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 공작조로부터 지령을 받은 30대 남성 탈북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합동신문과정에서 위장 탈북사실이 드러난 직후다.
국정원은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30대 탈북자 1명이 지난 13일 경기도 시흥의 중앙합동신문센터내 숙소 샤워실에서 운동복 끈으로 목을 맨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숨졌다"고 공개했다.
국정원은 이 탈북자는 신원과 탈북 경위 등에 대한 조사를 받던 중 12일 북한 공작조로부터 탈북자 지원 국내 모 선교단체의 위치와 선교사 신원을 파악하고 보고후 잠복하라는 지령을 받고 탈북자 신분으로 위장해 국내로 침투한 사실을 자백했다고 설명했다.
정보 소식통은 "이 탈북자는 북한 공작조로부터 북한에 있는 가족을 볼모로 협박을 받았으며, 붙잡히면 '장렬히 자폭하라'는 지령을 받아 위장 탈북 자백 후 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는 탈북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공안당국의 감시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국정원은 탈북자아파트 등이 밀집해있는 양천구지역 담당요원을 대폭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탈북자들에 대한 감시활동이 대폭 강화된 것은 활동범위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려다 검거된 북한 특수요원 김명호ㆍ동명관과 2008년 8월에 검거된 '여간첩 원정화'도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로 잠입했다. 하지만 탈북자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위장탈북을 가려내는 데에 애를 먹고 있다. 탈북자 수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 2만명을 넘어섰다. 연도별로는 2007년 2544명, 2008년 2809명을 기록했으며, 2009년에는 사상 최대인 2927명에 이르렀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합동신문기간을 90일에서 180일로 늘렸지만 예전처럼 위장탈북을 모두 구분한다는 보장은 하지 못한다"며 "탈북자의 수에 비해 관할 경찰의 수도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간첩들의 검거 수보다 정치, 산업, 사회, 군 등 다양한 분야에 이미 분포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최근 간첩들은 테러보다 점조직처럼 사회전체를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검찰에 간첩혐의로 적발돼 검거된 인원은 2008년 40명, 2009년 70명, 지난해 10월까지 130명이며 이 중 기소된 인원은 2008년 2명, 2009년 2명, 지난해 10명에 이른다. 공안당국은 대공 수사인력을 크게 늘리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경찰청의 보안국 수사인력은 행정인력을 제외하고 2008년 349명, 2009년 381명, 지난해 482명으로 늘렸다. 서울경찰청에 배정된 인원만 131명이다.
하지만 양적 질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간첩활동에 태부족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적발된 북한 컴퓨터 전문가들은 국내 온라인게임프로그램을 해킹해 외화벌이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외화벌이수단으로 활용된 해킹프로그램은 추후 대남 사이버테러에 활용하기 위한 다목적 장치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군을 제대한 방산기업 임원들의 군기밀유출도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사에 군사기밀을 팔아넘긴 김상태(81) 전 공군참모총장, 이 모(62) 예비역 공군대령, 송 모(60) 예비역 공군상사가 검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합동원거리공격탄 도입수량, 장착전투기배치장소 등은 물론 군사3급비밀 국방중기계획, 2급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합동군사전략목표기획서' 까지 총 12회에 걸쳐 군기밀을 누설했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에는 북한 노동당 225국(옛 대외연락부)의 지령을 받아 국내에서 간첩활동을 벌인 종북성향 지하당조직 '왕재산'에서 민주당 출신 임채정 전 국회의장 정부비서관이 2인자로 활동하다 공안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