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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게시물ID : panic_15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41888
추천 : 14
조회수 : 23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8/03/28 19:29:15
머물 숙소는 강화 모 유스호스텔 3층이었다.

복도를 따라 맨 끝에서 네번째부터 두번째까지가 우리 반의 몫이었는데, 방은 아이들 번호순으로 나누어 23번(?)부터 34번까지 12명(?). 내가 속한 그룹은 맨 끝 방을 차지했다.

그리 넓지 않은 방에 화장실이 하나씩 있어, 문에서 바라보면 전체적으로 기역자 모양을 한 방에는, 기역자 한쪽 끝에는 문이 있고 반대쪽 끝에는 이불과 베개가 차곡차곡 개 있었다.

방의 정중앙 천장에 위치한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온다.

"ㅇㅇ남중학교 2학년 학생들, 지금부터 10시 30분 점호 전까지 취침준비를 끝내주십시오."







11시.

 불은 꺼졌지만 창문이 커서 그런지, 가로등 때문인지 방이 훤히 보인다. 나의 이불은 방의 맨 구석에 위치해 복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리다. 즉, 이불 개 놓는 자리다.

이불을 치워야 보이는 벽에는, 지금까지 이곳에 왔다 간 -아마 지금은 대학생쯤 되었을- 사람들의 낙서가 있다. 

-2001 ㅇㅇ왔다감 

같은 평범한 것에서부터, 

-93년 경기도 ㅇㅇ중학교 ㅇㅇㅇ 난 서울대간다

처럼 거의 10년 가까이 된 낙서도 있고,

-버디버디 ID : xxxxxx 친추

같은, 도데체 누구랑 친구를 하고 싶다는건지, 아니 왜 이런데서 친구를 구하는건지 궁금한 낙서도 있다.

이것들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종류들이다. 



- 밤에는 문을 열면 안된다
- 자거나, 깨어있어라



이상한 글이다. 도데체 뭘 말하고 싶던 걸까? 자거나, 깨어있어라 라니, 그럼 자는게 아니면 깬거지 그 사이의 경우가 있단 말인가? 가위눌림같은걸 말하는건가? 아니, 가위를 뭐 눌리고 싶어서 눌리는것도 아니고..





"야 밖에서 소리 안들리는데"
"조용히말해 X신아 잠이나 쳐자"

"아냐. 진짜 아무도 없어."

손목시계를 찾아 시간을 보니 새벽 3시경을 가리키고 있었다. 덥다고 창문을 열어놓고 자다보니 새벽의 찬 기운에 몇몇이 깬 모양이다. 물론 나도 깨어 있었다.


"ㅇ아. 밖에 나가봐라"
"아 뭘, 이렇게 크게 말해도 뭐라 안하는걸 보면 없을텐데 뭐"
"그럼 아무도 없는데 그냥 쳐 나가보지 왜 X랄이야."

"당연히 바로 뭐라 못하지 선생들 아래층에 있으니깐. 창문 열어놔서 다 들린다고"

"아냐."

눈치 하나는 좋던 L이었다.

"창문쪽에는 산밖에 없어."
"아래층 임마."
"아래층에 매점이랑 급식소밖에 없거든 임마? 선생님용 숙소는 전부 1층 반대쪽에 몰아놔서 안들려. 창문 밖에는 산밖에 안보이니 불켜도 모를걸?"


"그럼 ㅇ이가 나갔다 와봐. 진짜 없나 보게"
"없다고 하는데 왜 나갔다 와?"

P는 몇대 맞은 뒤에 밖에 나갔다.



불켜도 모를거라는 L의 말은 맞은것 같았지만, 전기를 끊은 건지 불은 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상관않고 반시간정도 신나게 놀았다.

단지 염려되는거라곤 P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야 누구 온다!"

자꾸 복도를 기웃거리던 J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잠시 짜증을 내다 다시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 놀 수 없었다.

내 자리에 누군가가 이미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은 체구때문에 나는 얼굴을 보지 않고서도 여기 아이들중 한명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챘다. 머리를 단정하게 깎은 남자아이였다. 한 초등학교 2,3학년 되어보였다. 그렇지만 흔들어 깨울까 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피부가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까맸고기 때문이다.(흑인같은 까만 피부가 아니었다)




"이것들이 잠은 안자고 왜이렇게 소란이야!"


이번에는 J의 장난이 아니었다. 내 자리에 누워있는 저놈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누워야 했다. 가까스로 옆의 친구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그 아이쪽을 향하여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난 눈을 뜰 수 없었다. 내 입을 뭔가가 무언가로 막아서




쉽게 느낄만한 촉감이 아니어서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굳이 묘사를 하자면 젖은 나무 껍질 정도의 느낌이었다. 

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그냥 잠에 들길 바랬지만, 그러지 못했다.

몇분이 지나고 몇십분이 지나도(물론 이건 내 기억에서의 시간 경과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뒤척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데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눈을 뜰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눈을 떴다.



머리를 단정히 깎은 깡마른 얼굴의 귀가 없는 어린아이는 나의 두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입술이 없는 그 아이는 입만 크게 벌려 웃는 표정을 하였다. 

이가 없었다.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듯이 '쉬' 라는 입모양을 하고는 

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고 아이들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은 전부 자고 있었다.

아니 쓰러져 있다는 표현이 맞는것 같았다.


귀가 없는 아이는 한명 한명 얼굴을 확인하더니 문 밖으로 나갔다.












6시경. 아이들은 일어났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P는 복도 반대편 끝에서 발견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3번째 경고를 화장실에서 발견했다. 

-밤에는 눈을 가리면 안 된다



난 아직도 이 말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싱겁게 끝난다.

혹시 저 낙서를 본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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