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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훌레구의 서방정벌 - 첫번째
게시물ID : history_156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8
조회수 : 114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5/08 17:45:19

1251년 열린 쿠릴타이에서 ‘예케 몽골 울루스(Yeke Mongghol Ulus)'의 4대 대칸 뭉케는 자신의 아우인 훌레구에게 이란 총독직을 주었습니다. 이 밖에 뭉케는 훌레구에게 몽골 울루스의 이란 지배에 큰 방해가 되는 마잔다란의 이스마일리(Isma'ili)파의 영지와 이제는 허울만 남은 바그다드의 아바스 칼리프조를 진압하라는 임무와 함께 ’아무다리아의 기슭에서 이집트 땅의 끝까지 칭기스칸의 관례와 관습과 법을 확립하라. 항복하여 내 명령에 순종하는 모든 자를 친절과 호의로 대하라. 누구든지 네게 저항하는 자는 그를 굴욕 속으로 던져 넣으라‘라는 말과 함께 시리아 정복의 임무를 내렸습니다.



뭉케가 아우인 훌레구에게 내린 이 임무는 지난날 그들의 할아버지이자 ‘예케 몽골 울루스’의 건국자인 칭기스칸이 1219년 단행한 호레즘샤 왕국 원정이후 다시 한번 이슬람 지역에 휘몰아치게 될 푸른 광풍의 서막이었습니다.



대칸 뭉케에게 임무를 부여받은 훌레구는 1253년 가을 몽골고원을 출발했습니다. 그 원정군은 주력은 몽골 각 천호에서 10호당 2명의 비율로 공출된 몽골전사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몽골본토와 그 주변에 있는 각 부족출신들이 훌레구의 서방원정군을 구성했습니다. 1253년 가을 몽골고원을 출발한 훌레구의 서방원정군은 2년 동안 마치 유람하듯 알말릭과 오르가나를 지나며 그 지역의 지배 가문인 차가다이가(칭기스칸의 둘째 아들인 차가다이의 가문)로부터 큰 환대를 받음과 동시에 병량과 병사들을 준비하며 와라 알 나흐르에 도착했습니다. 훌레구의 서방원정군이 와라 알 나흐르에 도착했을 무렵에 훌레구의 서방원정군은 대군단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차가다이가 출신의 왕족 테쿠테르 휘하의 군대와 조치가(칭기스칸의 첫째 아들의 가문)의 왕족인 바라가이, 투타르 휘하의 1만 군사들이 훌레구의 서방원정군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1255년 초가을 사마르칸트에 도착한 훌레구와 그의 원정군은 교외에서 사냥을 즐긴 뒤 같은 해 11월에 케쉬에서 이란총독 아르군의 마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케쉬에서 훌레구는 처음으로 자신의 첫 번째 공격목표가 이스마일리파와 그 산성들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동시에 이란땅의 모든 왕후와 지도자들에게 조공하여 올 것과 병량 및 무기를 제공하도록 요청했습니다(요청을 빙자한 명령..). 훌레구의 명령에 아나톨리아고원의 룸 셀죽조 술탄인 카이 카부스 2세, 파르스의 살구르조 아타벡인 아부 바크르, 헤라트의 말릭인 샴스 웃 딘, 킬리치 아르슬란 4세를 비롯한 이라크,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 등 서쪽 지방의 수장들이 케쉬의 훌레구 진영으로 찾아들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자신이 공격할 적과 아군을 확실히 구별지은 훌레구는 짧으면 짧고 길면 길수도 있는 2년 동안 서방원정에 대한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하고 1256년 1월 1일 아무다리아 강을 건너 본격적으로 서방원정(정확하게는 이슬람 세계 정복)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참조문헌: 르네 그루쎄 著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著 ‘몽골 세계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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