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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키말라자
게시물ID : freeboard_20320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일만
추천 : 2
조회수 : 86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4/09/15 12: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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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노일만 단편선: 키말라자

그날 지구에 운석이 하나 떨어졌는데, 운석에 붙어 있던 식물 종자 하나가 운 좋게 땅 속으로 들어가 발아를 했다. 그런데 이게 성장력이 얼마나 좋은지 순식간에 자라 큰 나무가 되었고, 번식력이 얼마나 좋은지 순식간에 일대를 숲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한 식물학자가 재빨리 이에 대한 연구를 하여 이것이 인류 역사상 처음 발견된 수종임을 밝혀냈는데, 그리스 출신이었던 그는 이 수종을 귀중한 선물이란 뜻의 그리스어 폴리티모 도로라고 불렀다.


폴리티모 도로는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나무 자체가 지닌 강한 생명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활용성 때문이었다.

먼저 그것의 몸통은 색감이 좋고 단단하여 목재 제품을 만드는 곳에서 대단히 선호했다. 게다가 오크, 체리, 월넛 등 타 수종에 비해 생장 기간도 매우 짧아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또 한쪽에서는 폴리티모 도로를 도심 곳곳에 심는 것을 선호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무의 잎은 크고 무성하여 여름철 직사광선을 막아주는데 탁월함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국 A시에서는 폴리티모 도로를 적극적으로 심은 곳 중 하나였다. 원래 A시의 가로수는 대부분 벚나무였다. 벚나무는 봄에는 꽃이 좋고 여름에는 햇빛 차단 기능이 좋았으며 가을에는 단풍이 좋아 구민들도 좋아했다. 그러나 왜 일본산 왕벚나무를 가로수로 심느냐는 민원이 끊임없이 접수되었다. 구청에서는 처음에 이 수종이 일본산이 아니라고 대응했지만 상대방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학술자료, 신문스크랩, 식물도감, 심지어 노트에 본인이 직접 그린 자료들을 끊임없이 녹지과로 보내왔다. 녹지과 사람들은 점점 민원에 지쳐, ‘가로수 교체시기가 되면 꼭 다른 수종을 검토해봐야지’하고 결심을 했던 차였다.

그런 시기에 폴리티모 도로가 등장했으니 A시에서는 쌍수를 들어 반길 일이었다. 과연 폴리티모 도로는 곧 A시의 상징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외계행성에서 전언이 왔다. NASA의 학자들이 서둘러 메시지를 해독해 보니 이런 것이었다.




우리별을 파괴한 몬스터 ‘키말리자’가 지구로 이동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놈은 처음에 나무 같은 모습으로 자라나 식물로 오해되곤 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라 지구인들이여. 키말리자는 나무가 아니라 동물이다. 그것도 매우 흉폭한...
놈은 나무 형태로 있다가 별의 특성 파악이 끝나는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어떤 것도 놈을 막을 수 없다. 우리 문명의 광선포도 놈을 제압하는데 실패했으니, 지구의 기술이라면 택도 없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다. 우리가 계산해보니 지구에게는 아직 2주 정도의 시간이있다. 서두른다면 키말리자를 미리 박멸하고 안전해질 수 있다.

명심하라. 꼭 한 그루도 남기지 말고 박멸해야 한다. 한그루라도 살아있다면 지구는 끝장이다…


  • 운 좋게 살아남은 행성 N56US17의 생존자들 씀


P.S 키말리자의 영상을 첨부한다. 



NASA 연구원들은 외계인들이 보낸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상에 등장한 것은 폴리티모 도로였다. 문제는 그게 움직인다는 거였다. 뿌리를 발처럼 활용해 재빠르게 움직이며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죽이고 있었다. 


NASA는 이를 곧바로 언론에 뿌렸다. 그리고 세계인들은 경악했다. 각 정부는 곧바로 폴리티모 도로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즉각 제거에 나섰다. 심지어 폴리티모 도로를 활용해 만든 가구들까지 파쇄하고 불태우는 게 많은 정부의 조치사항이었다.

한국도 폴리티모 도로, 아니 키말라자 박멸에 들어갔다. 키말라자를 대거 심은 A시 역시 긴급 회의를 열었다. 


*


몇 주 뒤, 지구는 완전히 망해버렸다. 키말라자가 별을 완전히 초토화 시킨 거였다. 행성 N56US17의 생존자들이 지구를 지나가다, 운좋게 살아남은 몇 명의 생존자를 구해냈다. 

우주비행선 안에서 외계인들은 경고를 해줬는데도 왜 이런 꼴이 됐냐고 물었다. 생존자 대부분 그 원인을 몰랐다. 대체 어떤 새끼들이 박멸에 실패한거야?

그때 한 사람이 몹시 부끄럽다는 듯 손을 들었다.

“당신은 누구요?”

외계인의 질문에 그 사람은 “대한민국 A시의 공무원입니다. 저희가 키말라자 한 그루를 놓쳤습니다.”

사람들은 자초지종을 말하라고 재촉했다.

“열심히 키말리자를 베어내고 불태우다 보니, 가로수로 심은 한 그루가 B시의 경계로 넘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손을 못 댔습니다.”

그 말에 다들 어이가 없어하며 A시고 B시고 나발이고, 지구 전체가 위기인데 왜 그랬냐고 물었다. 

그러자 A시의 공무원이 말했다. 

“행정업무를 잘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A시가 B시의 나무를 베어버린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죠.”

“그럼 B시에 말을 하지 그랬소?”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협조 공문을 써서 결재를 올렸죠. 그런데 녹지과장님이 문단 들여쓰기와 맞춤법이 틀렸다고 자꾸 반려를 하시는 바람에…”

“아이구 맙소사. 그 녹지과장은 어떻게 됐죠?”

그러자 A시의 공무원이 참담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키말라자에게 밟혀서 돌아가셨습니다.”

“잘 됐네요.”

누군가 그렇게 말하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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