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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불쾌한 기분으로 처음 지른 정장
게시물ID : fashion_1561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ega32x
추천 : 13
조회수 : 1992회
댓글수 : 45개
등록시간 : 2015/05/17 01:17:37
1.

한 달 남짓 됐었는데.. 이병헌 감독의 영화인 <스물> 개봉을 맞아 영화관련 웹 사이트에서 리뷰 이벤트가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리뷰를 잘 쓰면 여러 상품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50만원 상당의 지이크 파렌하이트 의류상품권이었어요. 졸문이지만 리뷰를 써서 그 상품권을 받았었습니다. 

20150424_203958.jpg


받고 나니 기쁘더군요. 상품권에 기한이 있어, 이걸로 뭐를 살까 빨리 고민을 했었습니다. 처음엔 의류상품권의 금액에 상품을 맞춰 여러가지 사는게 이득이지 않나 고민을 했었어요. 그러다 제가 아직 한 벌 정장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서울 동묘 시장 같은 데 가면 위 아래 3천원씩해서 6천원이면 살 수 있지요. 첫 정장은 좋은 걸 해야한다는 주변의 고견을 받들어 결정을 내렸어요. 첫 정장은 몇십만원 짜리 하는 걸로 맞춰보자. ...비록 어디 기업에 취업한 건 아니었지만, 두 달 전에 대학을 졸업한지라 그걸 기념해서라도요. 

포항에 사는 사람인지라, 쓸 수 있는 매장을 찾아봤습니다. 그러다 지이크 파렌하이트 포항 애비뉴점에 가보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포항 그랜드 애비뉴 건물에 있기 때문에 포항 애비뉴점이지요.) 상품권 쓰기 전에 전화를 하고, 활용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뒤 갔지요. 다만 그 때부터 좀 찝찝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전화에서 가능하면 휴일이 아니라 평일에 와 달라고 하더군요. 왜 인지는 말을 하지 않길래 뭔가 사정이 있나 싶었어요. 결국 평일에 갈 시간이 없어서 어린이날에 갔습니다.

일부러 상품권을 먼저 보여줄 필요는 없으니 일단 해당 매장에 가서 옷들을 골랐습니다. 계산을 할 때에 의류상품권을 보여줬지요. 그런데 처음 옷을 고를 때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하고, 잘 어울린다며 사라고 부추기던 점장의 표정이 싹 굳어지더군요. 일단 애써 웃음은 짓던데, 전화통화 때와는 달리 의류상품권을 보더니 본사에 전화를 해서 알아봐야 한다며 잠시 알아보러 갔습니다.
 
알아보고 난 뒤부터 그 점장은 제 앞에서 굉장히 투덜투덜 짜증을 내더군요. 바쁜 어린이날에 손님들도 많이 오는데 의류상품권을 가지고 와서 물건을 사려 한다느니 뭐라느니 하길래 (아마 이것 때문에 평일에 오라고 했었나 봅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본사의 이름이 적힌 의류상품권으로는 자신들에게 마진이 한 푼도 남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마진이 남지 않는다면 사실 그 정책에도 문제겠지만, 일단 그게 제 앞에서 짜증 내며 말 할 문제인가 싶었습니다. 자기네 상품권이고, 쓰는게 가능하다고 소비자에게 말해놓고서는 이제 와서 앞에서 투덜투덜대는 꼴이라니 말이죠. 

어차피 제 돈 들 일은 없었지만, 원래 상품권이 이런가 싶었습니다. 어린이날이라 손님들이 많다고 했지만 얼마 오지도 않고, 온 몇몇 사람들은 그냥 잠깐 둘러보다 나가던데. 상품권을 꺼내기 전에는 그렇게 친절하던 사람이, 꺼낸 후에는 태도가 돌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그러려니 넘어갔습니다.

2. 

우여곡절 끝에 그 상품권으로 정장을 한 벌 샀습니다. 그런데 수선을 위해 다리 길이 치수를 맞춰놓은 바지 대신 허리 사이즈가 훨씬 큰 전혀 엉뚱한 바지를 넣어놓았더군요. 해당 매장이 아울렛에 있어서 그 건물 안에 자체적으로 있는 수선실에 바로 수선을 하러 갔는데, 치수를 맞추기 위해 옷핀을 꽂아놓은 흔적도 보이지 않고, 육안으로 봐도 바지가 커 보여 말 그대로 엉뚱한 바지를 주더라구요. (정장의 종류는 같았습니다.) 

수선실 직원도 똑같이 얘기하길래, 매장의 점장과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바지를 잘못 준 것 같다고 얘기했죠. 그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수선실로 와서는 바지를 봤습니다. 몇 번씩 보고는 자신들이 준 바지가 맞다고 얘기하더군요. 끝까지 우기니 맞겠구나 싶어 수선비를 내고, 수선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바지 허리 사이즈가 맞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점장에게 전화를 하고 교환을 받으러 지이크 파렌하이트 포항 애비뉴점에 다시 갔습니다. 전화를 하는 동안엔 명백한 매장의 실수이니, 그 무례한 태도까지 합쳐서 어지간하면 죄송하다는 말을 하겠거니 싶었지요. 하지만 그런 것도 없이 '바꿔주겠다' 라고만 하고 말더군요. 가 보니 점장은 아울렛 내에서 매장의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 때문에 공사하는 곳에 가봐야 한다는 핑계로 사라져 있었습니다. 대신 전날에 내려와서 바지 사이즈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직원만이 있었지요.
 
사실 저를 상대했던 사람은 점장이기 때문에 그 직원은 큰 상관이 있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선실에서 바지의 허리 사이즈가 맞지 않다고 했을 때, 그 사람도 내려와서 보고는 자신들이 준 바지가 맞다고 우겼기 때문에 어차피 책임은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대신 매장 측의 잘못 아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잘못이 없고 수선실이 수선을 잘못해서 생긴 책임이다. 우린 어차피 교환해주지 않느냐. 우리 잘못이 아니다' 라며 계속 잡아떼더군요. 애초에 허리 사이즈가 잘못된 걸 줬는데 수선실의 잘못이라니. 언성을 더 높여야 하나 싶었는데 그래봐야 뭔가 바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어차피 저 말고도 옷 살 사람은 많을테니 배 째라는 태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요새는 되려 손님이 갑질한다고 언제든지 언론 플레이를 해댈 수 있으니, 대놓고 화내봐야 저한테 별로 좋을게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랜드애비뉴건물전경0670.jpg

(그랜드 애비뉴 건물) 


3. 

결국 교환은 받았습니다. 하지만 암만 봐도 괘씸해서 결국 지이크 파렌하이트 본사에 전화를 걸어 포항 애비뉴점에 대해 컴플레인을 넣었습니다. 의외로 컴플레인 전화를 받은 해당 브랜드 담당자가 해당 매장 점장과 직원에게 패널티와 특별 교육 조치를 하겠다고 순순히 말하더군요. 

그 직원도 직원이지만, 제 번호로 점장이 직접 사과전화를 하라고 요구를 했는데, 몇 시간 후에 굉장히 굽신굽신 거리며 죄송하다, 이렇게 경고조치를 받으면 안된다며 사정하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는 포항 애비뉴점 점장의 전화가 왔습니다. 어린이날에 매장도 옮기고 하니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았는지라 좀 신경질적이었다는 씨알도 안 먹히는 변명을 하더군요. 근데 그 신경질을 손님한테 풀면 어떡하냐는 말이죠.

컴플레인이라는게 효과가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냐 싶었는데, 자신의 직장생활에 차질이 생길 불이익이 가해지고 나서야, 사람이 이리도 빠릿빠릿해 지는구나... 몇 분동안 사죄 전화를 받고 따져 물었습니다. 다음 번에 다시 오시면 잘 해 드리겠습니다는 점장의 말에 필요없다는 말을 하고 끊어버렸지요. 자신에게 강한 존재에게 압박을 받고 나서야 굽신대는 태도가 영 불쾌했습니다.

옷을 바꾸고, 컴플레인을 걸어 사과전화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이렇게 사람들은 사과하는 걸 싫어할까. 미안하다고, 그 간단한 말을 하면 될 거 가지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플레인을 걸지 않으면 "미안하다" 대신에 "미..미...미...미친 놈아! 너도 잘못한 거 있잖아!" 라는 소리를 듣는 거구나 싶더군요. 그냥 그 때 내가 교환 받으러 왔을 때 다른 데로 새지 말고 '미안합니다' 라는 다섯마디만 했으면 컴플레인 전화를 걸어서 자기가 불이익 받을 일도 없었을텐데. 사과를 받아서 기분은 풀렸지만 굉장히 씁쓸한 기분으로, 저는 마침내 첫 정장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4. 

다만 일을 겪고 돌아오는 길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영화사에서 개최한 이 이벤트가 해당 브랜드인 지이크 파렌하이트 쪽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건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원래 이 브랜드가 의류상품권을 이런 식으로 쓰게 만드는건가 싶었지요.

해당 아울렛이나 백화점의 의류상품권이 아니고 브랜드 이름으로 된 의류상품권인데, 할인은 둘 째치고 이걸 해당 매장에서 받게 되면 그 매장에 남는 마진이 하나도 없다니. 매장 측에서는 그럼 옷을 하나 공짜로 줘야 하는 셈이지요. 그 매장 점장의 태도가 하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에 저 말이 과연 진실일까 싶기도 한데...만약 맞다면 이제 여기서는 무서워서 상품권 못 쓰겠구나 싶어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진이 남지 않는 의류상품권이라면 어느 지점에 들고 가도 손님이 점장한테 욕 먹는 거 아닐까 싶어서요. 

물론 다른 지점도 이 지점만큼 손님에 대한 응대가 이리도 무례할까 싶었습니다만 말이죠. 마진 따지지 않더라도 옷 잘못 준 것만 해도 자신들의 실수인데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니 말입니다. 아마 자신들은 마진도 남지 않는 옷을 줌으로써 나름의 정당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거기 매장 마진까지 생각해 줘야하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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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본사에 컴플레인을 걸 때도 상품권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더군요. 거기 담당자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지이크 파렌하이트 측의 의류상품권만 그렇다면, 이 의류 브랜드의 운영 방식 자체에도 큰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튼 이 놈의 나라는 뭐든 곱게 말하면 들어먹지 않는 거 같아 많이 씁쓸했어요.

그렇게 첫 정장이 생겼네요. ...그나마 옷은 괜찮다만.


p.s. - 정말 자기네 브랜드 의류상품권은 마진이 하나도 남지 않는 건지 궁금하더군요. 뭐, 사실이라고 해도 그게 매장의 태도를 변호하지는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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