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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식날 나는 구속되었다.-3-
게시물ID : humorstory_1554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unatic
추천 : 18
조회수 : 1171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08/07/06 20:38:41
2001년 11월 후반.

나는 지금 피시방 한 쪽 구석에서 지존이 접속 종료하기를 기다렸다.

시각은 AM 08:20 

어제와 동일하다면, 곧 지존은 접속을 종료할 것이다.

오늘을 기다리던 지난 4일 동안, 나는 키우던 캐릭터와 아이템을

현금으로 정리하고, 이쪽 서버에 기본 중급의 장비를 장만했다.

이것은 지존을 위한, 내 작은 배려이자,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잠시 후, 지존이 접속을 종료했다.

하지만, 나는 약 30분을 더 기다렸다.

만약에 지존이 다시 접속해서, 일을 망쳐버릴 염려가 있어서다.

다행히도 지존은 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갔는지

다시 접속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슬슬 작업을 시작할 때이다.

나는 컴퓨터 두자리를 동시에 킨 상태에서 지존의 아이디를

접속 시키기 위해. 리니지를 실행했다.

지존의 아이디를 알아낸 뒤에 하는 첫 접속이라 그런지.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다. 행여나 그 사이에

비밀번호를 변경한 것은 아닌지라는 불안감도 느꼈다.

하지만 다행이도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고.

곧 지존의 데스나이트 기사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지존'이라는 기사를 클릭해, 게임 내로 접속했을 때에는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그래, 그 쾌감을 지금와서 다시 표현한다면.

마치 꿈을 이룬 것 같다는 착각이랄까?

난 아주 잠시동안 지존의 캐릭터를 가지고 놀아보았다.

기분은 한마디로 끝내줬다.

정말 드럽게 쎘다.

강한 몹들도 몇 방만에 나가떨어졌고, 지나가던 플레이어들은

마치 연예인이라도 본듯이 말을 걸어왔다.

--> 데스다!

순진한 꼬마가 멋진 어른을 보며, 감탄하듯 내뱉은 그 말에 난 웃으면서 

대꾸했다.

-^^ 안녕하세요~

--> 님 렙 몇이에요? 저희 서버에 아직 없다고 들었는데.

-렙업 한지 얼마 안돼서 그래요^^;; 아, 그리고 죄송한데. 저 잠깐만 도와주실래요?

--> 뭔데요? 도와드릴게요.

-아, 고마워요. 잠시만 실례할게요^^

-->^^

웃으면서 대꾸하는 그 플레이어에게 다가갔고.

나는 살며시 컨트롤을 눌렀다.

전투를 뜻하는 검모양으로 포인트가 바뀌었고.

나는 처음엔 장난식으로 플레이어를 2대 정도 쳤다.

-아픈가요?

--> 네, 무지 아픈데요. 검 뭐에요?

-10레이요.

--> 우와! 구경 좀 시켜줘요~

-...^^

--> 네? 한번만~ 그럼 선물 드... 우왁 뭐야!?

시끄럽게 떠드는 놈은 질색이었다.

--> 왜, 죽여!?

-지존이 허접 죽이는데, 이유가 있나요? ㅋㅋㅋ

지존의 캐릭터 명은 선행을 뜻하는 푸른색 라우풀에서 

같은 플레이어를 살인했을 때, 나타나는 새빨간 카오틱으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아직 더 죽여야 한다.

아직 만 카오틱이 되기엔 부족했다.

나는 필드를 활보하다가, 눈에 띄는 플레이어가 있으면. 닥치는대로

PK를 했다. 

중간에 반격하는 놈도 있었지만, 대부분 도망가거나 귀환을 했다.

하긴 지존을 이길 놈은 없지.

나는 약 2명의 플레이어를 더 죽인 뒤에야 풀 카오틱이 됐고.

계획했던 장소로 이동을 했다.

그곳엔 이미 내 캐릭터가 지존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엔 경비병이 서 있었고.

경비병은 같은 플레이어를 죽인, 지존 캐릭을 죽였다.

그리고 당근 풀 카오틱인 상태라 아이템을 흘렸다.

내 캐릭은 묵묵히 걸어가서. 지존이 흘린 아이템을 접수했다.

그리고 지존은 다시 리스타트. 그곳으로 다시 걸어가서.

경비한테 또 죽고. 또 아이템을 흘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 작업을 하니. 얼마 안 가서.

52였던 지존의 레벨이 20미만으로 떨어졌고.

지존의 장비를 포함해, 창고에 있던 값나가던

아이템들을 모두 접수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냥 넘겨받은 것이 아닌. 

죽어서 흘린 아이템이었다.

당시로서는 아이템 해킹의 기준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그래서 약간 번거로운 방법이기는 했지만.

나는 이런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비스.

내가 장만한 장비들을 지존의 캐릭터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로그아웃.

리니지 공식 홈페이지로 가서, 해킹 신고를 했다.

또 지존의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나는 정말 내가 사악하다고 느꼈다.

그래도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아무리 나쁜짓이라 해도, 사람을 죽이거나, 강간하거나

폭행하거나. 그런 것들 보단 훨씬 질 좋은 범죄니깐.

게다가 내가 이런 계기로 저 사람의 게임 의욕을 잃게 만드면.

저 사람이 리니지를 끊을 확률은 70% 이상이다.

중독성을 가진 어떤 행위를 중단할 경우.

그 사람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자기 삶에 충실하겠지.

그렇게된다면, 아마 먼훗날엔 내가 이런 짓을 해줘서

리니지를 끊게 도와준 나에게 감사할 수도 있어.

합리화는 이래서 좋다. 옳지 못한 일을 옳은 일로 만들어주니깐.

나는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옳다.


저녁이 됐다.

그 사이에 함부로 아이템을 만지거나 하는 성급한 짓 따윈 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에는 단계가 있어.

지금의 단계는 아직 불안정한 아이템... 아니 천만원의 소유권을 완전히 내 쪽으로

돌려버려야 하니깐. 

그리고 지존을 즐기고, 아이템을 현금으로 만드는 일은 다음 단계야.

나는 다시 지존이 자주 찾는, 피시방으로 왔다.

지존의 지정석이 비워져 있는 것을 보니,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최대한 지존의 지정석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마치 리니지란 게임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처럼.

테트리스를 즐겼다.

물론 볼륨을 높히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시간이 되자, 지존이 왔다.

기대가 된다. 어떤 얼굴을 할지.

지존은

여느때와 같이, 자기 자리에 앉았고,

여느때와 같이, 리니지를 켰고.

여느때와 같이, 자기 아이디를 쳤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쳤을 때.

그의 얼굴엔 불안감에 감돌았다.

지존 : 어!? 뭐야 이거!

당황한 그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리고 그는 비밀번호를 찾기 위해, 리니지 홈페이지로 들어간다.

생각대로 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이디와 주민번호를 입력한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는다.

그리고 그는 비밀번호를 찾기 위한, 질문에 답변을 쓴다.

완벽하다.

지존은 새로운 비밀번호를 정하고.

접속을 시도 한다.

하지만, 접속이 되지 않는다.

해킹을 당한 사람이, 해킹을 했다고. 오인 받으면.

얼마나 그 기분 엿 같을까?

게다가 접속도 안되서, 자기 아이템을 확인 못할 때.

얼마나 답답할까?

큭큭큭.

트로이 목마 계열의 단점은 해커가 컨트롤하지 않고.

부재 중이라면 시도가 안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방법도 응용이 가능하지, 

나는 미리 지존의 지정석에 이미 열린 백도어를 통하여.

다른 프로그램을 심어놨다.

그 프로그램은 아주 초보적인 것으로서, 키보드로 입력된

수많은 문자를 문서로 보존해 놓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문서엔 지존이 방금 전, 키보드를 통해서

입력된 주민번호와 질의 답까지 입력되어 있다.

그 말은 즉슨. 나는 지존의 아이디와 주민번호 질의 답까지

모두 알고 있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지존이 만약에 비밀번호를 변경해 놓는다 해도.

나도 얼마든지, 비밀번호를 찾을 수 있지.

그리고 지존이 만약에 압류가 풀리게 되어, 해킹 여부를 확인 하기 전에

내가 비밀번호를 바꾸어 버리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비밀번호의 질문까지 변경시켜 버린다면.

지존은 무슨 수로 비번을 찾을거지?

아마도, 다시 찾는데. 시간이 또 꽤 걸릴거다.

지존이 아이디를 찾는데. 허비하는 동안. 15일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한마디로 체스에서 비숍과 룩이 킹의 도주로를 봉쇄하는 듯한 전술을

응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체크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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