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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누수 (3)
게시물ID : freeboard_20339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일만
추천 : 0
조회수 : 7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0/19 12: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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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만 단편선: 누수 (3)


규태는 방안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시발.

그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인생을 저주하고 있다.

시바아아알….

규태는 벽을 바라보며, 7번째 볼을 얻었을 때의 일을 조용히 떠올렸다.

*


모락산에서 내려온 규태는 일주일 정도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동안 뭉친 근육도 풀고, 몸보신도 하면서 정보탐색을 했다. 과연 마지막 볼인 6성구는 어디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용신을 불러내 누수를 없애기 전까진 집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번 다시 쿵쿵대는 소음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또, 일이 끝날 때까지 집에 가지 않겠다는 사나이의 각오이기도 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다크웹을 뒤진 끝에 드디어 6성구를 찾았다. 그건 중국에 사는 왕씨 성을 가진 어느 수집가의 손에 있었다. 문제는 그가 너무 거물이라 어떻게 만나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평범한 직장인이 만수르 만나기 프로젝트를 하는 꼴이었다.

규태는 어쩔 수 없이 6성구의 위치를 올린 유저에게 쪽지를 보냈다. 그러자 상대방이 답을 보내왔는데 왕씨는 너무 거물이라 자기가 직접 소개해줄 수 없고, 브로커를 한 명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규태가 브로커에게 연락을 취해보자, 브로커가 말하길 왕씨가 너무 거물이라 자기가 직접 연락하기 어렵고, 중간에 브로커 2를 끼워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2번 브로커는 3번 브로커가 필요하다고 했고, 3번 브로커는 4번, 4번은 5번… 그렇게 총 다섯 명의 브로커를 거치고 나서야 겨우 왕씨와의 만남이 성사됐다. 규태는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북경에 도착해서 사리를 만났다. 사리는 규태가 연락을 취한 다섯 번째 브로커로, 왕씨와 만나게 해줄 수 있다고 답변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사리는 인도네시아 사람인지 바띡을 입고 있었고, 매우 뚱뚱했다. 나이는 한 50쯤 되었을까. 왼쪽 볼에 새끼 손톱만한 점이 있었는데, 그 점 위에 난 털이 규태의 눈을 사로잡았다. 평생 길러온 것인지 털이 너무 길어, 거의 땅에 닿을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용신을 만나게 되면 저 털을 없애달라고 할까.’

순간 그런 생각을 떠올릴만큼 인상적이고, 불길한 털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사리는 마이바흐에 규태를 태우고 어느 대저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왕씨 성을 가진 수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왕씨가 6성구를 내어주는데 과연 얼마를 부를까? 잔고가 얼마나 남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왕씨를 기다리고 있는데 별안간 쾅! 하고 접견실의 문이 열렸다.

‘오셨구나!’

규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리도 마치 신병교육대 갓 출소한 이병이 차렷하듯이 벌떡 일어났다.

“나짜훠시쉐이?”

문을 열고 다짜고짜 중국말로 말을 건넨건, 한 열두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애였다.

‘뭐야, 애잖아. 이 집 손주인가. 더럽게 재수 없게 생겼네.’

규태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벌어진 일을 규태는 보고도 믿지 못했다. 50이 넘은 사리가 꼬맹이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더니 사리는 고개를 홱 돌려 규태를 보며 말했다.

“잇츠 힘.”

우악. 드래곤볼을 가지고 있는, 북경의 유명한, 대부호 수집가가 이 꼬맹이였어? 규태는 떨떠름하게 인사를 건넸다.

“니 하오.”

“니 하오.”

꼬맹이가 발랄한 목소리로 말하며 규태를 향해 손바닥을 치켜 올렸다. 하이파이브를 하자는 뜻 같았다.

짝.

규태가 손바닥을 맞받아 치자 꼬맹이가 배시시 웃으며 기분 좋은 티를 냈다.

‘뭔가 잘 풀릴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며 규태는 생각했다. 둘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규태는 아직 까맣게 모르는 상태였다.


*


정말 대단한 부잣집의 꼬맹이, 그것도 수집가로 활동하는 아이라면 남의 기분을 헤아리거나 비위 맞춰본 적이 없을 거였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재수가 없고 무례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생각은 편견일 수 있다. 규태는 꼬맹이와 대화하면서 그렇게 느꼈다. 재수가 없고 무례하다? 이 새끼는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초특급 초격차 슈퍼울트라 데몬빌런 악마였다! 

규태는 자신의 허리 위에 올라탄 꼬맹이를 보며 생각했다. x 같은 놈! 사람도 아닌 놈!


*


사리는 꼬맹이에게 정중한 태도로 뭔가를 설명했다. 아마 규태가 여기까지 찾아온 배경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사리가 말을 마치자 꼬맹이가 규태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량 워 까이신.”

음? 뭐라는 거야?

사리가 규태를 향해 엄중하게 말했다.

“메이크 힘 펀.”

메이크 힘 펀? 그를 재밌게 만들라고? 재롱이라도 부리라고?

규태가 당황스런 표정을 짓자 사리가 인상을 팍 썼다. 방금까지 젠틀해보였던 사리가 인상을 쓰자 얼마나 무섭던지, 규태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낮추며 꼬맹이를 향해 말했다.

“말 태워 드릴까요?”

꼬맹이와 사리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길래 규태는 바로 바닥에 엎드려 말 자세를 취하며 소리를 냈다.

“히히힝.”

그러자 꼬맹이가 신난다는 표정을 하고 달려와 규태의 허리 위로 몸을 날렸다.

-퍽.

꼬맹이의 몸무게 곱하기 중력의 충격을 온몸으로 느끼며 규태는 아욱, 하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겉으로는 웃으며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사리. 바 똥시 나 게이 워.”

꼬맹이가 말하자 사리가 저쪽에서 뭔가를 가져왔다. 채찍이었다. 집에 왜 채찍이 있어!

꼬맹이는 규태의 몸에서 내려와 소파에 올라서더니 규태의 엉덩이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짝!

짝!

비록 어른이 휘두르는 만큼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채찍 끝이 몸에 닿을 때마다 규태는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터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꼬맹이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쩌행요우치.”

무슨 말인지, 사리는 그 말을 통역하지 않았다. 이 놈이 모라고 지껄이는 거야. 

“쩌행요우치.”

그렇게 말하는 꼬맹이는 그저 너무 신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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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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