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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칠이가 팔칠이에게 물었다.
“너네 회사는 회식 때 주로 어디가냐?”
“고기. 회. 중국집. 너넨?”
“고기. 회. 중국집. 그게 다 아니냐?”
“맞네.”
“맞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병칠이가 다시 물었다.
“회식 재밌냐?”
“아니. 개 재미없어. 왜냐면 대빵만 계속 말을 하거든. 말을 안 쉬고 계속해. 미친 사람 같아. 입에 모터 달았어. 너네는 어떤데?”
“우리 실장? 모터 두 개 달았지.”
“미쳤네.”
“미쳤지.”
“왜들 그러는 걸까? 권력 과시? 외로움?”
“설마, 어디서 교육이라도 받는 거 아니겠지?”
“무슨 교육?”
“젊은 애들이 당신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똑똑하다. 밀리지 않으려면 말빨로 조져라. 말할 기회를 아예 주지 마라! 이런 고위직 교육.”
“개 웃기네.”
“개 웃기지.”
둘은 개 웃긴다는 표정을 하고 건배를 했다.
*
같은 시간, 모처에서는 교육이 열리고 있었다. 정장 차림의 중년 여성이 눈을 반짝이며 연설하는 중이었다.
“그런 이유로… 말 수를 더 늘리셔야 합니다. 특히 회식 때, 언제나 여러분이 마이크를 잡으셔야 합니다. 실컷 떠들고, 더 떠들고, 이제 됐나 싶을 때 한 번 더 떠드십시오 여러분.”
그러자 참석자 중 누군가 손을 들고 말했다.
“이미 꼰대 소리 듣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 팀웍이 너무 무너지지 않을까요?”
강사는 이런 질문에 익숙하다는 듯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세대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거고 젊은 층은 계속 삐딱하게 굴 겁니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이니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중년이 되면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고,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이별 등으로 인해 심신이 위축됩니다. 소위 오춘기라고 불리는 중년 우울증은 계속 더 많아지는 추세이고요.”
강사는 거기까지 말하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연구에 따르면 중년 우울증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특정 신경물질의 분비를 촉진하는 것입니다.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것들인데요. 사람들은 흔히 술을 마실 때 세로토닌의 분비를 경험하고,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도파민의 분비를 경험합니다. 그러니까 중년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술자리에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권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보건복지부의 비밀 프로젝트로, 사회고위층이 된 여러분께만 알려드리는 내용이니 비밀엄수 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엔 다른 참석자가 손을 들었다.
“말하는 사람은 좋겠지만 듣는 사람은 괴로울 수 있잖아요?”
그 말에 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부는 부처협력을 통해 그 문제까지 함께 해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나요?”
누군가 묻자 강사가 잠시 망설였다.
“그 얘기는… 오늘 행사인 ‘사회고위층의 건강 발달을 통한 국가경제력 확보 세미나’와 별개라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물어보시니 짧게 답변 드리겠습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외식업 활성화와 가계 소비 촉진을 위해,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소비 촉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돈 쓰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어라’입니다. 요새 젊은층 용어로는 ‘금융 치료’라고도 하는데요. 고위층 얘기를 들어주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월급 탕진으로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미국의 대표적인 IT기업 ‘메타’와 제휴를 한 바 있고요, 메타는 오마카세나 파인다이닝 같은 비싼 식당에서 찍은 사진들의 좋아요 수를 조작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오마카세나 파인다이닝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효과는 대단하여, 현재 2030 청년들의 외식 소비 패턴은 월 수익의 50%까지 늘어났습니다.”
강사는 설명을 마치고 질문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 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손 같은 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