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는 인도의 형용사다.
인디고가 인도에서 수입된 색소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식물학자들이 인도의 염색 식물'이라는 뜻의 '인디고페라 틴크토리아' , 간단하게 줄여서 인디고'라고 부르는 식물이 있다. 그러니까 인디고는 식물 이름인 동시에 색소이름이다. 이 식물의 잎에는 다른 어떤 식물보다 많은 색소가 농축되어 있다.
인디고는 하얀색 또는 분홍색꽃이 다발로 피고 콩같이 생긴 열매가 맺히는 다년생 관목이다. 식물학적으로 볼 때 대청과 인디고는 친척 관계는 아니지만 두 식물 모두 색소가 잎에 농축되어 있고 또 오줌과 함께 발효된다. 인디고와 대청의 차이는 하나, 인디고의 파랑이 짙다는 것이다. 인디고는 대청보다 서른 배나 짙은 색을 낸다.
1498년 바스코 다가마는 인디고를 얻을 수 있는 뱃길을 발견했고, 포르투갈 상선대는 유럽산보다 훨씬 질이 좋은 인도의 색소를 실어날랐다. 대청 재배농가들은 생존권을 위해 투쟁했다. 독일에서는 1577년 인디고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국가가 인디고 사용 금지명령을 내렸다. 프랑스에서는 1598년 인디고 사용이 금지되었고 영국에서는 모든 인디고가 폐기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인디고 사용금지 규정을 1611년 다시 폐지했다. 그때부터 영국은 인도의 상선대를 소유하면서 인디고를 수입할 수 있었다. 1654년 독일 호아제는 인디고를 '악마의 색'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인디고는 품질이 좋았다. 게다가 무역상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디고의 가격도 계속 하락했다. 또 대청으로 염색을 했는지 악마의 색'으로 염색을 했는지는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인디고 사용 금지령은 실질적인 힘이 없었다. 품질이 가장 낮은 인디고라고 품질이 가장 좋은 대청과 똑같은 파랑을 만들어냈다. 기록을 보면, 뉘른베르크의 염색공들은 매년 인디고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했다. 이 서약은 단순히 명예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디고를 사용한 죄는 사형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인공 색소는 오날날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화학 산업 자체가 인공 색소 산업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거대 화학회사들의 이름을 한 번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회히스트는 회히스트 색소 산업,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바이어도 바이어 색소 공업이다. 또 바스프의 원래 이름은 '바덴 아닐린 색소 및 소다 공업'이며 필름화사로 유명한 아그라의 이름은 아닐린 색소 주식회사를 줄여 약자로 만든 것이다.
모든 나라의 화학자, 기술자들이 저렴한 인공 인디고의 제조 방법을 찾고 있었다. BASF는 이 프로젝트에 1,800만 골드 마르크를 투자했는데 그 액수를 오날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수천 억원대에 이른다. BASF는 아닐린 덕분에 부유한 회사가 되었지만 인공 인디고를 위한 투자액이 기본 자산을 넘어서면서 주주들이 인디고 프로젝트의 중단을 요구했다.
인공 인디고가 대체 무엇 때문에 필요했을까?
천연 인디고는 인도의 개농장에서 재배되고 있었고 그곳의 노동자들은 하루에 한 줌의 쌀만 주면 족했으니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 천연 인디고의 상권은 영국인들의 손에 놓여 있있다. 영국인들은 인공 색소에 조심스럽게 대처했다. 그들은 천연 인디고의 가격을 낮추어 인공 인디고에 대한 관심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하지만 연구는 계속되었다. 영국의 무역상들은 인디고 재고량을 계속 늘려나갔다. 인공 인디고가 시장에 나오면 천연 인디고를 싼 값에 내놓을 작전이었다. 인공 인디고가 잊혀질 째까지 계속해서 말이다.
1897년 BASF는 개가를 거두었다. 인공 인디고가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영국 상인들의 천연 인디고 매출은 1만 톤에 달했지만 독일은 인공 인디고를 600톤을 팔았을 뿐이다. 그러다 1911년 영국인의 매출량은 860톤으로 줄었고 독일의 매출량은 2만2천톤으로 늘었다.
BASF의 직원 수는 당시 9천명을 넘었다. 아돌프 배이어는 인공 인디고를 발견한 공로로 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