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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거의 안 알려진 드레스덴 전투 상세한 분석.(역개루 펌)
게시물ID : history_154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rdien
추천 : 12
조회수 : 2605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4/04/24 22:27:43

부제: 괴수는 어떻게 2배의 적을 물리쳤는가.



[출처] 나폴레옹의 거의 안 알려진 드레스덴 전투 상세한 분석. -괴수는 어떻게 2배의 적을 물리쳤는가. (『역개루』대한민국 대표 역사 카페) |작성자 카카루말똥


나폴레옹의 잘 알려진 승리에 비해 비교적... 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전투인 드레스덴 전투를 간략히 다뤄보겠습니다.


13만 5천으로 21만 5천의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격퇴한 불가사의한 전투입니다.


많은 분들이 러시아 원정 이후 나폴레옹이 맛갔다고 알고 있는데 맛 안갔습니다. 진짜로 맛이 간건 백일천하 때였고 워털루 전투 전날 치질로 처방받은 아편을 빨고 최적의 공격시기인 아침에 잠에 골아떨어졌을 때가 정점이었죠.


어쨌든 이때도 그렇고 나폴레옹은 전성기때는 유럽 역사를 통틀어도 맞수를 찾기 힘든 괴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나폴레옹 전쟁 시키는 카이사르, 알렉산더, 징기스칸 등이 앞선 전술이나 장비, 질로 뒤쳐지는 적들을 청소냈던 것과 달리 유럽국가간 전술적, 장비의 차이가 거의 없었던 시기입니다. 나폴레옹은 이때 병사들을 바닥에서 자게 만들고 텐트는 한 개만 챙기는 전술로(자기꺼) 기동력을 극대화 시켜 짭짤한 재미를 보는데 이런 우위도 바그람 전투를 비롯 나폴레옹 후기로 가면 유럽 국가들이 군단제와 징병제, 텐트 없애기 등가 카피하면서 사라집니다.




때는 1813년. 나폴레옹은 러시아에 60만 대군을 꼬라박고 고작 수천명과 함께 돌아올 정도로 위기에 처했습니다. 20년간 나폴레옹과 싸웠던 베테랑들은 증발했고, 나폴레옹은 신병들을 이끌고 러시아 제국, 대영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스웨덴 왕국, 프러시아 왕국, 그리고 기타 독일, 이탈리아 국가들을 상대로 싸우러 프랑스 제국의 최전방인 독일로 향합니다.


연합군은 총 50만으로 열라 많았고 프랑스군은 다 합쳐도 30만에 무엇보다 대부분이 신병으로 훈련 시간이 부족하고 경험이 없었습니다. 연합군은 우글우글 프랑스의 국경으로 몰라들기 시작하는데...




나폴레옹은 루젠에서 17만 압도적인 병력으로 9만 3천을 붙잡고 프러시아-러시아 연합군을 격퇴합니다. 프러시아-러시아 연합군은 이날 폭싹 망할 뻔했지만 신병들의 경험이 없고 기병 부족으로 나폴레옹은 추격전에서 별 재미를 못본 데다가 양측 다 사상자가 2만 가까히 발생한, 승리지만 승리 같지 않은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바우젠에서 11만 5천의 프랑스군은 9만 6천의 러시아-프러시아군을 격파하는데, 연합군의 사상자 1만 5천에 비해 프랑스는 또다시 2만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피로스의 승리를 거두죠. 나폴레옹은 신병들의 질이 낮다는 것에 상당히 불안해 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에이, 천재라면서 그 많은 병력으로 승리에서 적군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사상자를 내내? 나폴레옹 그거 거품이구만." 생각해도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었으니...





그러나 한편 연합군에서는 나폴레옹에게 쫄고 있었습니다. 숫적으로 압도적이었는데 정작 루젠과 바우젠에서 집중된 프랑스군에 패배했기 때문이죠. 이들은 트라헨베르크 작전을 채택하는데, 요약하자면


1. 나폴레옹이 오면 튄다.


2. 그 틈을 타 나폴레옹이 지휘하지 않는 프랑스군을 찾는다.


3. 아군 병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면 그 프랑스군을 턴다.


4. 1~3을 계속 반복한다.


5. 나폴레옹의 병력이 적어지면 나폴레옹 본인을 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뒤 연합군은 나폴레옹만 보면 꽁무니를 빼고 휘하 원수를 털기 시작합니다.



그로베렌 전투에서 프랑스군(6만) 4천 5백, 반대로 연합군(8만)은 고작 1천명의 사상자로 승리합니다.


이어진 카바치 전투에서는 4천의 연합군(11만 4천) 전사자에 비해 프랑스(10만 2천)군은 무려 3만 3천이 갈려나가며 와해됩니다.


그나마 비슷한 사상자를 내며 승리했던 나폴레옹에 비해 휘하들은 신병을 가지고 연합군을 상대하면서 몇 배의 사상자를 내며 털리기에 정신이 없었죠.







1813년 8월 16일, 19만 5천의 러시아 짜르 알렉스드르 1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 프러시아 왕 프레드릭 3세가 이끄는 연합군의 주력은 드레스덴에 모인 8만 가량의 프랑스군을 포착합니다.


셋은 월척을 낚았구나! 하고 좋아하며 드레스덴으로 몰려가, 기지를 3면에서 압박하며 외각에 배치된 프랑스군의 방어 포대를 밀어내고 대포를 빼앗습니다. 프랑스군의 지원이 오기 전에 드레스덴을 함락시키려고 했죠.


외각 방어진이 무너진 결과, 프랑스군은 드레스덴에 갖히게 되고 연합군은 반 정도 숫자의 프랑스군을 3면에서 포위합니다.


여기까지는 압승의 전형적인 그림입니다.







np.png






이제 프랑스군을 3면 공격으로 전멸시키는 것만 남았습니다. 연합군의 총사령관 슈와츤버그가 공격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드레스덴에서 프랑스군의 함성이 울립니다.


"Vive I'Emperuer!" (황제 폐하 만세!)




그에 대한 세 황제와 왕들의 반응: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 1세: "제기랄, 나폴레옹이 왔어요. 도망칩시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2세: "아니 그래도 병력도 우세하고 적을 3면포위한 상태인데 후퇴라니... 에잇 모르겠다. 전하 생각은 어떠시오?"


프러시아의 프레드릭 3세: "(충격) 뭐라고요? 지금 한 남자가 나타난 것만으로 2.5배의 병력을 가지고도 후퇴하자고 하는 겁니까? 그게 말이나 되요? 나폴레옹이 갓이라도 되나?"


그래서 일단 왕들의 토론이 끝날때까지 전령이 총사령관 슈와츤버그에게 공격을 중지하려는 명령을 가지고 갑니다. 하지만 슈와츤버그는 이미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에 결국 프레드릭 3세의 주장대로 3면에서 포위공격이 시작됩니다.


8만 5천의 프랑스군 vs 19만 5천의 연합군.



나폴레옹은 함께 대려온 근위대를 투입시켜 전열의 붕괴를 막고, 수비는 휘하 원수에게 위임한 채 자신은 반격을 준비합니다. 연합군의 공세를 황제빨(...)로 병사들은 엄청 잘 싸웁니다.


은하영웅전설 언급을 아무대서나 하기는 그런데 이게 양 웬리가 특별한 전술보다 지휘력으로 라인하르트의 몇 배가 넘는 병력을 회랑 전투에서 막아내던 모습과 비슷합니다.


숫적 우위로 드레스덴 중앙의 보루가 탈취당했지만 프랑스군은 견뎌냈고, 연합군은 숫적 우위를 믿고 있었기에 모랄에 살짝 금이 갑니다.




역습의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기회를 포착했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그가 천재라도 3면에서 계속 공격을 받으면 솔방울을 수류탄으로 바꾸는 당시 시대상 오버테크놀로지의 능력이 없는 이상 오래 버틸 수는 없거든요. 나폴레옹은 모르티에에게 프랑스 군의 좌익(연합군의 우군)으로 치고 나가라고 명령, 아침에 연합군에게 밀려 내주었던 정원을 향해 프랑스 군이 진격 준비를 마칩니다. 연합군도 우측(프랑스의 좌측) 에서 프랑스군이 밀고 나오리라는 것을 보고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냥 정석으로 싸워주면 천재가 아니죠.


모르티에의 준비와 동시에 나폴레옹의 지시로 네이가 연합군이 보루를 선점한 중앙에 난데없이 기습공격을 가합니다. 중앙에서는 연합군의 형세가 가장 우위였기 때문에 이쪽으로 공격해 들어오리라 생각하지 못한 슈와츤버그는 이 갑작스런 돌격에 당황해 하며, 예비군을 투입해 네이의 돌격을 막아냅니다.


슈와츤버그: "후... 오른쪽을 치는 척하면서 중앙을 공격하다니, 역시 나폴레옹 다운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공격이었어. 하지만 이 정도의 병력 우위면 내가 더 뛰어나지."




나폴레옹: "페이크다 x신들아!"


연합군의 예비군이 중앙으로 투입되자, 주공->조공->주공의 페이크를 거친 나폴레옹의 주력인 모르티에 군이 본격적으로 연합군의 우익으로 치고 나옵니다. 당연히 우익을 보강해야 할 예비군은 네이의 기습공격을 막느라 중앙에서 싸우고 있었고(...), 지도를 보시면 좌측, 우측, 중앙이 전부 강에 의해 분리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공격을 연합군이 한번 실패했기 때문에, 연합군은 기세에서 주츰하며 밀리게 됩니다.


프랑스군의 우측, 연합군의 좌측인 부분 역시 연합군이 숫적 우세였지만 나폴레옹이 이쪽에는 아예 MAX 방어 세팅을 해놓아 전선 유지가 고작이었습니다.


연합군은 결국 전날 빼앗았던 우익의 정원을 베르티에에게 빼앗깁니다. 중앙에서는 비록 예비대의 투입으로 프랑스군의 진격을 막았지만 네이의 돌격으로 이미 보루를 재탈환했기 때문에, 밤이 깊어왔을때 프랑스군은 완전포위당하는 신세에서 벗어납니다.


위 지도의 병력배치가 이때의 상황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전히 숫적으로도 지형적으로도 3면에서 공격받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3면으로 둘러싸여 전멸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전날보다는 낫죠.


드레스덴에 완전히 갇혀 3면 포화를 당해야 할 뻔했던 프랑스군은 나폴레옹의 도착에 이은 철벽방어와 오른쪽을 치는 척 하면서 네이의 갑작스런 중앙을 향한 역습, 그에 낚인 연합군이 중앙에 예비대를 투입하자 실제 주력이었던 좌익부대로 오른쪽을 터는 현란한 공격으로 위와 같은 형세를 만들어 냈죠.





연합군의 원래 계획은 재빨리 드레스덴의 병력을 지원군이 오기 전 섬멸하려 했는데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날짜가 다음날로 넘어가게 되고, 늦게 당도한 프랑스군 5만명이 증원됩니다. 연합군의 후위부대 2만명도 합류.


병력 숫자는 8만 5천 vs 19만 5천에서


13만 5천 vs 21만 5천의 싸움이 됩니다. (손실이 있었으니 실제로는 적었겠죠.)


그리고 다음 날이 밝는데... 일단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연합군은 전투를 결심합니다. 글 처음에 언급했지만 실제로 나폴레옹이라는 존재에 심리적으로 쫄았을 뿐, 이쯤 되면 연합군도 나폴레옹의 전술 전략까지 다 공부하고 숙지해서 배낀 시점이었으니 숫적 우위는 필승이라는 생각이 있었죠. (그래놓고도 어제 낚인 건 안 자랑)





슈와츠버그는 나폴레옹에게 휘둘리는 것을 막고 압도적인 힘으로 전투를 끝내기 위해 전략을 입안합니다.


오스트리아 귀족의 연합군 병력 배치:


좌익: 2만 5천

우익: 2만 5천

중앙: 12만!


예비군 4만 5천.


슈와츠버그의 자신만만한 출사표:

"신이 어제는 나폴레옹에게 관광당했지만 오늘은 이를 만회해 보이겠소. 어차피 프랑스는 숫적 열세니 어제처럼 수세적으로 방어하다 이쪽의 공격이 주츰하면 기회를 엿봐 역습으로 나올 것이오. 수싸움에서 밀릴때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힘뿐! 나폴레옹이 잔머리를 짜내 술수를 부리기 전에 대군으로 드레스덴을 압박하여 적의 중앙을 돌파, 좌익과 우익을 분리하고, 적을 각개격파로 격멸하겠소이다. 전투는 시작되지마자 끝날 것이오."


실제 밤새 내린 비로 중앙을 제외한 양쪽 날개는 습지가 되어있었고, 공세를 펼치기에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양측에 병력을 수비모드로 배치시켜놓고 압도적인 숫자로(중군 + 예비군만 해도 나폴레옹의 전군보다 많습니다!) 중앙을 밀어붙여 전투를 끝내겠다고 결심하죠. 전날 예비대를 섯불리 투입했다가 망한 전례를 본받아 나폴레옹의 술수를 대비하기 위해 4만 5천의 충분한 예비대를 남겨두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이 배치는 전날처럼 전선이 지지부진하게 유지되는 것을 막고, 습지를 이용해 방어력이 강한 양 날개가 수비하는 동안 중앙의 대군이 적을 뭉게버리는 좋은 작전이었습니다.




코르시카 촌뜨기의 프랑스군 병력 배치:


좌익 3만 5천

우익 3만 5천

중앙 5만.


요새 수비 병력 1만 5천.


병력 배치를 보고 나폴레옹의 전략을 추측해 봅시다.




.

.

.

.

.

.



그렇습니다. 딱 봐도 좌우에 병력을 집중하겠다는 심산이죠.





이건 대화로 요약하자면:


슈와츠버그: "헤헤. 비가 왔으니 네놈도 양익에 병력을 집중하지는 못할것이야. 내 크고 힘쌘 해머를 중앙에서 받아봐라!"


나폴레옹: "연합군은 비가 심하게 내려 양익으로 진군해 오지 않고 중앙으로 밀고 들어올 것이다. 그 허점을 찔러 5만 병력과 요새의 1만 5천으로 적의 공세를 둔화시키고, 그동안 주력 양쪽 날개로 적 양쪽 날개를 밀어내 연합군을 포위할 것이다."


또 낚였습니다. (...)




물론 슈와츠버그도 이걸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었습니다. 3군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바보는 아니죠. 나름 경험이 많은 장군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연합군의 병력이 최대 16만 5천까지 중앙으로 밀고들어오는데 나폴레옹이 양익에 병력을 집중할 배짱이나 근거는 없었다고 생각했죠. 나폴레옹이 실제로 비가 내린 전선을 돌파해 연합군의 날개를 꺽는 걸 시도해도 그 전에 프랑스군의 중앙이 붕괴될 게 상식이었으니까요. 5만(+요새군 1만 5천) vs 12만(+예비군 4만 5천)의 싸움이었으니 그렇게 믿는 게 당연합니다. 비가 오는 습지에서는 수비가 공격보다 유리한 건 당연한 상식이 아니겠습니까?


슈와츠버그는 필승을 자신하고, 나폴레옹의 대패를 목격하기 위해 두 황제와 한 왕도 나폴레옹이 위치한 프랑스군의 좌측(연합군의 우측) 언덕으로 구경을 나갑니다.


그리고 다음날 전투가 시작되는데, 전투는 슈와츠버그의 의도대로 흘러갔을까요? 그의 계획을 보면 논리적이지 않습니까?


그의 작전 요약입니다:




비 때문에 습지가 된 양 날개는 공격이 불리하고 수비가 유리하다. 고로 프랑스군은 수비에 치중할 것이다.


천재 나폴레옹이 허를 찔러 프랑스 군이 만약 양 날개로 공격해 와도 그 전에 허약한 적 중앙을 붕괴시키겠다.


프랑스군이 만약 내 예상대로 골고루 병력을 집중한다면 중앙의 숫적 우위로 뭉게버린다. 그러면 분리된 양 날개는 간식거리지!


프랑스군이 내 움직임을 완벽하게 예상하고 중앙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시키면(연합군은 양측 날개에서는 수비만 할 계획이므로) 조금 저항이 강하겠지만 그대로 아군의 중앙 병력은 16만 5천! 역시 숫적 우위로 격파하겠다.


과연?










....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예측하시겠지만, 이번에도 그의 기대대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또다시 허를 두번 찔러(허 찌르기 좋아하시는 나선생) 슈와츠버그의 기대를 두번 배신합니다.


슈와츠버그: "비가 와서 양 날개는 수성이 유리. 프랑스군은 양 날개에서 수성을 할꺼다."


나폴레옹: "적은 우리가 양 날개에서 수성을 할 거라 생각할 거다. 기대를 배신하고 주력을 양측에 배치해 공세로 나간다."



슈와츠버그: "윽, 속았군! 하지만 양 날개 붕괴 전에 네 중앙이 무너질걸! 수비를 얼마나 잘해도 우리 숫자는 엄청나게 많다!"


나폴레옹: "그건 나도 알지. 중앙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찌른다!"



그날 아침, 2배 가까운 연합군을 향해 나폴레옹의 좌익과 우익이 기습적으로 습지를 건너 돌격을 시도합니다.


프랑스군의 3만 5천, 가장 날쌘 병사들로 구성된 우익은 전투가 한참 뒤에나 시작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연합군의 2만 5천 좌익을 두들겨 팹니다. 연합군의 중앙은 숫적 열세인 프랑스의 험악한 공격에 황당해 하면서 뒤늦게 중앙으로 밀고가 5만의 프랑스군과 교전을 시작합니다만, 연합군의 좌익 2만 5천이 전투에서 도주하거나 섬멸당하는 걸 중앙은 구경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가 와서 중군과 좌익의 통로가 다리 하나 빼고 막혔거든요. (...) 비가 와서 프랑스군이 수세로 나오다 역습할 거라고 생각했던 슈와츠버그 지못미. 반면 이걸 예측한 나폴레옹은 정말이지 괴수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좌익의 3만 5천도 비교적 반대편보다는 덜 습지인 평원을 가로질러 연합군의 2만 5천을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중앙에서는 연합군의 숫적 우세가 돋보였지만, 완전히 짱박혀 방어를 하는 5만의 프랑스군을 단기간에 밀어낼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나폴레옹의 우익과 좌익이 양측을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하자 슈와츠버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오늘은 쉽게 쓰지 않으리라고 숨겨두었던 예비대를 그쪽으로 방어를 위해 투입합니다. (....) 덕분에 프랑스의 중군은 더 오랜 시간 버틸 수 있게 되고...




연합군에게 3면포위를 당한 채 시작했던 전황이 반대로 프랑스군이 3면포위를 해나가서 연합군의 캐삭 시나리오로 가는 가 싶었지만... 항상 나폴레옹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공성전이 그의 발목을 잡습니다.


압승을 거둔 프랑스군 우익과 달리 좌익은 루브니츠 진지에서 연합군에게 발목이 잡힙니다. 아크레에서도 그렇고, 명장도 공성전은 딱히 방법이 없는 법. 나폴레옹은 두 번의 공격을 더 지시하지만, 번번히 실패합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자기가 직접 전장으로 나가 병력을 지휘해 루브니츠 진지를 공격합니다.











결과:


슈와츠버그 <<<<<<<<< 나폴레옹 <<<<<<<<<<< 루브니츠 진지.


슈와츠버그의 모든 예상이 빗나가고 그의 움직임이 전부 나폴레옹에게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테란의 우주방어를 연상캐 하는 루브니츠 진지는 나폴레옹의 공격을 견뎌냅니다. 게다가 시간이 흘러 4만 5천의 예비대가 증원되기 시작하면서 요새는 더더욱 방어를 강화하죠.


나폴레옹은 공격이 실패하자 짜증을 내며 본진으로 돌아갑니다. 가는 도중 망원경을 꺼내 연합군 진지를 살펴보는데..


오잉? 언덕 위에 멋진 옷을 차려입고 호위병이 있는 장교들이 보이는군요? 나폴레옹은 그냥 장교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패배를 관전하기 위해 1등석에 있던 왕과 황제를 비롯한 수뇌부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언덕에 포격지시를 하고, 전장을 느긋하게 구경하던 왕과 황제들은 포구가 자신들을 향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합니다.


그리고 발사된 포탄들 중 하나는 러시아 짜르 알렉삭드로서의 얼굴 바로 옆을 스쳐지나갑니다. ㅎㄷㄷ.


연합군 수뇌부는 경악해서 관람을 포기하고(...) 안전한 지대로 대피하죠. 그리고 나폴레옹의 라이벌이었던 프랑스 출신 모로 장군이 이 와중에 사망합니다.



그날 밤 나폴레옹의 루브니츠 진지에 대한 네번째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 연합군의 중앙도 숫적 우세에도 불구, 양익을 압박해 오는 프랑스군 때문에 제대로 중앙돌파를 하지 못하면서 전투는 다음날로 넘어갑니다.




나폴레옹으로서는 2배의 적을 상대로 전술적으로 압승을 거뒀음에도 진지 하나에 막혀 연합군을 포위섬멸하는데 실패해서 아쉬움이 컸을 겁니다. 루브니츠 요새가 무너졌으면 연합군은 아우스터리츠 보다도 심한 포위망에 갇혀 망했을 겁니다. 나폴레옹은 3일째의 포위를 완성하기 위해 준비에 들어갑니다만... 어떤 계획을 짰는지는 3일째가 벌어지지 않아 아쉽게도 알 수 없습니다.



한편 연합군 수뇌부는 모두 똥통에 빠진 듯한 침울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군의 기습공격으로 좌측 날개가 와해되고 우측에서도 밀려난 대다가, 중앙 돌파는 실패해 3면에서 2배의 숫적 우위를 가지고도 전부 실패한 기적적인 결과가 나와버렸으니까요.


물론 *아직도* 연합군이 불리하지는 않았습니다. 압도적 숫적 우세는 여전하고, 프랑스군의 주력을 오른쪽에 붙들어 놨으니 반대로 중앙돌파만 성공하면 프랑스의 양익을 양쪽에서 싸먹을 수 있거든요.


고대부터 전투의 정석은 모루와 망치인데, 루브니치 진지가 훌륭한 모루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연합군도 '지휘관의 능력'을 빼면 오히려 종합적으로는 유리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나폴레옹에게 이틀 연속으로 속아 전황이 슬슬 뒤집히려 하는 것을 보며 충공깽에 빠져 있었습니다.


수뇌부는 조심스레 왕과 황제들에게 퇴각을 제의합니다.


"나폴레옹은 상대 안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요."


그들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나폴레옹의 대포 사격에 언덕 위에서 불귀의 객이 될 뻔한, 특히 대포가 눈앞을 스쳐지나간 알렉산드로스 1세는 멍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렇게 연합군의 퇴각이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완벽하지는 못해도 연합군을 3면 포위한 상태. 밤을 이용해 도주한다 해도, 나폴레옹 정도의 천재면 그걸 포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전날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전투를 지휘했던 나폴레옹은, 그날 새벽 극심한 복통이 도져 참지 못하고 전장을 이탈합니다. (...)



나폴레옹이 배에 잠든 용과 씨름을 하는 사이, 연합군은 밤의 어둠을 틈타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복통 때문에 후방에 있다가 뒤늦게 상황을 알고 추격을 시작하지만, 신병들은 추적에 서툴렀고, 앞서 나폴레옹 휘하의 원수들이 연달아 패배하는 바람에 기병대는 부족해서 큰 피해를 주지 못하며 드레스덴 전투가 종료됩니다.






이 전투를 보면 '러시아 원정 이후 나폴레옹은 바보가 되었다.' 라는 말은 지극히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진지과 복통(...)이 적이었을뿐, 나폴레옹의 천재성은 이때도 적수가 없었죠. 워털루에서는 진지 + 복통에 치질과 주치의가 처방한 아편, 그리고 네의 기병대 꼬라박기 삽질과 그루쉬의 프러시아군 찾아 삼만리가 겹치며 웰링턴에게 패배하게 되고, 영국인들은 웰링턴이 더 뛰어난 장군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드레스덴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사상자는 1만명, 연합군은 4만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나폴레옹의 포위전이 성공했더라면, 그렇지 못해도 신병들이 아니라 베테랑들이 살아남아 싸웠다면, 그것도 안되도 기병대라도 있었다면, 그거조차 없어도 복통이라도 없었다면(...) 연합군의 피해는 어마어마했을 테지만 여러 요소가 겹쳐 연합군은 고작(?) 4만의 피해만 내고 퇴각할 수 있었습니다. 




드레스덴 전투를 요약하자면, 2배의 연합군이 프랑스군을 공격해 외각 진지를 무너트려 3면에서 포위망을 형성하고 두들겨 프랑스군의 전멸이 당연히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위 지도에서 나폴레옹이 도착했을 때 8만 5천의 프랑스군은 드레스덴의 검은 부분에 전부 갇혀서 포위당한 상태였죠.) 하지만 나폴레옹의 원맨쇼로 첫날에는 포위망을 완화시키고, 둘째날에는 반대로 적을 3면에서 포위해 버리는 천재적인 전술을 보여준 전투입니다. 심지어 연합군의 증원병력이 2만뿐이었던 이유도 나폴레옹의 지시로 프랑스군의 기동에 배후습격을 막기 위해 연합군의 증원병력이 그쪽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죠.


아우스터리츠에서 나폴레옹은 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속여 이길 수 밖에 없는 전투를 이긴 것에 비해, 드레스덴은 2배의 연합군에게 3면을 포위당한 프랑스군이 나폴레옹이 도착하고 보니 하루 뒤 반대로 적을 3면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 정도로 요약 가능하며, 실제로 루브니츠 요새가 떨어졌을 경우 연합군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게다가 마무리 부족이라 해도 1만의 프랑스군 사상자에 비해 연합군에게 4만의 사상자를 안겨주었으니 오히려 전략적으로 압승의 바탕을 깔아놓고 시작한 아우스터리츠보다도 순수 전술의 대결로 승리를 거둔 드레스덴이 더 놀라운 전과일수도 있지요.



나폴레옹에게 계속 속으며(3연벙) 밀려난 연합군은 천재가 괜히 전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에 휩싸이는데....





여기까지 읽었으면 나폴레옹이 왜 졌는지 이해가 안되시죠?


드레스덴 전투의 후기에 반전이 하나 존재합니다.



나폴레옹은 전투 전에 반담에게 3만 2천의 병력을 주어 연합군을 추격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추격은 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려두었죠.


하지만 반담은 연합군이 나폴레옹에게 호되게 당해 도주하는 것을 보고, 공을 세울 목적으로 서둘러서 깊숙히 추격합니다.


반담은 쿨름에서 1만 6천의 연합군을 보고 얼싸구나 좋다 하고 달려드는데.... 하루가 지나고 연합군 5만 4천이 반대로 반담의 병력을 포위해 버립니다. 프랑스군 3만 2천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항복해서 포로가 됩니다. (....) 이렇게 나폴레옹의 드레스덴 전투의 대승은 아니었지만 빛나는 전략적 승리는 몇 일만에 X맨 부하로 인해 증발해 버렸습니다.


3만 2천의 추격병이 사라지자 나폴레옹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연합군은 나폴레옹에게 덤비지 않고, 나폴레옹은 피하며 휘하의 부하들을 잡자는 철칙에 충실합니다.


나폴레옹의 부하들은 신병을 이끌고 나폴레옹처럼 기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연이은 전투에서 계속 패배하며 프랑스군의 전력을 계속 소모됩니다. 나폴레옹은 드레스덴을 기반으로 연이어 몰아쳐 연합군을 붕괴시킬 생각이었지만, 반담이 3만 2천의 견제병력을 고스란히 조공해 버리는 바람에 적을 견제하지 못하고, 나폴레옹이 가는 곳마다 연합군은 도주를 반복했습니다.



이리하여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자, 연합군은 나폴레옹 보스를 레이드하기로 하고 라이프치히에서 프랑스군을 포위하고 다굴을 하기 시작합니다. 17 vs 1의 열세는 아니었지만, 부하들의 연이은 삽질로 22만 5천명의 프랑스군에 비해 연합군은 2배가 넘는 1500문의 포와 38만 대군을 투입한 바, 나폴레옹도 답이 없는 지경에 몰립니다.


설상가상으로 저 22만 5천명 중 5만의 독일 소국 군들이 나폴레옹을 배신해 프랑스군을 기습했고, 라이프치히에서 나폴레옹은 17만 5천의 포위된 병력으로 배신한 아군을 포함한 43만의 연합군과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굇수 나폴레옹도 이런 숫적 열세를 뒤집지는 못하고 패배하게 되죠. 4년 전, 2차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9만 5천의 오스트리아군이 수비하는 다리를 6만 6천명으로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패배한 아스펜-에슬링에 이은 나폴레옹의 생애 두 번째 패배였습니다. 그때는 결국 바그람 전투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이제 프랑스로 밀려드는 50만이 훌쩍 넘는 연합군을 막을 역량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연합군까지 남쪽에서 침공, 프랑스는 혼자서 독일 소국들,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웨덴, 이탈리아 소국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러시아와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죠.





나폴레옹은 이대로 몰락했나요? 그건 아닙니다. 여기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워털루와 러시아만 징하게 우려먹어 그 사이 나폴레옹의 전투는 주목을 잘 받지 못합니다. 얼마나 잘 싸웠든 결국 졌으니까요.


라이프치히에서 무려 3만 4천의 사상자와 2만 6천의 포로를 낸 프랑스군은 전 지역에서 붕괴하며 내부로 자꾸 밀렸고, 나폴레옹은 파리로 돌아가 훈련조차 거의 못받은 신병 3만명을 지휘해서 싸우러 나갑니다. 프랑스군 전역에 흩어진 병력 전부를 합쳐도 8만 3천이었고, 연합군은 50만이 넘었죠.


그리고 나폴레옹은 6일 전역에서 3만 병력을 이끌고 프랑스 내부로 진입한 33만의 연합군을 상대로 기동하며, 그 중 프로이센의 명장 블뤼허가 이끄는 12만 대군을 4번의 전투에 걸쳐 격파합니다. (아줌마 여기 먼치킨이 있어요.)


실은 드레스덴 전투보다도, 어쩌면 이탈리아 원정과 아우스터리츠를 비롯한 나폴레옹의 전성기보다도 뛰어난 전략적 움직임을 보여준 게 이 6일 전쟁입니다. 드레스덴이 나폴레옹의 전술적 능력을 보여줬다면, 6일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막피 남은 보스 버프를 보여주며 미친듯한 기동과 전략적 움직임으로 적을 분산격파하죠. 그런데 이건 글을 쓰기에 너무나도 긴 내용이라서 개인적으로 다른 분들에게 알려드리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차례차례 러시아군 - 연합군 - 프러시아군 - 프러시아군을 무너트리고 6일 전역에서 나폴레옹은 4천명의 사상자를 낸 것에 비해 연합군은 2만명이 전사합니다. 명장 블뤼허는 '미친, 이건 말도 안 돼!' 하며 짱박혀 다른 연합군을 기다리기로 결정합니다.


8만 3천 vs 50만 연합군 +영국/스페인/포르투갈군이 밀려드는 가운데 거의 전 유럽이 가세한 연합군은 다시한번 충공깽에 빠집니다.


"이러다가 시간 끌리고 프랑스가 병력을 다시 모으면 우리 다 x밥 되는 거 아님여?" 라는 우려가 나타났죠.


결국 3월 9일, 연합군은 프랑스를 다 무너트린 상황에서 나폴레옹에게 혁명 전의 국경으로 돌아가자는 관대한 조건으로 화친을 제의합니다.


나폴레옹은 역시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있었기에(그런데 과연 과신이었을까요?) 그 제안을 거절하고 연합군과의 마지막 승부를 준비하는데....




나폴레옹의 연이은 승리소식을 들은 수도 파리는 배신을 결정하고 연합군을 맞아들입니다.


제국의 심장부가 떨어진 순간 더 이상 나폴레옹에게 희망은 없었고, 연합군은 이제 나폴레옹 퇴위 아니면 끝까지 싸울뿐이라며 밀고 들어오게 되죠. 결국 나폴레옹은 황제에서 퇴위하고 아들에게 형식적으로 자리를 물려준 뒤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부하들의 배신은 나폴레옹의 발목을 계속 잡았었는데, 프랑스 방어전에서 나폴레옹은 자신이 왕으로 만들었던 부하들과 친척들, 그리고 가족들이 전부 배신해 연합군에 붙음으로서 엄청난 열세에 시달렸습니다.





그 때문에 100일천하에서 '절대 배신하지 않을' 부하들을 골라 전투에 나갔다가 그들이 모두 나란히 삽질을 해주시는 바람에 (...) 워털루에서 패배하고 말죠. 워털루에서 지고 나서도 나폴레옹은 다시 군대를 모으려고 했고, 의회에는 나폴레옹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여기서 역사의 아이러니.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도왔던 동생 루시엔 나폴레옹은 이때 나폴레옹에게 의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스스로를 독재자로 선포한 다음, 강제로 병력을 징집할 것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때 루시엔을 제외하면 모두가 나폴레옹에게 등을 돌렸죠. 루시엔이 나폴레옹에게 또다시 쿠데타를 제안하며


"엄두를 내!" (dare it!) 라고 일갈하자 나폴레옹은


"아아, 하지만 나는 이미 너무나도 많이 엄두를 냈었지." (Alas, I have dared only too much already)


라고 대답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기합니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이 이것저것 공부해 보기도 했고, 또 많은 분들의 좋은 글들을 봤습니다.


고작 하나의 전투에 대한 글인데 이걸 쓰면서 정말 많이 힘들었고, 다른분이 볼 수 있도록 역사관련 글을 재미있게 써주시는 분들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 서양사에서 역사상 최고의 군사 지휘관을 꼽는다면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한니발 빠였는데, 글을 쓰면서 나폴레옹에 대해 공부를 더 하다 보니 뭐 이런 괴수가 있나 싶더라고요.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해서 패배했던 건 단 세번의 전투 -아스펜-에슬링, 라이프치히, 워털루- 뿐이었으며, 아스펜-에슬링에서는 자신을 무적이라고 생각한 나폴레옹이 1.5배에 달하는 적에게 다리를 건너 무리한 공격을 가했고, 라이프치히는 숫적으로 너무나도 열세에 대규모 배신이 있였으며, 워털루는 부하들의 연이은 실수에 치질+복통+아편이라는 3각편대에게 복부압박을받기도 했습니다. 비록 외교적으로는 수완이 좋지 않았지만, 전 유럽을 상대로 이렇게 날뛰는 것을 보니 문제가 많은 인격적인 부분은 제외하고 전술/전략적으로 역사상 최고의 장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넬슨은 영국을 구한게 맞아요. 이런놈이 18만 병력을 이끌고 영국 본토에 상륙하면 누가 막겠습니까. (...)


보통 나폴레옹의 전략/전술이라 하면 기동전으로 빨리 움직여 적을 각개격파 하는 정도가 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잘 안알려진 하나의 전투 뿐이지만, 그보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적과 싸웠는지 자세히 적어 당시의 전술을 맛보기(...)로라도 설명드리고 싶어 글을 적었습니다.


스크롤 압박에 눈이 피곤하시겠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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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개루 카카루말똥님 글

[출처] 나폴레옹의 거의 안 알려진 드레스덴 전투 상세한 분석. -괴수는 어떻게 2배의 적을 물리쳤는가. (『역개루』대한민국 대표 역사 카페) |작성자 카카루말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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