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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러브 프리징
게시물ID : freeboard_20336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일만
추천 : 0
조회수 : 70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4/10/13 09: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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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만 단편선: 러브 프리징


마지막 기록일 것 같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 얘기를 쓰고 싶다. 내 이름은 김진우. 주민등록번호 860228-1……의 대한민국 국적 남성이며 직업은 기업 소속 연구자이자, 송우리(880828-2…..)의 남편이다.  


스페이스오딧세이주식회사는 2040년에 세워진 1세대 토탈테라포밍솔루션 회사다. 30~40대 에 냉동냉장 신기술을 연구했던 나는 스페이스오딧세이가 창립할 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그곳 연구소 차석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일흔 다섯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냉동에 관한 온갖 연구와 실험을 진행했다.


사실 은퇴는 진작에 했어야 했다. 정년인 일흔을 넘긴지 오래였으니까. 그러나 회사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 잘난 척 하긴 싫지만, 당시 나만큼 급속냉동/해동기술에 관한 지식을 가졌던 사람은 지구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부인인 송우리는 싫어했다. 올해 꼭 은퇴하고 시골로 이사가자는 약속을 벌써 몇 번째 어기는 것인지 몰랐다.


송우리와 나는 젊었을 때 만났다. 서른이었나, 아직 이십대였나. 아무튼 훗날 칠십 대 노인이 될 거란 상상을 조금도 하지 못하던 나이였다. 언젠가 인류가 정말 화성으로 이주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요샌 다르지만 그때는 연애하면 결혼까지 하는 게 보통이었다. 송우리와 나는 소개팅으로 만난 직후 결혼을 결심했고, 결혼 이듬해에 예쁜 딸도 낳았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행복했다. 주말이면 손 잡고 마트로 장을 보러 다녔고, 밤이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다같이 잠들곤 했다.


정년퇴직할 나이가 지나서도 다니던 회사를 끝내 그만 둔 이유는 송우리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진단은 혈액암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다했지만 송우리는 1년을 버티지 못했다.


장례가 끝나고 100일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2미터가 넘는 초대형 곰이 두꺼운 발톱으로 내 가슴을 할퀴는 것 같은 고통 말이다. 송우리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미안한 게 너무 많아서, 또 고맙다는 말을 충분히 하지 못해 많이 안타까웠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번번이 딸의 존재가 그 생각을 가로막았다. 벌써 다 큰 딸이지만 그 애에게 더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야했고, 배우자와의 사별이라는 고통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했다.

그래서 떠올린 게 이 실험이었다.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인류최초의 냉동인간 홍득구를 말이다. 당시 홍득구를 냉동했던 시간은 5분이었다. 5분 뒤 정상해동된 홍득구 씨가 기계장치에서 걸어 나오며 “화장실이 어디죠?”라고 했던 순간이 나는 어제의 일처럼 기억난다.

언론에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제 2의, 제 3의 홍득구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실험이 거듭될 수록 냉동 기간도 늘어났다. 제 10의 홍득구 실험 때에는 한 달이란 냉동기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테라포밍을 실제로 시작했다면 우리는 할 일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우주선에 탄 탑승객들을 냉동시키고, 도착지인 화성에 이르러 해동되도록 하는 일을 수 없이 해야 했을 테니까. 그러나 UN이 테라포밍에 완전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테라포밍솔루션 회사 몇 개가 줄도산하고, 화성이주반대 시민운동이 격해지면서 테라포밍 계획은 하나둘 씩 무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차렸을 땐, 언제 누가 화성에 대해 부르짖었냐 싶을 만큼 세상이 조용했다. 우리의 냉해동 실험도 그때부터는 진전이 없었다.


제 10의 홍득구(진짜 실험참여자의 이름은 잊어버렸다) 때 나는 묘한 경험을 했다. 냉동 직전, 깨어나면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말했다.

“버거킹 와퍼요.”

나는 웃으면서, 깨워드리기 전에 꼭 와퍼를 준비해둘테니 잘 주무시라고 덧붙였다.

한 달 뒤, 해동 시간이 되었다. 제 10의 홍득구는 다행히 정상적으로 해동이 완료됐다. 그의 컨디션을 체크하면서 내가 농담식으로 말했다.

“와퍼를 준비 못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러자 그가 정색을 하고 묻는 거였다.

“와퍼요?”

“네. 드시고 싶다고 해서 제가 준비해드리기로 했었는데요. 기억 안나세요?”

“음… 오래된 일이라, 잊어버렸어요.”


나는 여기서 충격을 좀 먹었다. 냉동상태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그게 이 실험의 출발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이런 거다. 10년간 냉동인간 상태로 지낸다. 그동안 내가 시간의 흐름을 체감한다. 10년 동안 나는 아픔을 잊어간다. 배우자를 잃었다는 상실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10년 뒤 해동되었을 때,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자. 이제 냉동을 시작할 시간이다. 


냉동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실험일지를 책상 위에 놔두고 나는 기계장치에 들어갔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치이익- 초급속 냉동을 위한 가스가 순식간에 장치 안을 메웠다. 나는 의식을 잃었다.


*


팟- 하고 눈이 떠졌다. 어두웠지만 금세 눈 앞의 것들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나는 급속냉동기 안에 있었고, 유리 바깥으로 익숙한 실험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먼저 시력과 촉감 등이 정상인지 서둘러 살폈다. 다행히 모두 정상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나는 기계장치의 도어버튼을 눌렀다. 치익- 실린더의 공기가 빠지면서 소리가 났다. 나는 조심조심하면서 기계장치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 순간 고통이 시작됐다.


가슴 한 곳이 미어지며 송우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체온, 웃음소리, 함께 웃던 유머, 은밀한 말장난까지 모두 그리웠다. 

‘여보, 보고 싶소.’

나는 거대한 절망과 구체적인 상실의 고통과 오래쓰지 않아 무뎌진 근육을 이끌고 가까스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실험일지의 마지막 칸에 이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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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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