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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누수 (5)
게시물ID : freeboard_20339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일만
추천 : 0
조회수 : 8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0/19 12:3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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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노일만 단편선: 누수 (5)


얼굴에 차가운 물세례를 맞으면서 규태는 눈을 떴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길래 살펴보니 두 발은 의자 다리에 묶여있고, 두 손목은 테이블 위에 결박당해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길로틴이 있었다. (집에 길로틴이 있어?) 눈 앞에 꼬맹이가 비열한 미소를 띄고 앉아 있었고 사리가 옆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빈 바가지를 든 사람을 포함해 시중 드는 사람들 몇 명까지, 모두 규태를 쳐다 보고 있었다.

“자오샹 하오.”

“굿 모닝.”

꼬맹이와 사리가 번갈아 말했다. 저 새끼의 혀를 언젠가 뽑아버리리라. 규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슈엔쩌.”

“추즈.”

꼬맹이가 규태의 열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리얼리?”

규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이야? 정말 그딴 내기 한 번으로 손가락을 자를 거냐고? 내가 경찰에, 아니 대사관에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자랑스런 대한민국인의 생명을 위협하고도 무사할 줄 아냐?

그때 시중드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방수 앞치마를 입고 고무장갑을 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새끼들 진심이구나.’

그 순간 규태는 체념했다. 여기서 발버둥쳐봤자 소용 없다. 중요한 건 손가락이 날아간 다음이다. 그 다음에 패닉하지 말고 정신 차리자.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슈엔쩌!”

“추즈!”

꼬맹이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휴우. 규태는 양손을 주먹 쥔 다음, 왼손 새끼 손가락만 펼쳤다. 그걸 자르라는 뜻이었다. 꼬맹이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고무장갑을 낀 여자가 길로틴을 규태의 왼쪽 새끼 손가락 앞으로 가져왔다. 카운트다운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길로틴은 조금도 지체 없이 규태의 손가락 위로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새끼 손가락이 테이블 밖으로 날아갔다. 규태는 남은 9개의 손가락을 굽히며 의자와 함께 넘어졌다. 어딘가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이 달려와 규태의 손을 지혈하고 응급처치를 했다.


한 시간 뒤, 붕대 감은 손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규태에게 꼬맹이가 중국말로 뭐라고 지껄였다.

“쩌거 룬 판 쉬거 피앤지. 니 쩌거 샤과.”

 사리가 통역했다.

“디스 룰렛 이즈 어 치트. 유 풀.”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꼬맹이가 딜러를 바라보며 “세븐!”하고 외치자 딜러가 룰렛을 돌렸다. 구슬은 가파르게 룰렛을 돌다가, 7에 멈추었다. 꼬맹이가 “일레븐!”하고 외치자 이번엔 구슬이 11에 멈추었다.

x발.

“x발!”

흥분한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사람들이 나를 붙들었다.

“이 x바아아아알!”

흥분한 내게 사리가 쉿, 하는 제스쳐를 취해보였다. 꼬맹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사리의 통역에 따르면 이런 말이었다.

“나를 재밌게 했으니, 상으로 드래곤볼을 준다. 대신, 손가락은 내가 갖는다.”

“으아아아아아!!!!!"


*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지하철역 코인로커에 감추어두었던 6개의 드래곤볼과 손가락 하나 내어주고 받아온 6성구를 합치니 드디어 7개의 드래곤볼 모으기 완료였다. 규태는 잠시 눈물을 흘렸다. 시발… 정말 길고 거친 모험이었다. 하지만 난 해냈어! 손실은 있었지만, 얻은 게 더 컸다. 용신만 있으면 손가락 하나 더 얻는 건 일도 아니다. 손가락 열 개, 아니 백 개도 가질 수 있어…

아니지. 목적은 손가락이 아니지. 목적은 어디까지나 누수를 해결하는 거였다.


그날 새벽에 규태는 드래곤볼을 가지고 남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용신을 불러냈다.

팟!

머리가 달에 닿을 것 같이 커다란 용신이 눈앞에서 꿈틀거렸다. 규태는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바라보고 넋을 잃었다.

“무엇이든 좋으니 소원을 한 가지 말하라.”

용신의 목소리가 울렸다. 공기를 통해 전해지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텔레파시 같았다. 하지만 용신이 인간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지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소원이었다.

역시 소원이 하나였구나. 규태는 잠시 생각했다. 애초에 드래곤볼을 모을 때부터 소원이 하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메크성에 있는 드래곤볼은 소원을 세 개 들어주기도 하였으므로 혹시…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었다. 만일 소원이 세 개였다면 규태의 위시리스트는 다음일 거였다.

하나, 누수를 해결한다.

둘, 잘려나간 손가락을 원상복구한다.

셋, 북경에 사는 왕씨 성을 지닌 수집가 꼬맹이의 혓바닥을 뽑아버린다.

그러나 소원은 한 가지임이 분명해졌다. 규태는 자꾸만 세 번째 소원을 빌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그토록 바라던 소원을 외쳤다.

“저희집의 층간 소음을 없애 주세요!”

용신이 다시 한번 텔레파시를 보냈다.

“알았다. 수고-”

팟!

번쩍하는 섬광에 눈을 잠시 감았다 떴더니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순식간에 용신이 사라진 건가? 아니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건가? 그런데 밤하늘 저 먼곳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몇 개의 빛이 보였다. 지구 곳곳으로 흩어지고 있는 드래곤볼들일 거였다. 그렇게 개고생해서 모았는데, 흩어지는 건 순식간이구나. 규태는 쓴웃음을 지었다.


*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 규태는 샤워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아아 얼마만에 오는 집인가. 날짜를 헤아려 보니 꼭 두 달만이었다. 두 달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죽을뻔 하기도 하고 포기할뻔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새끼 손가락까지 하나 잃어버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전설의 드래곤볼을 모두 모았고, 용신까지 만났다. 그리고 소원을 이루었지… 어디, 정말 누수이 사라졌나 볼까…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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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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