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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돌아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요...
게시물ID : gomin_15543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Wisteria
추천 : 13
조회수 : 920회
댓글수 : 195개
등록시간 : 2015/11/25 20:43:38
 
 
학교로 복학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제가 다녔었던 마지막 학기가 4학년 1학기였어요...
이 때 저는 언니를 돌보고 있었어요.
언니를 돌봐줄만한 사람따윈 없었고, 언니 자신도 스스로를 챙길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언니는 늘 스스로를 상처냈어요. 그래서 제가 옆에 있어야만 했어요.
 
언니는 유치원 다니기 전에 사촌 개씨발놈새끼한테 성추행을 지속적으로 당했었어요.
저희 집이 큰 집이어서 친척 내외분들이 자주 들락날락했었는데, 그 때마다 당했었던 거였어요.
문제는 언니가 당하는 장면을 부모님께서 목격하시고도 모른척 하셨다는 거에요.
 
정말 안타까운게, 이 시기가 부모님 전부 미쳐있었던 시기였어요.
언니 위에 오빠 하나가 있었는데, 그 오빠는 친척들에의해 살해당하고 할머니는 모든 걸 어머니에게 뒤집어 씌웠어요.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었는데, 사업 스트레스와 오빠를 잃은 충격에 어머니에게 모든 걸 추궁하고 욕했었어요.
게다가 큰 집이라 아들이 필요했었기 때문에, 자식을 잃어 미쳐있던 저희 부모님들에게 계속 아들을 낳으라고 주변 분들이 엄청나게 강요했었어요.
그래서 낳은게 나같은 쓰레기년이긴한데
 
이러한 이유로 부모님은 언니가 당하는 걸 보고도 전혀 지켜주지 않았어요.
그 새끼가 그만둘 때까지요.
 
언니는 오빠를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성추행과 부모님의 무책임함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고 각종 강박증과 히스테리도 이 때부터 시작되었었어요.
 
근데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언니가 저랑 동생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부모님은 이혼 후 엄마는 돈을 벌고 빚을 갚느라, 아버지는 여기저기 도망다니느라 저희 남매를 돌볼 수가 없었어요.
전적으로 언니 몫이었죠.
어린 저와 동생이 무언가를 잘못하면 항상 언니가 혼났어요. 저희 밥을 챙겨주는 것도 언니였어요.
언니는 항상 참고 있었고, 부모님께 착한 아이로 남고 싶었고 지킴 받고 싶었기때문에 계속 계속 참았어요.
 
그러다 친권이 아버지에게로 넘어가면서 저희 남매는 아버지와 살게 되었어요.
 
근데 언니가 20살이 되던 날, 그때 저는 중3이었어요.
밤에 강도가 들었었어요.
 
저랑 남동생은 큰 방에서 자고 있었고, 언니는 제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강도가 출입문이랑 가장 가까운 제 방에 들어와 언니의 배를 마구 칼로 찌른거에요.
언니가 저항하자 강도가 큰 방에서 자고 있는 저와 동생을 지목하면서
저항하면 니 동생들 목 다 따버린다고 했었대요.
그래서 언니는 저항도 못하고 강간당했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모의고사 있는 날이었는데 그날 새벽 4시에 갑자기 눈이 떠졌어요.
어디선가 제 이름을 부르는 미약한 소리가 들려서 거실로 나갔더니 집이 다 피범벅인거에요.
열려진 제방에는 언니가 눈만 치켜뜬채로 제 이름을 부르고 있었어요.
 
어떻게 된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언니가 죽어가고 있는게 눈에 보였어요. 이대로면 죽겠다는 걸 직감했어요.
근데 집 전화가 끊겨있었어요. 왜냐하면 집전화비가 밀려있어서 발신차단이 되어있었거든요.
그래서 범인이 놓고간 핸드폰으로 119에 전화했어요.
저는 언니랑 같이 앰뷸런스에 탔어요.
사경을 헤메면서도 언니는
동생을 지켜주세요, 동생을 지켜주세요, 그 놈이 와요, 동생을 지켜주세요 이 말만을 반복했어요.
 
병원에 도착하니까 새벽 5시 전이었고, 간호사 언니들이 부모님 어디갔냐고 물었어요.
부모님이 어딨어요
엄마는 연락하면 우리보고 자기를 버렸다고 소리치고
아버지는 맨날 시간나면 도박하고 가끔 정신차리면 좋은 아빠 모습 보이고 싶다고 공사장에 나가서 매일 집에 없었는데.
어딨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제가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고모부와 고모의 연락처를 알려드렸어요.
 
언니는 이 일을 겪고 난 뒤에 자기의 노력이 필요없다는 걸 알게 됐대요.
자기가 아무리 착한 아이, 동생을 돌보는 듬직한 첫째 노릇을 해도 부모님이 자기를 알아주지 못한다는 현실을 인정한거에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부모님을 칭찬할 수 있게 날씬한 몸매와 뛰어난 성적과 스펙을 갖춰도
아무것도 하잘 것 없다는 걸 인정한 거에요.
 
그런데 제가 대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일이 터진거에요.
 
언니는 아버지께 자기가 이제까지 부모대신 해왔던 모든 노력했던 걸 인정해달라고 했대요.
하지만 아버지는 언니가 노력한 걸 인정해주기는 커녕,
부모님이 힘들면 당연히 첫째로서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몰아부치고 추궁했어요.
 
어머니께도 자기가
미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동생들을 버리지않고 키워줬다고 그걸 인정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씹(섹스)은 누구나 하는건데 겨우 그까짓것같고 옛날 일 들춰내서 나약한 꼴 보이냐는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었어요.
 
이 일을 계기로 언니는 안그래도 바닥을 치던 자존감이 제로로 달려가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와는 인연을 끊어버렸고, 어머니와 동생과는 더이상 연락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언니가 제가 살던 자취방으로 왔어요.
 
저는 이 당시 아버지께 월세를 받고, 모든 생활비와 학업에 필요한 돈들은 알바로 충당하고 있었어요.
등록금 또한 장학금 받으며 냈고, 모자르다 싶으면 공장을 다니거나 학자금 대출을 했었어요.
 
이런 때에 갑자기 언니가 예고없이 들이닥치니 생활비고 뭐고 2배로 들기 시작하면서
제가 기존에 하던 알바로는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가 없었어요.
하루에 밥 1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보름이상 물 말고 먹어본 적이 없기도 했어요.
샴푸랑 치약, 비누도 없어서 원룸가에 이사갈때 버려지는 쓰레기 뒤져서 구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낮에는 학업, 밤에는 편의점 알바, 야간에는 공장 알바를 했어요.
 
그런데 언니는 제가 옆에 없으면 울면서 머리를 쥐어 뜯거나, 식칼로 자기 손목을 긋기도 하고
울면서 머리를 벽에 박아대고 온 집안을 엉망으로 쑥대밭으로 어질러 놨어요.
제가 부모님이랑 통화하려하면 옆에서 귀신들린사람처럼 눈을 치켜뜨고 서럽게 울고 추궁하고...
동생은 자기의 롤모델인 큰누나가 완전 미친년이 됐으니 충격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원래 자취방으로 놀러오면 몇일씩 있다가 갔는데, 이때는 1시간도 있지 못하고 가버렸어요. 자기도 미칠거같다고...
 
3학년이라 실습도 많았고, 이 실습이 정말 중요한 실습이었기때문에 놓칠 수도 없었어요.
 
몸이 부서질 거 같았지만 어떡해요. 언니를 버릴 수도 없잖아요.
언니도 자기 힘들때 저랑 동생을 키워냈는데, 이렇게라도 보답을 하자면서 버텼어요.
 
부모님과 언니 사이에서 어떻게든 화해의 장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저 또한 가족에 대한 상처가 깊어요.
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여서 꾹꾹 눌러담고 있었고, 지금도 그래요.
그런 상황에서 가족꼴이 돌아가는 걸 보고, 중간에서 아무것도 중재해주지 못하는 제 자신이 매우 증오스러웠고 자괴감은 깊어져만 갔죠.
하지만 나마저 언니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결국 상황은 더 악화되어만 가고, 저의 성적은 점점 하락했어요.
 
 
낮에 수업들어도 몸이 힘드니 대가리는 돌아가지도 않고
밤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는데 유흥가에 있어서 개같은 일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야간에는 에어컨 공장이랑 부품 공장가서 새벽 4시반까지 일하고 나면
제가 잘 수 있는 시간은 짧으면 2시간, 길면 4시간 정도밖에 없었어요.
 
안그래도 저 또한 몸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날로만 약해져갔고
스트레스도 쌓여만 가니 언니가 안보이는 곳에서 자해도 많이 했어요.
 
교수님들은 왜자꾸 수업을 빠지냐, 학회 가야하는데 왜 간다해놓고 안오냐
동기들은 뭔가 하면 넌 참석 제대로 한거 본적이 없다고 멀리했어요.
차마 이런 상황이란걸 털어놓을수가 없었어요.
자괴감을 이 이상 받으면 칼로 목 긋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을 정도였어요.
 
교수님과 동기들과의 신뢰도도 바닥을 쳤고
결국 성적도 바닥을 쳤어요..
 
결국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선택했어요.
 
휴학하면서
낮에는 주유소, 밤과 야간에는 공장일을 하면서 지냈어요.
수술했던 다리가 다시 약해지고 고꾸라질 정도로 일했어요.

학자금대출비, 언니랑 나 핸드폰비, 음식값, 상담비용, 집세, 전기세부터 시작해서
신용불량자가 된 아버지가 언니 명의로 쓴 것들이 언니 앞으로 고지서 날라오면서 그것들도 내야했고
 
심지어 이런 상황에 동생은 군대를 가야했기 때문에
군대 가기 전까지 있을 집이 없어 제 자취방에는 식구가 1명 더 늘었어요.
입대하기 전까지 얼마나 놀고 싶겠어요. 근데 눈치보이니까 누나 만원만, 2만원만 하는데...하...
 
그렇게 버티다가
제 전공이 전공인지라 실습하면서 관계를 쌓아갈 수 있었던 선배분들의 도움으로
원래 다니던 상담센터가 아닌
병원과 연계된 상담센터에 무료로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감사하게도 선배분이 대신 돈을 지불해주신거에요.
 
동생이 입대한 후
언니는 성폭력 센터와 연결되어
사회복귀를 돕는 센터가 연계되어있는 정신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언니가 입원하면서 입원과 생활에 드는 비용을 대기위해 더 열심히 일했고
언니는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강박증과 후유증이 엄청나게 많이 완화되었어요.
그 와중에 언니는 큰 용기를 냈고,
어머니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언니 앞에서 무릎꿇고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어요.
물론 이걸로 언니가 용서를 한건 아니었지만, 언니가 후유증을 이겨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저 혼자 모든 걸 책임질 수 밖에 없었어요.
외할머니가 위독해지시면서 어머니가 저에게 돈을 빌리는 일도 잦아졌고
언니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커졌고 집도 유지해야했어서
 
언니는 점점 나아졌지만
저는 여전히 고통을 참아가야만 했고,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고, 제가 좋아하는 공부를 미뤄둬야 했어요.
여전히 모아놓는 돈은 언니를 통해 빠져나가고
언니에게 들어가는 돈이 이번달은 적겠구나, 싶으면
미뤄둘수 밖에 없었던 핸드폰비과 학자금대출로 100이상 빠져나가고...
계속 순환되는 악순환이에요.
 
 
언니는 힘들면 제게 기댈 수 있지만
저는 힘들때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무도 없어요.
 
 
연구를 정말 좋아하고 그게 낙인데 그걸 할 수가 없어요.
 
 
학자금 대출을 받고 싶지만 이러한 이유로
일반 학자금 대출조차도 받지 못할 정도로 직전 학기 성적이 매우 안좋아요.
성적 기준 미달....
 
 
어떻게하죠...
 
언니에게 들어가는 돈은 계속 들어가야하고
제가 사는 집도 유지해야하고
학교로 가게 되면 지금 집 보증금도 빼야하는데 언니가 살아야 하니까
제가 학교다니면서 살 자취방도 마련해야하고
학자금 대출조차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부업체에 대출하는 건 내 미래를 담보로 거는거고
부모님은 애초에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휴학 기간도 총 3년까지라 내년 2월까지가 만기에요...딱 3년을 다 채워요...
3개월 가량 남았는데 어떻게 하죠....어떻게 학교로 돌아가죠....
 
혹시 이쪽으로 잘 아시는분
제발 조언좀 부탁드려요...
출처 고민게시판에 썼다가 좋지 못한 댓글을 본 후 글을 삭제했습니다.
자유게시판에 다시 썼다가 조언을 더 구하기위해 고민 게시판에 다시 올리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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