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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철학하다 -4- 내가 경제무관념자가 된 까닭.3
게시물ID : phil_156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명탐구자
추천 : 1
조회수 : 2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02 19:16:47
내가 경제무관념자가 된 까닭.3
 
 
게임에 로그인하니 현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나는 게임에 관해서는 단 하나도 모르는 초짜였기에 그 청년이 내게 기초적인 조작법, 아이템 수거 및 판매, 방 만들기, 암호걸기, 친구 초대하기 등에 관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몹(게임 안에서 캐릭터가 제거해야 할 ‘움직이는 대상’. 몹을 제거함으로써 점수를 획득하거나, 경험치를 쌓아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을 잡아 아이템을 획득하면 그 중 고가의 아이템을 나 대신 매매해 주곤 했다. 이 청년은 당시에 이미 결혼한 상황이었으므로 처음 며칠을 제외하면 하루에 아주 잠깐씩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아예 그 PC방 자체를 떠나 다른 PC 방으로 옮겼고 이후로는 다시 오지 않았다. 기초를 겨우 안다고 해서 그 세계에서 바로 고수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는 것은 적고 모르는 것 투성이였던 까닭에 이것 저것 궁금해진 나는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곤 했다.
 
 
"저기, 보스 몬스터 클리어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저기, 초보라서 그런데 좀 여쭙겠습니다. 매매할 때 사기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상대가 내게 사기 치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게임 속 유저들은 대개 내 허름한 옷과 무기 등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채팅창에 적고는 했다.
 
 
"초보 즐~"
"즐~"
"재수 없어. 즐~"
"웬일이니, 즐~ 즐~"
 
처음에는 유저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 "즐~"이라는 말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이 "즐~"이라는 말이 "응 안돼 꺼져, 저리가.' 등으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용도로 쓰이는 신조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유저들의 실제 성별, 연령 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게임 속에서는 모두들 캐릭터와 아이디, 레벨, 장비 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유저 중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 기분 좋게 대화를 진행하는데, 갑자기 상대 유저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도 있다.
 
 
"나 유치원 가야 해서 이만"
 
 
또, 내게 매우 친절하게 접근해서 이것 저것 알려주고는 매매창을 띄운 후 내 옷과 갑옷, 보석 등을 보자고 하고서는 사기 수법을 통해 물품을 가져가는 유저들도 있었다. 또 한번은 한쪽 구석에서 아이템을 버렸다 주웠다 하는 유저를 볼 수 있었는데, 호기심이 발동해 무척 궁금하긴 했으나 하도 게임 세상에서 사기 당한 일이 많아 감히 다가가서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게임 속 세상은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었다. 정말 별에 별 인간  군상이 다 있었다. 이렇게 내가 맨 땅에 헤딩하며 게임 세계에서 온갖 경험을 겪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이렇게 조언해 주는 이가 있었다.
 
 
"블리자드 홈페이지 들어가면 게시판들 있어요. 나는 거기서 어지간한 정보를 확인해요. 한번 가보세요. 여기서 헤매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나는 이 조언자의 말에 따라 블리자드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수 많은 게시판과 셀 수 없이 많은 글들이 있었다. 나는 게임을 하며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한편, 게시판 글을 읽고 분석하고 또 분석해 그 중에서 양질의 정보를 추려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대체 어디서 부터 이 작업을 시작해야 좋을 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고레벨 유저, 즉 게임 속 고수로 보이는 유저들의 글을 틈나는 대로 읽으며 게임에 대한 전체 개요 및 개념에 관해 대략적인 감을 잡고서야 본격적인 게임 분석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게임을 시작한지 약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내 메인 케릭터는 레벨99가 되었고 보조 캐릭터도 레벨 80이 넘게 되었다. 또, 매매기법을 활용하는 법도 익숙해졌다. 게임 속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이나 그 가격에 대해서도 대략 알게 되었다. 또 그동안 매매를 하면서 가격도 정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거래자들을 몇 알게 되었다. 이들은 나와 같은 PC방 죽돌이가 아니라 학교, 직장 등을 마치고 하루에 1~2 시간 정도 투자해 아이템 앵벌이 하는 전문 앵벌이 유저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시스템을 분석하고 분석해 드디어 게임의 핵심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이것으로 나는 한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아무리 순위가 떨어져도 늘 랭킹 10위 안쪽은 유지했다.
 
 
세계 랭킹 1위를 내가 한동안 유지하자, 내 아이디를 전세계 유저들이 기억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에 눈 뜨게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브랜드화>였다. 나는 어느새 게임의 해당 서버를 대표하는 랭커요 하나의 브랜드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전세계 유저들은 나와 함께 한번이라도 게임을 같이 해보기를 기대했고, 나와 대화를 나누고자 수 없이 시도해 왔으며, 내가 장비한 무기나 갑옷이 그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하곤 했다.
 
 
불과 6개월 만에 나는 유저들의 기피 대상에서 선호 대상으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길드 마스터로 있던 길드원들과 게임을 하고자 잡은 방에 한 이탈리아 소녀가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이 이국 소녀는 내게 자신이 얼마나 많은 조던링(당시 게임 속 화폐 단위로 그 당시 한개에 5000원 정도에 거래되곤 했다. 지금으로 부터 거의 20년 전이니, 현재 가치는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이 있는지 내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게 칭찬을 듣기를 원했다. 나는 이때 부터 게임 그 자체 보다는 게임 속 내 평판과 인지도 등 내 <브랜드>를 활용해 국가간 아이템 매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외국 유저들은 내 아이디와 캐릭터를 신뢰했고, 나는 어려움 없이 국가간 매매를 지속해 나갈 수 있었다. <브랜드화>된 내 캐릭터와 아이디는 게임 세계에서 그 어떤 다른 것 보다 더 뿌리칠 수 없는 특권 중에 특권 그 자체였다. 당시 싯가 5000원 짜리 게임 속 화폐 하나를 얻기까지 거의 몇 개월이 걸렸는데, 이제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조던링을 매매로만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후로도 다양한 게임을 접했고 대개 그 게임에서 최고가의 아이템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또, 아이템 강화 등에 성공해 당시 현금으로 개당 수백만원짜리 장비를 풀셋으로 갖춰입기도 하였다. 할 때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물러날 때에는 미련 없이 다 나눠주고 떠나곤 했다. 내가 결정적으로 게임 세계를 떠나게 된 일이 어느 날 발생했다. 나는 이 게임에서도 아이템 하나당 적어도 100만원 이상 가는 장비를 갖추고 있었고, 게임 세계에서 나름의 소득도 얻었고 더는 게임 세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주변에 나눠주고 홀가분하게 떠나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내 의도와 행위는 그 동안 친했던 유저들로 하여금 큰 불화와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아이템을 일괄 판매하여 동일한 현금을 나눠준 것이 아니다 보니, 검, 투구, 장갑, 상의, 하의, 신발 등 그 가격이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제일 비싼 것이 검으로 당시 수백만원에 현거래 되고 있었다.
 
 
헌데, 당시의 내 신조는 게임 화폐나 아이템을 현금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임은 그저 게임으로 즐긴다는 것이 내 기본 입장이었다. 나의 이러한 기본 입장과 저마다 다른 아이템 가격으로 인해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물론 이들은 모두 성인들이었다. 대학원생, 직장인 등등)이 서로를 향해 원망하고 욕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껴 게임 캐릭터를 삭제하고 그 세계를 떠나버렸다. 하루 18시간 이상을 게임에 투자했고, 가능하면 초집중을 하고는 했다. 이 세계를 떠난 후 정보 세계에 가서도 톱랭커가 되었고 나를 많이 따라주었던 한 여중생에게 아무 조건 없이 거액을 넘겨주고는 미련 없이 그 세계를 떠났다. 나는 이 세계들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돈 주고도 결코 살 수 없는 그 무엇들을 나는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도 배울 수 있었고, 시스템의 가능성과 한계 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었다. 또, 권력이란 사람들이 그것이 있다고 믿는 바로 그곳에 존재한다는 권력의 속성 또한 깨칠 수 있었다. 또, 사람들은 덕을 나눠주기 보다는 저마다 남에 덕 보려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충분한 시간 등을 투자해 착실히 갈고 닦아 고수가 되기 보다는 <빨리 빨리> 라는 식으로 일확천금과 요행을 바라는 인간의 보편 심리 또한 깨닫게 되었다. 또 인간이 익명성 안에서 그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또 그 얼마나 초라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 보다 <인간 됨됨이>, <열정>, <브랜드화>의 중요성에 새삼 눈 뜨게 되었다.
 
 
지금으로 부터 거의 20년 전 게임 아이템 하나 하나가 내 현재 통장 잔고와 맞먹는다. 나의 이러한 경제무관념은 정말 대체 그 어디서 왔을까? 계용묵의 소설 <백치 아다다>의 여주인공 아다다야 말로 경제 관념에 관한 내 거울이자 자화상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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