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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구글에 도움을 요청했던 나라는 페루였다. 사실상 국정운영이 마비되었던 페루의 야당 인사들은 며칠 밤을 새우며 회의를 한 끝에 국정운영을 민간기업에 일시적으로 위탁하기로 한다. 이념에 지나치게 과몰입하고 가짜뉴스의 선동에 물들어 있으며 상대진영만 보면 총을 꺼내려고 하는 지금의 체제를 잠깐 벗어나, 냉철하고 효율중심적인 민간기업식 운영이 나라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도부의 힘겨운 노력 끝에 페루, 구글, 유엔이 함께 만나는 자리가 성사됐다. 긴 협상 끝에 구글은 임시 정부 역할을 수락한다. 표면상으로는 행정부의 디지털화를 위해 조언자 역할로 개입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페루에 구글 정부가 탄생했다는 걸 모두가 알았다.
그 뒤로 10년 뒤인 지금, 구글이 통치하는 국가는 30여개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구글 정부가 들어선지 고작 3년차라 아직 큰 변화를 느끼기 어렵지만, 페루의 경우 이미 모든 행정부의 일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다. 또 솔(페루의 자국 통화)의 가치가 크게 올라간 것을 보면 자꾸만 우리나라에서도 여러가지 역동성을 기대해보게 되는 게 사실이다.
솔의 가치를 올려놨다는 것 말고도 사실 구글 정부가 잘한 일들은 꽤 많다. 우선 외교 문제가 그렇다. 그들은 구글이 통치하는 국가끼리만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을 거라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외교문제를 철저하게 해당 국가의 이익에 맞게끔 다루었다. 아직은 두고봐야겠지만 적어도 편파적이지 않고, 역사와 지리적 여건에 맞게 다루고 있다는 평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경제 문제도 비슷하다. 나라별로 GDP의 구성요소 등이 다른 것을 감안해 구글은 각 국가가 서로 다른 경제적 목표를 수립하도록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역할은 종교의 위상을 축소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글은, 적어도 자신들이 통치하는 국가 내에서는, 종교가 이전과 같은 힘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학교나 회사 같은 공공장소에 종교색을 띄는 복장이나 물품을 지녀서는 안되게 했고, 가정 외의 장소에서 종교에 대해 대화할 수 없도록 했다. 구글의 수뇌부가 반종교적 색채를 띄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조치는 아니었다. 구글은 너무 많은 나라에서 종교색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걸 데이터를 통해 알고 있었고, 그 종교란 것을 제발 각자의 집에서만 좀 다뤄달라고, 안 그러면 회초리를 좀 휘두를 수 밖에 없겠다고 공언한 것뿐이었다.
IT 강자 답게 구글은 각 나라의 인터넷 환경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모든 것은 클라우드를 통해 연결되었고, 신원정보는 안전하게 지켜졌으며 결제는 간편했고, 건강하고 내실 있는 콘텐츠가 넘쳐 났다. 가짜뉴스나 혐오를 선동하는 콘텐츠들은 모두 AI에 의해 사라졌다. 구글이 통치하는 국가의 국민들은 모두 새로운 인터넷 환경에 열광했다. 그러니 사법부가 내리는 강력한 처벌 조치 - 인터넷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 구류하는 일은 그들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되었다.
구글이 만든 가장 놀라운 변화는 모든 공공서비스의 무료화였다.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때도,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심지어 전기조차 무료였다. 그러나 세상에 진정한 공짜가 있던가. 구글은 모든 곳에 광고를 심었다. 광고를 소비하는 대신 정부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거였다. 곧 광고 때문에 미치겠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급한 출근길에 개찰구에서 “변비엔 역시 장비어천가~ 프리미엄 유산균 요구르트, 장.비.어.천.가!” 따위를 들으며 서 있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구독서비스를 이용하면 광고를 생략시킬 수 있었지만, 문제는 구독요금이 어마무시하게 비싸다는 점이었다.
구글은 거의 모든 곳에 집착 수준으로 광고를 깔아 놓았다. 공원의 식수대에서 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오기 전에 광고가 흘러나왔다. (변비엔 역시~) 시청에서 화장실 문을 열 때, 공립학교 교실의 에어컨을 켤 때, 버스에서 공공와이파이를 켤 때 어김없이 광고가 튀어나왔다.
구글 정부는 여러가지 목적으로 초중고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을 것을 지시했는데, 교복 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복에 광고를 유치했다. 학생들은 두통약이나 태블릿 PC의 광고가 박힌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그걸 입고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돈이 결코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인생에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의미 있는 목표가 얼마든지 있다고 가르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반광고 집회는 그해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발단은 장례식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새로운 집권당의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구글 정부는 고인을 위해 국가장을 치르기로 했는데, 유족들과 지지자들이 행렬을 이룬 거대한 추모식에서 그만 광고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심지어는 그 광고가 상조회사 광고였기 때문에 거기 모인 사람들은 더 화가 났는데, 훗날 구글의 담당자가 해명하기로 광고매칭은 알고리즘이 하는 것이지 사람이 직접 하는 게 아니므로 어떠한 의도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또, 국가장을 치르기 위한 비용 마련을 위해서는 광고유치가 불가피했다면서 그들은 조금도 유감스럽다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반광고 시위가 점점 더 격해지자 구글 정부는 결국 광고를 통한 세수 조달 문제를 재검토하기로 약속하기에 이르렀는데, 총리가 이 사실을 발표하기 전 ‘오늘 행사는 사성전자, 롯데팔성, 내 손안의 금융 우리둘이 은행과 함께합니다,’ 라며 광고주의 이름을 읊은 것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여러분도 그 영상을 국가기록원 아카이브 구글 드라이브에서 열람할 수 있다. 물론, 전체영상을 시청하려면 15초의 광고 시청은 필수다.
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