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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누수 (1)
게시물ID : freeboard_20339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일만
추천 : 0
조회수 : 86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0/19 12: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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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만 단편선: 누수 (1)


킁킁.

냄새를 맡고 나서 규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망할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했다. 침대에 누운 채 규태는 고개를 들어 천장 모서리를 쳐다봤다. 곰팡이는 그쪽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해 점점 넓게 퍼지고 있었다.

처음 누수가 발견된 건 두 달 전이었다. 하필이면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자마자 그런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윗집인 502호 사람들은 모범적인 사람들이었다. 규태가 보수공사를 요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업체를 섭외해 누수 공사를 했다.

“화장실 욕조 밑을 싹 고쳤다고 합니다.”

502호 아저씨가 전화를 주었다. 규태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 다시 누수가 시작됐다. 천장부터 벽지가 차츰 젖어드는 게 보였다. 규태는 502호를 찾아갔다. 502호 부부는 다시 한 번 규태의 집으로 내려와 누수 현장을 확인했다. 일주일 뒤, “욕조 옆의 트렌치를 다시 고쳤다고 합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규태는 거듭 고맙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 다시 누수가 시작됐다. “세면대쪽도 다시 손봤다고 하네요.” 502가 응답했다.


일주일 뒤, 다시 누수가… “변기쪽도 손 봤어요.”


일주일 뒤, 규태는 민망함과 짜증이 모두 담긴 마음을 안고 다시 502호를 찾아갔다. 

“선생님, 정말 죄송스럽지만 여전히 위에서 물이 샙니다.”

502호 부부가 외쳤다.

“이런 썅!”


*


업체에서는 이제 손 볼 곳을 다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간혹 보면, 바로 윗집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전에 어느 아파트에서는 8층에서 물 새는 게 3층 집 벽지를 적시고 있었거든요.”

“그럼 어느 집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규태는 지친 목소리로 업체에 물었다.

“모르죠. 그 집에서 먼저 발견하고 알려주기 전까지는.”

‘이런 썅!’

규태는 속으로 외쳤다.


벽지는 완전히 젖었다. 심지어 곰팡이를 닦아 보려고 걸레질을 하다가 A4 한 장 크기 정도를 찢어버렸다. 찢긴 벽지 너머의 벽에 까만색 곰팡이가 보였다. 그리고 냄새가 심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규태는 인상을 구기며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쥐었다. 잠들 때까지 유튜브나 볼 생각이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쇼츠 영상을 이리저리 넘기다가 어릴 때 좋아했던 만화를 보게 됐다. 영상 속에서는 프리더가 비열하게 웃고 있었고, 열 받은 손오공이 초사이언으로 각성하고 있었다.

‘그래. 이거다!’

규태는 그제서야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


다음날 아침, 규태는 얼굴을 씻고 말끔하게 옷을 입었다. 전철역까지 걸어가 9개 역을 지나 한번 환승한 뒤, 다시 5개 역을 지나 회사에 도착했다. 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규태는 부장을 찾아가 오늘부로 긴급 휴직을 신청한다고 말했다.


*


인사팀에 휴직계를 낸 뒤 규태는 곧바로 길을 떠났다. 지긋지긋한 누수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을 위해서였다. 

드래곤볼. 

7개의 볼을 모아 용신을 불러내, 이 지긋지긋한 누수으로부터 탈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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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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