛에 퐁당 빠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정신 차리자. 그녀와 나는 전혀 모르는 사이다.-_-
뭔가 이루어질만한 껀덕지가 전혀 없단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를 마음에 둬서도 안 되고, 그럴 자격도 없는
녀석이다.
혹시 조금이라도 설레였다면..그래. 그걸로 만족하자.
그녀와 나 사이에 감도는 어색한 분위기속에,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오
고 있었다.
3층..2층..1층. 땡.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난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엘리베이터 안에 탔다.
그러자 날 뒤따라 걸어 들어오는 그녀, 우린 그 짧은 순간에 다시 눈이
찌리릭 하고 마주쳤다.
물론 나에게서만 찌리릭이고..사실 그녀는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 오른쪽 옆으로 다가와 서는 그녀.
그리고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은 다시 닫힌다.
그녀와 나 사이에 맴도는 이 분위기,
엘리베이터 안에 가득 맴도는 이 분위기..
그 분위기의 이름은..뻘쭘함.
“음음..”
“에헴...”
쓸데없는 소린 내지말자.
혹여나 그녀에게서 변태로 오인 받을 수도 있다.
안절부절 못하는 나와 달리 그녀는 차분하게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는 걸까.
마치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다.
1. 그녀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2.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리거나..
3. 엘리베이터 천장을 뚫고 귀신이 튀어나오거나..
4. 그녀와 나 사이에 어떤 인연의 실타래가 만들어지거나..
내 직업이 아무리 글을 쓰는 것이라지만, 지금 이런 상상들은 너무 소설같다..-_-;
몇 초가 흘렀을까.
엘리베이터 안에 은은한 향기가 풍겨져 온다.
뭐지? 이 향기의 정체는..?
엘라스틴 같기도 하고, 허브향 같기도 하고..아무튼 무척이나 좋은 냄새다.
내 머릿속을 멍하게 만들 정도로..
옆에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긴 듯싶었다.
잘 씻지도 않는 내 몸에서 이런 귀한 향기가 날리는 없고..
그녀에게..무슨 향기를 쓰냐고 물어볼까?
하지말자.;;
안 그래도 싸가지 없게 찍힌 이미지.
더했다간 싸대기 맞을지도..
“저기요..”
“네?”
내가 말 걸 것을 예상 못 했는지 깜짝 놀라는 표정의 그녀.
“머리에서 냄새가 좀 심하게 나는데..좀 그렇네요.”
순간 그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진다..
나 도대체 이 빌어먹을 주둥아리는 왜 연 것일까..?;;
아주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표정이 빨개져 있다.
단단히 화가 난 것일까? 아 정말 미치겠다. 나의 이 지랄 같은 성격 때문에..
아가씨.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제 입이 병신이라..-_-
하지만 그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상한 멘트..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혹시 무슨 샴푸 쓰세요?”
..-_-
“네???”
그녀는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이다.
이런 질문이 이어질 거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다.
신발; 몸 아프면 입이나 좀 닥치고 있지. 왜 자꾸 입을 열어서는..
저 여자가 널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겠냔 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벌하게 꼴아보면서 온갖 개폼을 다 잡더니..
갑자기..무슨 샴푸 쓰세요오..? 아 이 등신..
“풋...”
엥?? 그녀가 갑자기 웃는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미친 듯이 웃고 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까지 나는 걸로 보아 나의 좀 전 멘트가 기가 막힌 모양이다.
“푸풉..큭...아 죄송해요..자꾸 웃음이..풉..크크큭..아 정말 죄송..풉..”
더 이상은 안 된다. 어떻게든 수습해야한다.
오늘 보고 다신 안 볼지 몰라도 그녀의 기억 속에 나라는 인간이
정신병자로 기억 되선 아니 되게..-_-
아니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게 내 신상에 좋을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은 입만 열었다 하면 개 짓는 소리가 나오니 이거 참..
하지만 그때, 여자 쪽에서 입을 열었다.
“케라시스요.”
“네에? 쾌락? 쾌락시스..?”
“아뇨. 좀 전에 물어보셨잖아요. 케라시스 샴푸 쓴다구요.”
케라시스향..?
아아..케라시스향이 이렇게 좋은 것 이였구나.
예전에 연아는 시간 없다고 빨래 비누로 머리 감을 때도 있었는데..-_-
“저..근데..”
다시 날 향해 입을 여는 그녀.
“네?”
“지금 그 쪽의 이런 행동..작업 그런 거 아니죠??”
“...........”
..왠지 울고 싶어진다.
“그게 좀 그렇잖아요. 처음 보는 여자한테 샴푸 뭐 쓰냐 물어보고,
이런 거 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정말 그런 거라면 저는 이미..”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난 도중에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만하세요. 저 여자 친구 있어요.”
“아아..”
비록 1년 전 일이지만..아무튼 있긴 있었다.
갑자기 말이 없는 그녀.
물론 말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긴..지금 이런 분위기속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마치 광대가 되어 연산군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_-;
그렇게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는데..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양옆으로 활짝 열린다.
“어이쿠 깜짝이야!!~”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 있던 어떤 아저씨가 우릴 보며 깜짝 놀라 자빠진다.
저 아저씨. 왜 저러시지? 쇼하시나?
그나저나 여긴 몇 층이지?
바닥에 쓰러져있던 아저씨가 다시 일어나더니 우릴 향해 말한다.
“젊은이들! 사람 놀래키고 그러는 거 아냐!”
“네? 무슨 말씀이세요? 놀래키다뇨?”
“1층이라 텅 빈 엘리베이턴 줄 알았더만..
이렇게 사람이 타고 있었을 줄 내가 상상이나 했겠어?”
에? 1층이라니???
..아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태 엘리베이터 버튼도 안 눌렀구나.-_-;;
아저씨가 엘리베이터에 새롭게 합류하고, 6층 버튼을 꾸욱 누른다.
나도 그때서야 기억이 난 듯 내가 가야 할 9층 버튼을 누른다.
9층. 소화기 병동.
“위이잉..”
이제야 소릴 내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근데 이상하다??
나야 뭐 원래 이런 인간이니 그렇다 쳐도..그녀는 도대체 뭐지??
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은 걸까??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나와 눈이 딱 마주치는 그녀, 갑자기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아저씨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아하하. 크크큭..아하하. 풉.. 크큭..아 미치겠다..큭.”
그녀는 자신을 향한 아저씨의 눈빛을 느끼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겨운 듯 보였다.
그녀가 계속 웃고 있으니..나도 전염이 된 걸까?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크크크크..”
아저씨가 그녀와 날 번갈아 쳐다보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그래도 웃긴데 어쩌라고? 어쩔 수 없잖아.
“띵동.”
잠시 후 엘리베이터는 9층 소화기 병동에 도착 했다.
왠지 착잡한 마음으로 링겔을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러자 이번에도 날 따라서 9층에 내리는 그녀...
어라??? 그녀도 9층인가??
왠지 모를 아쉬움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을 못 떼고 있는데..
이번엔 그녀가 먼저 걸음을 움직인다.
내 앞을 스쳐지나가는 그녀..
난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는데..그녀가 갑자기 멈춰선다.
그리곤 내 쪽을 돌아보는 그녀.
“오늘 저 아저씨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얼른 쾌유하세요.^_^”
그렇게 내 앞에서 환한 미소를 남기고는..왼쪽 복도로 사라지는 그녀.
..........
갔다. 가버렸다..
케라시스 향기도 사라져버렸다.
내 가슴속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려올 만큼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1년 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 사라져 있었던 그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난 이 쓸데없는 감정의 최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길거리에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한번쯤은 마음에 쏙 드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겠지, 그럼 정상적인 남자인 이상 어떻게든 작업 한번
걸어보고 싶겠지, 연락처 한번 따내보고 싶은 거야.
난생 처음 보는 상대방의 외모에서 비롯되는 그 감정이 첫눈에 반한 것이
라고 착각하는 거겠지.
그래. 착각이야. 그딴 건 없어. 단지 그 순간 뿐 이잖아?
그 순간이 지나고 그 시간이 지나면..다 잊어버리잖아? 다 지워 버리잖아?
보통 어느 여자들보다 예쁘고 귀엽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날 향해 따뜻하게 한 번 웃어줬다는 이유만으로..
살다보면 가끔씩 생길 수도 있는 이런 독특한 상황만으로..
설레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흔들리지 말자.
그리고 그 감정이 좋아하는 것이라 착각하지말자.
어설프게 만들어지지도 않은 감정을 사랑이라 여기고..서로에게 입에 발린
말만 늘어놓고 지나친 요구만 하다가 결국 ‘스친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쓰레기통 구석으로 버려질 뿐이다.
사랑, 그 뒤에 숨겨진 가벼움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 자신을 향해 피식 웃고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걸음을 뗐다.
그리곤 내가 묵고 있는 병실로 향했다.
병실로 향하는 길.
항상 걷던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유난히도 멀어보였다.
“왜 이렇게 늦게 왔니?”
병실 안, 보호자 침대에 누워있던 어머니가 날 보더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냥요. 좀 늦었네요.”
“이 녀석아. 난 또 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참 엄마는~ 무슨 별 걱정을 다해요. 그냥 1층에 좀 다녀온 것 뿐인데.”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니? 지금 네 몸 상태가 얼마나 위급한지 모르고
하는 소리야??”
아아..듣기 싫은 어머니의 잔소리가 또 시작됐다.
항상 똑같은 얘기다. 내 몸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알았으니까 됐어요. 똑같은 얘길 하루에 몇 번을 해요.
그만해요. 스트레스 쌓이니까.”
“그럼 니가 걱정을 안 하게 만들어야지!!”
지금 어머니가 화내시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그럴만하다. 내가 부모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래.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처럼 난 그 누구보다 내 병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난 환자다.
크기 11cm, 그리고 작은 종양 4개를 간 쪽에 달고 다니는..간암 말기 환자.
빌게이츠가 말했다.
인생이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고 받아 들여라.
그 말을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느낄 순 없었다.
그런데 이 핵폭탄을 몸에 지닌 지금은..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무리 엿같고 원망스러워도..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다만 받아들이는 그 과정이 너무나 아플 뿐이다.
Written by Lovepool
..계속.
간만에 오유에 찾아왔습니다.
보다시피 그동안 몸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추천 한방은 절 힘나게 하겠죠?~
독자 - 아픈 새끼가 바라는 것도 많네 -_-
좋은 하루 되세요..
출처 : http://cafe.daum.net/Lovepool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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