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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역사의 아이러니 - 조선역사의 두 민비
게시물ID : history_155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enesio
추천 : 3
조회수 : 247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4/27 23:56:07
*이 글은 전문적인 역사 지식을 표방하는 글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조선의 민씨 왕비라고 하면 크게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명성황후 몾지 않게 조선역사의 정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민비를 아십니까?
 
그녀는 바로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 민씨입니다.
 
 
요즘 사극 정도전이 너무 재밌어서 여말선초의 인물들에 대해서 짬짬이 찾아보던 중
 
태종 이방원의 비인 원경왕후 민씨에 대해서 알게되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걸어온 길과 치적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원경왕후 민씨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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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 말부터 예조판서 등 당대의 명망있는 고급관료 출신인 민제의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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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민제는 요즘 정도전 때문에 더 유명해진 하륜의 베프죠.
 
 
그래서 민제는 하륜, 이숙번과 함께 방원이 용상에 앉는데 큰 공헌을 했고,(사실 민제 자체가 태종에게는 좌하륜 우숙번급입니다.)
 
원경왕후 민씨 역시 이방원이 1,2차 왕자의 난에서 적극 승리하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썻던 사람입니다.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도록 결정적으로 부추기고 도왔던 사람이 바로 원경왕후죠.
 
그러나 문제였던 건 아버지인 민제는 성격이 하륜이랑 비슷해서(원래 끼리끼리 잘 놀죠, 이숙번 빼고)
 
사리판단이 빠르고 야심보다는 알아서 숙일 줄 아는 나름 청빈한 삶을 살았던 반면, 원경왕후와 그 자식들은 야심이 강했죠.
 
일례로 원경왕후가 태종이 왕에 등극한 후 후궁을 들이는 문제를 놓고 태종과 심히 대립하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 역시 왕에 등극한 후 이러한 원경왕후의 입김이 세질 것을 두려워하여
 
민씨들을 제거하기 위해 민무구의 옥을 일으키게 됩니다.
 
민무구의 옥을 일으키고 원경왕후의 오빠들인 민무구 민무질을 처음 유배보냈을 때,
 
태종은 바로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장인인 민제가 눈에 밟혀 처음에는 유배형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민무구의 옥이 터지고 몇년 후에 민제가 병사하자,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사사하고, 얼마 후에 역시 그 형제인 민무휼 형제 등도 역시 사약 원샷을 시켜 버립니다.
 
민씨 집안을 아예 거덜내 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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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 또한 자신의 집안이 이렇게 몰락해 버린 상황에서 폐위될 뻔 했지만,
 
어째 폐위는 되지 않고 궁궐에서 삶은 유지합니다. (사실 태종 이방원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겠죠.)
 
사실 원경왕후 입장에서는 정말 원통했을겁니다.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남편을 왕으로 만들어 줬더니,
 
그 남편으로 인해 부모형제가 다 죽고,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으니 말이죠.
 
이러한 원경왕후의 외척 잔혹사는 며느리인 소헌왕후 심씨에게도 강상인의 옥을 통해 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경왕후의 한이 대대로 전해져서였을까요?
 
조선 말에 등장한 또 하나의 민비는 원경왕후와는 반대로 조선 말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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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명성황후 민씨 입니다.
 
명성황후 시절의 민씨는 원경왕후 시절의 민씨와는 다르게 상당히 한미한 가문으로 전락했었습니다.
 
(아마 태종대에 그렇게 씨를 말려놔서 한미한 가문으로 계속 내려오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합니다만,)
 
당시 집권자인 대원군은 세도정치로 인한 외척세력의 발호를 막기 위해 일부러 한미한 가문이었던 민씨 집안의 민자영을 선택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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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인 대원군이 하야한 이후
 
고종을 막후에서 조종해 개화기에 민씨 세도정치라 불릴만큼 민씨 천하를 만들어 버립니다.
 
(물론 말년에는 을미사변으로 왜놈들 손에 죽음을 맞습니다만,) 

혹시 정말로 원경왕후 민씨의 원한이 500년을 거쳐 명성황후 민씨에게 전달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재밌는 사실은 원경왕후 민씨나 명성황후 민씨나 모두 여흥 민씨 가문입니다.
 
왜냐하면 민씨 성은 우리나라에서 여흥 민씨가 유일하기 때문이지요.
 
(본관이 유일한 성은 우리나라에 제법 있다고 합니다. 청주 한씨도 그런 케이스죠)
 
그리고 명성황후는 원경왕후의 공통점은 상당히 권력욕이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은 강했지만, 명성황후의 남편인 고종은 참 유약했죠.
 
어쨌든 조선의 시작과 끝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두 민비들의 삶이
 
역사의 아이러니는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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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원경왕후와 명성황후 모두 탤런트 최명길씨가 드라마에서 연기하셨더군요. (물론 명성황후는 중간부터 하셨지만)
 
최명길씨도 원경왕후와 명성황후의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실제로도 정치인의 아내로써 살아가고 계시다는 것 또한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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