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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철학하다. -2- 내가 경제무관념자가 된 까닭.1
게시물ID : phil_156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명탐구자
추천 : 1
조회수 : 27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8/02 09:05:01
<선생, 돈을 부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지금으로 부터 약 12, 13년 전에 내가 화천 감성 마을로 소설가 이외수 선생을 찾아뵈었을 때, 이 선생께서 당시 나에게 해 준 진심 어린 충고다.
 
 
본격적으로 돈을 철학하기에 앞서 이를 행하는 주체인 나에 관해 솔직하게 사유하고자 한다. 나는 내가 현대인들의 기준에서는 경제무관념자, 경제적장애인 등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내 통장 잔고는 172 만원이 조금 넘고, 내 지갑에는 현금 10만원이 들어있다. 또 매달 2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국민 연금으로 납부하고 있고 몇 달 전 부터 매달 50 만원을 연금 보험으로 납부하고 있다. 이외 소소한 암 보험 등에 가입해 있다. 나는 이외에 부동산 등 기타 다른 재산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만약 다른 재산이 있다면 지난 세월 동안 <길 없는 길>을 걸어오며 알게 모르게 심득 체득한 무형의 자산이 있을 뿐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된 상황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내가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며 비명횡사할까봐 나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고 계신 후원자 그룹의 지원 덕분이지, 나의 역량에 기인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현실 능력이 전무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20대와 30대 까지 운동 몇 분야에서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서 상당하다는 것은 적어도 당대 세계 기록 기준으로도 이에 근접했거나 이를 상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20대의 한 때는 유명한 어떤 게임에서 랭킹 1위를 한동안 유지하기도 하였다. 30세 이후로 자기 철학과 사상을 정립하고 세상에 나갔을 때 몇몇 언론 및 방송에 소개가 될 정도는 능력이 되었다. 또, 당시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나를 전문가로 섭외하고자 한 바 있다. 한 매체의 기자는 나를 인터뷰 하며 나더러 한 분야의 선구자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한 불교방송에서는 나를 고정 패널로 섭외하고자 한 바도 있었다. 누구나 알만한 유력 매체의 편집 국장을 역임한 현존하는 언론계의 전설 중 한 분이 나를 찾아와 내가 사회적으로 활동하게끔 나와 내 주변을 설득한 일도 있었다. 또, 내가 문호를 개방하고 제자들을 잠시 받아들였을 때 그 문하에는 누구나 알만한 집안의 자식이나 후손들도 있었다. 대법관, 국무총리, 중견 기업 창업주, 교육청장, 대기업 최고위 임원 등등. 내가 말하는 것이 거짓 아닌 사실이라면 정말 이상하고도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춘 자가 경제적 무관념자요 경제적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자의 통장 잔고가 어떻게 채 200만원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나는 10세 이후로 고대의 철학자를 꿈꾸었기에 다방면에 걸쳐 매우 뛰어난 철인, 내지 초인을 내 삶의 모델로 삼아왔다. 그러니 내 기준에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나 외 그 누구도 없다.는 삶의 자세와 실천, 입증 정신 등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 누군가가 정말 치열하게 이러한 삶의 자세를 현실에서 실천하며 30년 이상 스스로 입증해 온 자가 있다면 자연히 그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그 길에 어울리는 온갖 능력을 갖추게 된다. <바람의 파이터>로 유명한 극진회관 창시자 고 최영의 선생의 말처럼 천일의 수련을 '단'이라 하고 만일의 수련을 '련'이라 한다면 적어도 나는 내 길 위에서 이 <단련>을 해온 것이다. 헌데, 내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단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운동, 게임, 사상과 철학 등과 관계된 능력 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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