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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장편,브금]담력 테스트 -5-
게시물ID : panic_140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8
조회수 : 17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4/15 09:55:16
어둠속에서 김박사가 다시 움직이는 소리에 기분좋은 상상은 다시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만약 자신이 시체연기를 하다가 정말 시체가 되면 어떻하지 그럼 1억원의 꿈은 물건너 간게 될것이다. 자신이 죽어 정말로 시체가 된다면 단돈 1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미경은 김박사에게서 귀에 익숙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도 시체를 밀고 가는지 고무바퀴가 바닥을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문밖으로 나가더니 바퀴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하지만 얼마안가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전달되었다. 그녀가 있는 장소가 워낙 조용한 곳이라 왠만히 작은 소리라도 잡아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미경의 신경은 귀에 온통 쏠려 있어 김박사가 그 시체를 이방에서 밖으로 가져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경은 그가 이대로 떠났다고 추측했다. 도대체 자신이 어디에 남겨져 있는건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박상무에게 설명을 들은대로 시체공시소에 다른 시체들속에 남겨져 홀로 있을거라 짐작했다. 그런 사실을 상상하니 겁이 덜컥 솟아났다. 그나마 김박사라는 사람이 구석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무서운 상상을 블러 일으켰지만 적어도 자신과 같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람도 떠나고 어둠속에 시체들속에 혼자 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나 두려웠다. 미경은 이런 생각들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또 다른 상상을 만들어 낼까봐 억지로 친한 사람들의 얼굴과 즐겁게 읽었던 책들을 생각하려 애썼다. 그때였다. 갑자기 저 안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작게 퍼져나왔다. 착각인가 싶어 귀에 온신경을 집중하였다. 쿵하는 소리는 더 울리지 않았고 대신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경은 자신의 무서운 상상들을 이 사건에 결부시키고 싶지 않았다. 대신 논리적인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쿵하는 소리와 문이 열리는 소리는 모두 김박사가 사라졌던 그방향에서 들려왔다. 김박사는 아직 떠나지 않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이성적인 결론이었다. 시체가 돌아다니고 움직이고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미경의 원치않는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미경의 추측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또각거리는 구두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김박사의 발자국소리와 일치했다. 김박사는 미경의 기대에 부합이라도 하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김박사는 또다시 구석에서 부스럭 소리를 냈다. 미경은 혹시 그가 다시 시체를 해부하지 않을까 기대반 걱정반 온 신경을 그쪽에다 쏟았다. 하지만 김박사는 바로 이곳을 떠났다. 아마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려고 들어 온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이번에 떠나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딸깍하며 구석의 스위치를 내렸다. 김박사는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대번에 이 건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발자국소리와 방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한동안 어둠속에서 메아리를 만들며 울려퍼졌다. 미경은 그가 밖에서 연신 왔다갔다하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한구석에 일어나는 이상한 상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원래 마음은 간사한 법이라 눈만 가려도 지금까지 보고 체험했던 일들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일상의 다반사였다. 어떤사물에 대해 눈으로 보고 경험해 온것은 이미 뇌에 선입견처럼 저장되어 그에대한 상상을 줄어들게 한다. 하지만 눈을 가리고 다른감각으로 그 사물을 체험한다면 이제까지 없었던 그 물체에 대한 상상이 전혀 새로운 느낌이 생긴다는 사실에 놀랄것이다. 쉽게 풀어 얘기하자면 눈이라는 감각을 가리면 인간은 주위의 자극에 대해 새로 수많은 상상을 하기 마련이었다. 우리가 시각에만 너무 의존해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김박사로 관심이 돌려지며 논리적으로 생각했다. 김박사는 이 층을 나가는 마지막 사람일것이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불이 쓸데없이 켜져 있는곳이 없는지 나름대로 마지막 점검을 할것이다. 이 같은 논리적인 분석에도 불구하고 미경은 자꾸 이상한 상상에 결부시켰다. 어쩌면 김박사는 정상인이 아닐지도 몰랐다. 산사람보다는 죽은사람들과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사람은 비정상일 가능성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김박사가 영화에 나오는 사이코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혼자남은 기회를 이용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체에 이상한 짓을 하거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상상이 진행되자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김박사가 자신에게 달려들것만 같았다. 그리고 당장 커버위에서 굵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조를것 같았다. 아니면 자신의 사지를 묶고는 산채로 해부할지도 몰랐다. 김박사는 죽은 사람대신에 산사람을 해부하기를 좋아하는 괴물로 변했을지도 몰랐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상상은 상상으로만 그쳤다. 멀리서 `틱’`틱’하며 스위치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더 이상 아무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미경의 상상과는 달리 김박사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아마 마지막으로 복도의 불을 모두 끄고 이곳을 떠났을것이다. 이제 미경을 상상하는 자극은 없을것이다. 방금전 이곳의 담당자가 추석연휴를 위해 퇴근을 하였다. 이 시체공시소에서 그녀를 제외하고는 모두 시체들만 가득할 것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얌전하게 시체역만 하고 있으면 누군가 자신을 데려올것이고 1억의 행운이 따라올것이었다. 미경은 편안히 누워 잠을 자든지 아니면 생각을 하던지 움직이지 않고 할 수 있은 일은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이런곳에서 홀로 보내기에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지만 이제 주위의 자극이 없으니 자기를 괴롭히는 상상은 마음속에 없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편안한 안식의 시간도 그리오래가지 않았다 미경은 마음이라는 존재의 불완전과 모순을 고요와 두려움속에서 체험해야만 했다. 지금 이 장소에 홀로 남겨진 미경에게는 시체들의 침묵만이 곁에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육체의 제한은 고요와 뒤섞여 그녀에게 지겨움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으로 지금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현실이 두려움을 주기 시작했다. 마치 잔잔한 호수위에 작은 돌을 던지면 파문이 한점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사방으로 퍼져가 물결이 되듯 지금 그녀의 심리상태가 파문의 한점처럼 되어 있었다. 돌을 던진 것은 그녀의 마음이었고 파동이 퍼져나가 물결이 되어 출렁이는 것도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녀는 간단한 사고라는 돌로 호수같이 평안스런 자신의 마음속에 파문을 만들었다. 맨 처음에 무슨 주제를 떠올렸는지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가만히 있다보니 온갖 잡생각들이 여기저기서 불에 데인 개구리마냥 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사고중에 영화가 있었고 그 영화는 공포라는 장르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공포영화에서는 시체공시소가 흔하게 등장했다. 공포영화에 가장 잘어울리는 배경이 공동묘지 아니면 시체보관소였을것이다. 미경의 상상은 자극이 없어도 이제 걷잡을 수 없이 공포라는 물결을 만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상황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 똑같은 것 같았다. 상상속에서 그녀는 희생자였다. 마음속에서 실내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자신의 주변에 시체들은 모두 좀비로 변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리 잘 분장한다해도 산사람을 냄새로 찾을 수가 있었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밖에서 시체들이 제각기 끔찍하고 징그러운 모습들을 자랑하듯 내세우며 이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이 누운 침대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느릿하게 비틀거리면서 부자연스럽게 걷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모두 육상선수들처럼 빨리 다가오는 것같았다. 어느새 강당같이 큰 실내는 수백구의 좀비들로 발디딜 큼도 없이 가득찼고 모두들 침대에 누워있는 미경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미경은 시체처럼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수있었다. 좀비들은 그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고 있었다. 머리위의 커버를 확 걷어내자 수많은 썩은 손들이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붙잡았다. 어둠속에서도 좀비들의 눈빛은 흉흉하게 빛난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경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딱딱한 분장만 아니면 실제로 이 어둠을 날카로운 비명으로 채울뻔 했다. 미경은 이모든 것이 자신의 상상이었다는 것을 한순간 잊어 버린듯 놀랐다.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 만들어낸 상상 그리고 두려움속에서 만들어낸 상상은 너무나 생생했다. 정말로 현실 같았다. 방금전에 좀비들의 손길이 닿은듯이 온몸에 뭔가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에 정말로 비명을 질렀다면 이곳의 시체들이 죽음에서 깨어날 정도로 놀랄켰을지도 몰랐다. 남자에게는 힘들지 몰라도 여자들은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비명을 자연스럽게 낼줄 알았다. 보호본능에 근거한 재주중 하나였다. 영화중에서도 여자가 죽는 듯이 비명을 내지르는 장면은 많지만 같은 상황에서 남자가 비명을 지르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실로 돌아온 미경은 놀란 가슴을 한동안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자신의 심장이 의지와 상관없이 경망스럽게 뛰는 것이 사뭇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이곳에서 제대로 뛰는 심장을 가진 사람은 자신혼자 뿐이리라.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에 정말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미경은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상상을 끊어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솟아나는 생각들을 지우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상상도 생각이라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의 일부였다. 살아있는 사람이 생각을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머물러 있는 다른 시체들과 다를바가 없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념무상의 경지를 연약한 처녀가 시체들 한가운데에서 행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미경은 `아무생각도 말자! 아무생각도 말자!’라는 말을 속으로 계속 반복했다. 다행스럽게 단조로운 어조를 되풀이하다보니 긴장이 다소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잠이 들었다. `땡..땡..땡…’ 갑자기 미경을 깨운 것은 시계소리였다. 눈을 뜨자 한동안 미경은 어리중절해 있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머리속이 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쇳덩이라도 들어있는 듯 무거워 한동안 어떤 생각도 꺼집어 낼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시간을 알리기위해 치는 종소리가 그때까지 계속 울리고 있었다. 마치 바로 곁에서 치는 듯 미경은 종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뇌속이 흔들거리는 것같았다. 시계소리가 멈추고 사위가 다시 죽은 듯 조용해 지자. 그녀는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처한 상황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자신은 병원의 시체보관소에서 지금 담력테스트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와중에 잠들어 버렸고 방금전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시계소리때문에 깨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으로는 시계 종소리는 꽤나 많이 울렸다. 적어도 10번은 넘었던 것 같았다. 시간상 자정쯤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았다. 그렇다면 7시,8시,9시 왜 매시간마다 울리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몇시간동안 자지는 않았을것이다. 미경은 아뭏튼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몸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듯이 움직였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무의식중에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통제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지만 분명히 아까 울렸던 시계는 자정을 알리는 소리같았다. 미경은 벌써 몇시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다. 예상대로라면 어제가 좀전에 지났고 지금은 어제의 내일인 오늘이 된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 미경은 자신의 용기를 북돋았다. 긍정적인 생각때문인지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러고보니 시체들 사이에서 이렇게 잠들어 버렸다니. 그런 자신이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경외스럽기도 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이런일이 가능할까? 물론 1억이라는 거금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해도 시체들 사이에서 잠자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저 감탄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미경은 사고은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아 왕성한 상상을 만들지 못했다. 대신 잠들기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다시 한번 죽은 시체들 속에서 잠들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사실 눈을 가린채 이곳까지 왔다. 말로만 시체공시소라고 들었지 과연 정말로 이곳이 시체공시소일까? 그리고 과연 시체들 사이에 자신이 누워있을까? 직접 시체를 본적이 없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자신의 곁에 무엇이 있는지 있으면 무엇일지도 전혀 몰랐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신은 어디에 있을까? 도대체 박상무라는 사람은 무슨 의도로 이런 실험을 할까? 혹시 자신이 모종의 음모에 걸려 인체실험이라도 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의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다시 끝없는 질문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상한 이벤트라해도 시체속에서 밤을 새는 이런 기괴한 이벤트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공포스럽고 어렵운 일이라 해도 자신이 지금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후하게 쳐준다고 해도 1억원은 너무한 과한 보상이었다. 미경은 계속 냉정하게 자신의 추리를 해나갔다. 어느덧 무거웠던 머리도 완전히 깨어 활발한 지적활동을 하기 시작했다.그렇다면 이 이벤트의 본질과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동안 당첨이 되었다고 들떠있었고 실제로 2천만원이 입금되어 냉정함을 잃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미경은 이렇게 조용한 환경에서 이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분석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자신이 정말 시체공시소에 있을까? 미경은 하마터면 눈을 뜨고 커버를 열고는 주변을 살피고 싶은 강렬한 유혹에 넘어 갈뻔 했다. 괜히 지금까지 공들였던 시간들을 그렇게 허무하게 날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애써 그 감정을 억누르고는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자신이 모종의 음모에 걸려 인체실험이라도 당하는 것이 아닐까? 외화에 보면 정부비밀기관의 특수공작에 의해 평범한 시민들이 깜쪽같이 희생당하는 스토리가 많았다. 결국 희생당하는 사람들만 억울한 무시무시한 내용들이었다. 혹시 자신도 그런 재수없는 함정에 걸려드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자신이 외래진료를 다니던 친근한 구영대학병원은 겉으로 보여진 이름일뿐 사실은 비밀기관의 또다른 실험실이 숨은 정체일지도 몰랐다. 만약에 정말 그렇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게 너무나 겁이났다. 미경의 머리속에는 하나의 상상에서 출발한 얘기들이 주체할 수 없을정도로 수많은 그럴듯한 얘기들을 만들어 갔다. 갑자기 김박사라는 얼굴없는 사내가 다시 머리속에 떠올랐다. 만약에 이것이 음모라면 그 김박사라는 사람의 연기는 정말 완벽했다. 혼자서 두시간이 넘게 해부하는 연기를 미경의 앞에서 보였으니 감탄할 뿐이었다. 그녀가 시체들 사이에 누워있다고 믿게 만든 것은 속임수중에서도 예술의 경지였다. 미경은 문득 거기까지 상상이 미치자.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만!’하고 외쳤다. 이미 자신의 얘기는 점점 커켜 조그마한 눈덩이가 이제 산만큼 부풀어진 것 같았다.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스스로를 몰고 갈 수는 없었다. 괜히 상상을 더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더욱 공포스럽고 위태롭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미경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더 이상 공포소설 같은 것을 머리속에서 쓰고 싶지는 않았다. 두렵고 무서운 상상만을 머리속에 계속 써나가는 것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미경은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빠르게 결론지었다. `구영대학병원에 시체들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임무였고 자신은 그 임무그대로 시체공시소에 시체들과 함께 담력테스트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견스러울 정도로 잘 버티고 있다. 상상속의 괴물이라던지, 비밀정부의 음모라던지 그런 것은 절대로 있을 수도 없고 바보같이 허황된 생각이니 이제 그만 두어라.’ 미경은 자신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자. 머리속의 모든 것이 명확해진 것 같았다. 어젯밤에 워낙 잠을 설쳤고 평소와 달리 일찍일어나는 바람에 수면부족으로 아까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지금 이시간이 그녀가 추측했던데로 자정을 넘겼다면 다시 잠드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한잠 자고나면 아침이 될것이고 누군가가 축하한다고 말을 건네 올것이다. 그때가 되면 말그대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미경은 마음을 편안히 먹고 머리속에 자꾸 꿈틀대는 온갖 생각들을 지우려 애썼다. 괜히 스피커 종소리에 잠이 깨는 바람에 당장 다시 잠이 오지는 않았다. 미경은 이번에는 양을 새어 보기로 했다. 한마리 두마리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생각을 머리속에 한다면 자신의 머리도 지겨워져 잠에 빠져 들 것 같았다. 미경은 머리속에 드넓은 초원을 생각하며 `양한마리, 양두마리..’하고 양들을 떠올리며 숫자를 세었다. 하지만 더없이 적막하고 싸늘한 공기와 시체들 속에 있다는 두려움은 미경의 사고를 그녀가 원하는 데로 순순히 놓아두지는 않았다. 아무리 용기있는 사람이라도 공동묘지에 혼자 잔다면 무서운 법인데 그녀같이 젊은 여자가 시체들 틈에서 두려움없이 잠을 잔다는 것은 어불성실이었다. 상상이라는 악마의 유혹은 쉽게 떼낼수 없는 법이었다. 미경은 자신도 모르게 양한마리 양두마리를 시체한구 시체두구로 바뀌어 세어가고 있었다. 푸른 풀밭대신에 캄캄한 공동묘지에 시체들이 한구씩 늘어나 쌓여가고 있었다. 미경은 어느순간 시체를 세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최면에서 깨어난 듯 또다시 이상한 상상을 중단해버렸다. 이러다간 자신이 미치지 않을까 싶어 염려가 되었다. 당분간 쉽게 잠들 것 같지가 않아 그때부터 무엇을 할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흘러가는 현실의 시간은 매우 더디게 느껴졌다. 생각을 지우기는 힘들었고 생각에 몰두 하기는 너무나 두려웠다.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이 도대체 자신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 몰랐다. 결국 지금 이순간 죽은 자들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셈이었다. 미경은 진퇴양난에 빠진 느낌이었다. 이런 기묘한 상황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저 온몸에 흐르는 긴장감과 절대고요속에 흐르는 두려움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주위환경이 주는 두려움은 한계가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공포는 그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미경은 그냥 두려움이 뒤섞여 있는 현실을 받아 들였다. 그러자 온몸의 신경은 다시 청각으로 쏠렸다. 혹시나 무엇인가 들릴까 하는 기대 아닌 기대가 일어나기도 했다. 담력테스트가 끝나는 시간까지는 그런일이 벌어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만약에 그런일이 생긴다면 미경이 억지로 가두었던 상상들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와 그녀를 파멸로 이끌것만 같아 두려웠다. 미경은 온몸의 힘을 뺀채 그냥 누워있었다. 말그대로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정작 미경의 느낌과는 달리 스피커가 울린 것은 바로 좀전이였다. 미경은 아무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잠시나마 그냥 멍하니 누워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미경의 옆에서 부스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미경은 자신의 머리카락에서부터 다리의 솜털까지 털이란 털은 모두 쭈뼛 서버린 것 같았다. 육체는 그렇게 본능적으로 재빨리 반응했지만 미경의 생각은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게 자신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상상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리고 온신경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녀가 들었던 소리가 역시 착각이었다는 듯 잠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미경이 바짝 졸았던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또다시 부스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경은 온몸에 소름이 끼쳐 자신의 머리속이 얼어 붙는 것만 같았다. 옆에서는 누군가 아니 무엇인가가 일어나 바닥위로 털썩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경은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달래려고 안간힘을 썼다. `조용히 숨도 쉬지마 안그러면 죽은시체가 널 찾아낼꺼야!’ 그 순간 미경은 마음속에 또하나의 자신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미경은 상상의 목소리가 지시한대로 숨도 멈추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순간에도 그녀의 관심은 옆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사건에 전부 쏠려있었다. 그곳에서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요란하지 않았고 너무나 작은 소리였다. 이렇게 조용한 환경이 아니라면 좀처럼 알아차리기 힘들정도로 너무나 조용한 소리였다. 맹수가 사냥을 할때 발자국소리를 죽이는것처럼 매우 작았다. 미경은 그것이 맨발로 걷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 병원의 바닥은 코팅된 콘크리트였다. 그래서 왠만한 신발은 제법 큰소리를 낼수밖에 없었다. 이런 단단한 곳위에 그렇게 알아채기 힘들정도로 작은 발자국소리를 만들기 위해선 맨발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미경은 도대체 그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두려움가운데에서도 호기심을 일으켰다. 미경은 다시 논리적인 추론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직원이나 사람이라면 분명 신발을 신고 돌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분명히 들려오는 발걸음은 맨발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맨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이곳에서 맨발인 것들은 시체들 뿐이었다. 시체들은 나이키나 리복 그리고 필라 같은 브랜드 신발이 필요없었다. 그럼 자신외에는 시체밖에 없으니 시체들이 움직인다는 말인가? 미경은 그 무엇이 갑자기 자신의 옆에서 움직였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분명히 자신은 시체들 틈속에서 담력테스트를 하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시체들 사이에 놓여있는 자신의 모습을 좋든 싫든 꽤나 많이 상상했다. 그럼 옆에서 벌떡일어나 바닥위로 내려선 대상은 시체일것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물론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누구나 직접 경험한다면 거기에 대한 믿음을 백퍼센트로 확신할 수는 없으리라. 어쩌면 옆의 괴물체는 의학계의 기적중 하나일지 도 몰랐다. 의사들이 죽었다고 판명했고 실제로도 죽었지만 하늘에 의해 사자의 땅에 들기를 거부당하여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게된 그런 기적중 하나가 옆에서 벌어졌는지도 몰랐다.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어디선가 주워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 옆에서 일어난 현상이 그런것일지도 몰랐다. 뉴스에서도 떠들고 의학계에서도 한동안 얼떨떨해 있을 그런 해외토픽 같은 얘기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미경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때 옆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그 물체는 미경의 옆에까지 다가왔다. 미경은 자신의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옆에선 미지의 사물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미경은 아까 멈춘 호흡에 숨이 달아올랐지만 아직까지 내쉴수가 업없다. 만약 다시 살아난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죽은시체가 움직이는 황당하고도 끔찍한 경우라면 자신이 살아있다는 어떤 기색도 보여서는 안되었다. 죽은자들은 살아있는 자들을 쉽게 식별할 수 있기때문이었다. 만약에 들킨다면 그 괴물체에 의해 미경자신은 정말로 진짜시체가 될지도몰랐다. 정말로 좀비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마는 희생자 일호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미경은 숨을 참을수 있는데까지 견뎌보리라 굳게 다짐했다. 곧바로 그 무엇은 미경의 커버를 잡고 재쳤다. 천은 미경의 목까지 내려왔다. 미경은 얼굴에 한 두꺼운 분장에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과 상관없이 얼굴이 부들부들 떨리고 근육에 경련마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두꺼운 분장탓에 얼굴의 떨림은 가려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얼굴을 분명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얼굴에 따끔거리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보지않았는데도 그느낌이 전해졌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사물을 볼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괴물체는 그녀의 덮개를 목까지 걷어내고는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맨발로 걷는 발자국 소리가 옆에서 밑을 지나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다시 천이 벗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경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이제 자신을 갑갑하게 만든 얼굴위의 천은 벗겨졌지만 차마 눈을 뜰 수는 없었다. 첫번째는 시체의 역할을 철저하게 하기 위해 두눈을 뜰 수가 없었고 두번째는 눈을 뜨면 그녀가 의지하고 있는 믿음이 깨어지고 한순간에 정상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먼 공포스런 세상으로 확 변할것만 같았다. 그 두려움이 그녀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미경은 그래서 턱까지 차있는 호흡을 아직도 맘놓고 내쉬지 않고 있었다. 숨이 차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지만 자신을 지나간 그 괴물체는 아직도 충분히 멀어지지 않았다. 한쪽으로 계속 이동하며 그쪽에서도 천을 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괴물체는 곧바로 그 옆으로 다시 이동했다. 다시 이동하는 발자국소리가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미경은 그제서야 조금씩 표시나지 않게 숨을 쪼개어 내쉬었다. 그와중에도 혹시나 저 괴물체가 자신의 호흡소리를 알아듣고는 쏜살같이 달려들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졌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경은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물론 가슴을 진정시킬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감정은 그녀에게 꼭 붙어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이상한 현상에 넋이 빠져있기도 했다. 괴물체는 계속 옆으로 멀어지며 똑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분명히 시체들의 덮개를 자신에게 한것과 마찬가지로 벗기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러는 지 너무나 궁금했다. 시체가 자신의 동반자를 찾는 것도 아니고 이미 죽었는데 무슨 미련이있어 다른 시체를 뒤지는 지 도대체 지금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유추해 낼수가 없었다. 미경은 머리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생생하게 그려보기 시작했다. 괴물체는 자신의 옆에서 일어나 자신의 얼굴을 덮은 천을 목까지 내리고는 자신의 죽은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다음시체에게 다가가 또다시 천을 벗기고 그 시체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체 다음..다음. 모든 시체를 확인할 작정인지 이유도 없이 목적도 없이 어둠속에서 홀로 그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경은 자신의 놀라운 상상력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자신이 그린 모습은 너무나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갑자기 자신이 일어나 그일을 하고 있다는 상상이 들었다. 수십구의 시체가 덮혀 있는 곳에서 하나하나 천을 밑으로 내리고 시체의 얼굴을 보는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상상이었다. 미경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벌떡 일어나 이곳에서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갈데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이 일어나 도망간다면 저 정체불명의 물체는 자신을 집요하게 따라올 것만 같았다. 공포영화에서 처럼 집요하게 자신을 추적해 죽을때까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저 미지의 물체가 찾고 있는 것이 자신일지도 몰랐다. 결국에 저 시체는 자신이 상상했던데로 산사람을 찾는지도 몰랐다. 미경은 두려움에 자신의 몸이 움츠러 드는 것 같았다. 어느새 괴물체의 발걸음 소리는 옆의 끝쪽이 지나 그 밑으로 이어졌다. 미경은 계속 답답하다고 여겼던 덮개가 그리워졌다. 그것은 지금 목에 겹쳐져 내려와 있었다. 맨얼굴이 어두운 허공속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나약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덮개라도 덮으면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가셔질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찮게 보이는 천조각이 자신을 외부의 공포로부터 보호해 줄 든든한 장막같이 여겨졌다. 오른손만 조금 올리면 천의 끄트머리가 잡히고 위로 쭉 올리기만 하면 다시 얼굴이 완전히 덮혀지리라. 그녀의 마음속에는 또다른 유혹이 강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험에 대한 두려움도 따라왔다. 아무리 깜깜한 암흑속에서도 저 괴물체는 잘 볼수 있었고 아무리 먼 거리에서도 그것은 잘 감지해낼 수 있을것이다. 미경이 조금만이라도 까딱 움직인다면 귀신같이 알아내고 잡아낼 것 같았다. 미경은 다시 호흡을 쪼개어 가늘고 짧게 내쉬었다. 미경은 이 순간만은 다른 시체들을 생각하며 자신도 그들과 같은 시체였으면하고 바랬다. 지금과 같은 공포속에서는 그런 바람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이미 죽었으니 자신들에게 어떤 무서운일이 일어나도 신경쓸 필요도 없었고 신경쓸수도 없을것이다. 공포에서도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스러울 것이다. 미경은 이 느닷없는 상황에 자신이 어떻게 할 지를 몰랐다. 심장의 맥박은 놀란듯이 뛰었고 조정이 되지 않았다. 이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고 머리마저 띵하고 어지러웠다. 미경은 이 순간이 바로 담력테스트의 최대위기라고 생각되었다. 출처 : 리얼판타(www.realfanta.com) 작가 : 자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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