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전문 DJ 저격수이자 수구꼴통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의 "화려한 변신"에 국민들과 네티즌들이 어리둥절한 가운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개혁과 변화를 위한 아젠다를 선점하면 이에 마지못해 끌려가면서 변명하고 딴지걸기에만 급급했던 그 한나라당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이들은 알지 못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보면 완전히 180도 역전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홍준표 국적법"이라 불리는 "재외동포법" 개정안 부결 사태에 있어서 연일 아젠다를 선점하며 치고 나가는 것은 홍준표 의원이고, 열린우리당은 최재천, 임종석, 오영식 등 386 간판 정치인들을 대거 내세워 변명하기에만 급급하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인터넷을 주름잡아온 열린우리당이지만 이번 사안에 있어서 만큼은 부정적 기류 일색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홍준표 효과"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1987년 6월 민주화인사 탄압 중지와 대통령직선제 개헌 쟁취를 위해 학생들과 일반 국민들이 그야말로 구름처럼 들고 일어났을 때 국민들을 어리둥절케 만든 사건이 터져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당시 민정당 총재이자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의 6.29선언이었다.
물론, 재야와 운동권은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 수용, 김대중 사면복권, 민주화 인사 석방, 정당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6.29선언 발표에 환호했지만 사실은 뒤통수를 맞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다. 좀 더 다그쳐서 "제2의 4.19"라고 할 정도의 완전하고도 조건없는 항복을 신군부로부터 받아냈어야 하는데 오히려 역으로 이들에게 아젠다를 선점 당하는 상황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시 6.29 선언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좀 더 시일이 지나갔더라면 과연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으면 아마도 민정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고, 당연히 현재의 한나라당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김영삼-김종필-노태우의 3당 합당도 없었을 것이며, 어쩌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양대 정당으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김종필의 공화당과 노무현의 꼬마민주당이 군소정당으로 정국의 균형추 역할을 하며 지금까지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레드 컴플렉스"는 바로 "진보"가 "혁명"이자 "파괴"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이들의 정치적 이상과 도덕성 중심의 가치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과연 그들이 "파괴"하는 것 이외에 그 어떤 긍정적인 유형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냐에 대해서 끊임없는 의구심을 품어왔다. 그리고 김대중 집권을 통해 비로소 "레드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노무현 집권 후에는 도리어 이같은 의구심을 확신 차원으로 더욱 공고히 하고 말았다.
이같은 여론의 흐름이 존재하다 보니 "차떼기", "친일-친미 사대주의", "강남중심 특권층 옹호"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한나라당이 여전히 건재할 뿐 아니라 130석의 거대 야당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즉, 이같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진정한 변화는 보수층으로부터 온다"는 변함없는 믿음 때문이다.
"홍준표 효과"는 바로 이와같은 40대 이상 기성층의 변함없는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있으며, 30대 이하 인터넷/영상 세대에게는 "보수"가 "수구"가 아닌 "개혁"과 "변화"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보수=기득권층 옹호라는 등식이 "홍준표 효과"로 인해 보수=서민층이라는 등식으로 바뀌고 있는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이 잃어버린 것은 지지율이 아닌 서민들의 "마음"
서민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대표적인 이슈 세가지를 꼽으라면 필자는 지체 없이 부동산, 병역 그리고 기회균등을 꼽는다. "내집마련" 만큼 서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슈가 과연 있을까?
온 가족이 방 한칸에서 지내다보니 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도 확보되지 않는다. "독하다"는 말을 주변으로부터 들을 정도로 악착같이 저축해서 겨우 방 2칸 짜리로 옮기게 되면 어느새 아들과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남녀 7세 부동석" 때문에 가슴을 졸이게 된다. 또다시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방 3개와 화장실 2개 있는 아파트로 가려다보니 평생 모아도 턱도 없는 5억~10억이라는 현실 때문에 눈물 흘리게 된다.
비록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에도 아파트 값은 계속 올랐지만 그래도 10~20년 열심히 저축하면 주택청약예금 1순위가 되어 분양 신청을 할 수 있었으며, 운좋게 당첨되면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부모가 집을 2채 이상 소유하지 않고는 절대로 자식들이 집을 마련할 방법이 없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내가 평생을 열심히 일하고 벌었음에도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내 자식 대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방 한칸도 마련하지 못하는 현실에 더 크게 절망하게 된다.
병역 문제는 또 어떠한가? 이번 전방 총기난사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희생된 상병들은 물론, 가해자인 김일병까지 소위 "배경이 있는 집" 아들들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서민층 출신이며, 자기 스스로를 걱정하기에도 벅찬 나이임에도 부모님 건강과 생업을 걱적하는 평범한 효자들이었다. 거기서 오는 심각한 박탈감을 겨우 이겨내고 평온을 찾으려고 하는데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군사행정의 총사령탑인 국방부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기막힌 일이겠는가?
"홍준표 국적법" 역시 기회균등의 사회로 가기 위한 서민들의 바램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떠한 반칙도 편법도 국가와 법률이 단호히 차단하는 그야말로 "서민들이 살만한 세상"을 꿈꾸었는데 그 첫 단추부터가 집권여당의 딴지걸기로 좌초되었으니 앞으로 제2, 제3의 기회균등 법안을 과연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남북정상회담, 언론법, 연정+개헌이라는 신선놀음에만 몰두하고 있는 집권여당에 대해 과연 그 어떤 서민층이 지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인가? "홍준표 국적법"은 비록 부결되기는 했지만 누가 진정한 서민의 대변자인지를 똑똑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홍준표 의원은 제2탄으로 "1인 1채 주택소유 제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또다시 집권여당의 딴지걸기에 직면하겠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서민층들은 또한번 자신들의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발길을 향했던 서민층들이 다시한번 보수층으로 발길을 돌리는 거대한 민심의 흐름으로 서서히 변해가게 될 것이다.
서민층의 열렬한 지지 속에 끊임없이 아젠다를 선점해나가는 홍준표 의원으로 인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계속해서 변명과 딴지걸기로만 일관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그들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서민들을 계속해서 밖으로 내모는 효과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집권층과 진보세력의 몰락은 "연정"이나 "개헌"과 같은 정치적 퍼포먼스 만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홍준표 효과" 속에 담겨진 이와같은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한 이들의 몰락은 결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