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명 성 요한 23세 (Saint Ioannes XXIII) 세속명 안젤로 주제페 론칼리 (Angelo Giuseppe Roncalli) 출생지 이탈리아 베르가모 사망지 바티칸 생몰년도 1881년 11월 25일 ~ 1963년 6월 3일 (81세) 재위기간 1958년 10월 28일 ~ 1963년 6월 3일 (4년 218일) 대관미사 1958년 11월 4일 장례미사 1963년 6월 6일 시복 2000년 9월 17일, 요한 바오로 2세 시성 2014년 4월 27일, 프란치스코 축일 10월 11일 / 6월 4일(캐나다 성공회,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요한 23세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가 많이 전하는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교황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상류층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무시와 푸대접을 당하곤 했다. 한 번은 어느 고급 파티에서 누군가 성직자인 그에게 여자의 나체 사진을 보여주며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요??" 하고 물었다. 요한 23세는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아, 네. 어머님이신가 보군요. 참 잘생기셨습니다."
- 요한 23세가 외교관으로 재직하였을 때의 일이다. 한 여인이 파티에서 야한 복장으로 나타나서 론칼리 몬시뇰에게 아는 척을 하자, 그녀에게 사과를 건네며 이렇게 디스를 했다고 한다.
"자매님!! 이 사과를 드시고 부끄러움을 느끼시지요. "
이 에피소드는 구상 시인이 요한 23세에 관해서 쓴 수필에 소개된 것이다.
- 요한 23세는 밤에 잠을 조금 자고 일찍 일어나는 대신 낮잠을 자곤 했다. 요한 23세가 낮잠을 자는데 뭐라고 잠꼬대를 하고 있어서 들어봤더니,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릅니다. 교황에게 물어보지요. "
- 로마시 경비대장이 요한 23세를 알현하러 와서 예법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요한 23세는 경비대장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일어나세요! 당신은 장교지만 나는 사병이었답니다. "
사실 요한 23세는 신학생 시절 징집되어 병사로 1번, 사제 시절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의무병으로 징집되어 복무한 적이 있다. 대전 중에 군이 복무 중인 사제를 군종장교로 임명함에 따라 장교 임관.
- 요한 23세가 아직 론칼리 추기경이던 시절, 동유럽의 공산주의 정권 밑에서 복역하다 풀려난 추기경이 로마에 와서 론칼리 추기경이 맞이하러 나갔다. 같이 기차를 타고 바티칸으로 향하는데, 감옥에 있다 나온 이 추기경은 바깥 구경을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차가 잠시 정차한 틈을 타 둘이 같이 산책을 하기로 했는데, 바깥 구경을 정신 없이 하는 사이에 기차가 떠날 시간을 놓쳤다. 감옥에 있었던 추기경이 당황하는데, 론칼리 추기경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 괜찮아요, 괜찮아요. 지금 제 뒤에 있는 사람 보이죠? 이 사람이 기관사입니다. 기차에서 내려올 때 잡아왔죠. 이 사람이 있는 한 기차는 떠나지 못합니다. "
- 요한 23세는 소탈하면서도 개방적인 인물이라 가톨릭 교회의 오랜 관성을 혁파하려고 했다. 그래서 권위적이며 보수적인 로마인이었던 당시 교황청 국무원장 타르티니 추기경과 마찰이 잦았다. 교황 집무실이 국무원장실 바로 위에 있던 관계로, 국무원장은 요한 23세에게 화가 나면 "저 위에 계신 분"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 소식은 돌고 돌아 요한 23세의 귀에까지 전해졌고, 국무원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요한 23세가 말을 꺼냈다.
"저 위에 계신 분은 오직 하느님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국무원장보다 1층 위에서 일하는 사람일 뿐이고요. 다시는 계급을 혼동해서 부르지 마십시오. "
- 요한 23세가 교도소를 방문하였을 때, 수감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들이 제게 오시기 어려울 것 같아서, 제가 여기에 왔습니다. "
- 요한 23세가 교황청을 산책할 때였다. 포도원에서 일하던 정원사가 와인을 한 잔 권했다. 요한 23세는 맛을 본 뒤 이렇게 말했다.
“엔리코, 다른 신부들이 여기에 와서 와인을 맛보지 못하도록 해주겠소? 한 번만 맛을 보면 추기경들이 모두 미사에 쓰자고 할 테고, 어쩌면 하루에 네댓 번이나 미사를 드리자고 할지도 모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