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파일을 영구적으로 삭제하시겠습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예를 눌렀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안되겠다며 일주일 만에 낸 자퇴서와 같이 지난 반년동안 그나마 내가 한 것이라고 자랑할 수 있었던 창작글 폴더가 날아가는 것에 나는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하였다. 애초에 그 글들은 전부 자기기만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지방덩어리인 음식을 먹으며 콜라를 제로 칼로리로 고르는 정도의 한심한 짓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처음 진심으로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중학교에 갓 입학하고 나서였다. 누구나 그렇듯 장난도 많이 치고 나름 공부도 한다고 생각하던 초등학생시절이 끝나고 나서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공부 좀 하라던 어머니의 잔소리와 집중 좀 하라던 선생님의 말씀 속에서 어떻게든 놀 궁리만 하던 나에게 중간고사 후 주어진 것은 62라는 숫자였다. 즉 내 앞에는 61명의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공부에서는 3억 광년쯤 떨어진 아이였던 나라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만, 나는 그 숫자에 꽤나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전까지는 모두가 평등한 한반의 학생들, 친구들이었으나 그 숫자가 새겨진 날부터 나는 단 한 번도 서로를 평등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로 항상 나의 곁에는 '내가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다니게 되었다.
나는 꽤나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공부는 귀찮다고 생각했다만 막상 공부에게서 멀어지자 내게 남는 것은 하찮고 도움 안 되는 게임아이디와 결코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신체조건 따위의 것들이었다. 내가 없는 것과 있는것, 무엇이 더 이득인가 냉정히 따져보았을 때 선뜻 있는 것이라는 답이 도출되지 않았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인 낡디 낡은 5층짜리 아파트에서는 뛰어내려도 죽지 못할 것 같아 으리으리한 학원건물 꼭대기에 섰을 때 든 생각은 사람의 가치 따위가 아니라 높아서 무섭다는 것이었다. 난간에 걸터앉아 딱히 살고 싶다는 느낌은 없지만 죽기도 싫은 부조리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하염없이 울며 학원 수업 종을 무시하고 집으로 갔다.
그 후로 학교에 가서 다른 사람을 볼 때면 항상 나보다 잘난 부분은 어디인가 살피게 되었고 그 반대급부로 나의 인간관계는 점점 좁아져만 갔다. 내 주위에 남은 몇몇 친구들은 지나치게 작은키, 어눌한 말투, 모자란 성적 따위의 문제가 있는 녀석들뿐이었고 그런 아이들과 어울릴 때면 편안함과 동시에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나에 대한 실망만이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