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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완과 조범현의 인연
게시물ID : sports_157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년대표
추천 : 5
조회수 : 178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9/08/03 15:35:58
2003년 SK매니지먼트

Q. 조범현 감독과의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A. 조감독은 '처음'이라는 인연으로 2번 만났다. 93년 10월 조감독이 현역 유니폼을 벗고 쌍방울 코치가 됐을 때 처음 받은 제자가 나였다. 물러날 곳이 없던 나는 "야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만큼 지옥훈련을 견뎠다. 조감독은 말보다 시범을 보였고,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야구 보는 눈을 뜨게 해줬다. 


박경완 인터뷰중


쌍방울에서 만난 조범현 코치와 인연이 깊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프로야구는 배터리 코치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1992년 겨울 조범현 코치가 팀에 오면서 배터리 코치가 처음 생겼다. 조코치는 그때 내가 포수로서 갖춰야 할 기술적인 면들을 알려줬다. 나도 배우려고 했고 조코치도 세밀하게 가르쳤다. 포수 기술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분이 오니 처음에는 좋았다. 그러나 훈련은 정말 혹독했다. 블로킹 훈련만 하루에 적게는 700개, 많으면 1천 개를 했다. 힘들어서 울면서 블로킹을 했을 정도였다. ‘오로지 운동, 운동’하다가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다.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21~26살 때 푹 쉬어본 적이 없다. 요즘 후배들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어떻게 강훈련을 이겨냈나. 


일단 조코치의 의욕을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슬기롭게 넘어가자고 다짐했다. 훈련에 익숙해지다 보니 원바운드 공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게 내가 이 나이에도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밑천이다. 조코치는 강하게 다그치기도 했지만 부드러운 면도 있었다. 훈련이 끝나면 집에 데려가 밥도 해주고 마사지를 해주며 달랬다. 그러니 훈련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지만 그 시절은 참 좋았다.

어린 나이에 주전 포수가 됐다. 선배 투수들과 마찰이 있었을 텐데. 

왜 없었겠나. 그러나 마찰이라기보다는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 지금은 덜하지만 당시만 해도 고졸 포수와 대졸 투수 사이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지금 삼성 코치로 있는 (김)현욱이 형은 거의 내 리드에 따랐다. 하지만 몇몇 투수들은 풋내기 포수가 내는 사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투수들에게 “제발 나를 믿고 따라 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주전 포수로서 입지를 굳혔다고 느낀 건 언제였나.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1995년 대구에서 삼성과 경기를 하다 8회말 역전타를 맞고 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투수 (박)진석이 형한테 변화구를 던지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진석이 형은 직구를 끝까지 고집했다. 경기가 끝난 뒤 더그아웃 뒤쪽에서 난리가 났다. 볼배합 문제로 화가 난 조범현 코치가 나를 심하게 꾸짖었다. 이단옆차기까지 날아왔다. 그날 난 포수 장비를 한 채로 엄청 맞았다. 코치들이 나서서 가까스로 말렸을 정도였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코치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코치는 투수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나를 때린 것이었다. 투수가 포수가 낸 사인에 고개를 흔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왜 패전 책임을 어린 포수에게 넘기느냐. 조코치는 우회적으로 이런 뜻을 전달한 것이다. 그 사건 뒤 소신 있게 사인을 냈고 투수 선배들도 따라오기 시작했다. ‘박경완이 던지라는 곳으로 던지니 이긴다’는 믿음도 생겼다. 


2003년에 SK로 이적했다. 

내가 쌍방울에서 현대로 트레이드되자 조범현 코치가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고 들었다. 나중에 조코치가 “다시 같이 야구를 해 보자. 언젠가 그럴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도 “코치님이 오든 제가 가든 그렇게 합시다”고 했다. 2002년 시즌을 끝으로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었다. 마침 조코치가 SK 감독이 됐다. 솔직히 조코치가 SK로 오지 않았다면 난 현대에 남았을 것이다. 많은 배려를 해준 현대를 떠날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고민하다 결국 나를 키워준 조감독을 선택했다.



조범현 인터뷰중

과거 쌍방울에서 배터리 코치를 하실 때나 SK 감독을 맡으셨을 때 포수 하나만은 잘 육성했다는 게 야구계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이건 여담인데 박경완, 진갑용 생각이 많이 나요. (박)경완이 처음 만났을 때. 보자, 그래요. 쌍방울 때 만났죠. 그땐 저도 초보 코치였습니다. 당시 경완이는 포수란 자리가 뭔지도 잘 몰랐어요. 오토바이 몰고 다니는 순진한 친구였으니까(웃음). 하지만 신체적인 조건과 강한 근력 등 매력이 충분했어요.


그래 경완이 같은 경우는 기본기 훈련을 정말 많이 시켰어요. 타고난 몸이 있으니까 기본기만 잘 닦으면 대형포수가 되리란 믿음이 있었어요. 경완인 참…(옛날 생각이 난듯 눈을 가늘게 뜨며)정말 힘든 훈련을 잘 견뎌냈어요.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까닭인지 1년씩 시간이 지날 때마다 육안으로 실력이 향상되는 게 보였습니다.


(진)갑용이는 삼성에서 만났어요. 갑용이는 대학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유능한 친구였어요. 생각도 긍정적이고 화이팅이 넘치는 친구였지요. 그런데 그때는 '생각'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 같았어요. 심리적인 컨트롤이 필요하다 싶었지요.
처음 봤을 때 갑용이 연봉이 4천만 원인가 그랬을 거예요. 그래 제가 그랬어요. "우리 서로 합심해서 네 연봉을 1억 원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하자." 그때부터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어요. 아마도 그때 흘린 땀이 지금 좋은 선수가 되는 양분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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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출처는 잘 모르겠고 mlbpark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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