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一夫多妻)문화권에 사는 남성은 일부일처(一夫一妻)문화권 남성에 비해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부다처제에는 아내가 사망한 후 재혼하는 경우까지 포함된다. 홀로되신 아버지가 있다면 빨리 새 어머니를 구해드려야 한다는 말이다.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는?
과학대중지 뉴사이언티스트(Newscientist)지 최신호에 따르면 영국 셰필드대의 비르피 루마(Lummaa) 교수 연구진은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 행동생태학회에서 "60대 이상 남성의 수명을 조사한 결과, 일부다처제를 실시하는 나라의 남성이 일부일처제를 가진 국가 남성보다 평균 12% 가량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의 원래 목적은 일부다처제의 장점을 찾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나 원숭이에 비해 훨씬 오래 사는 이유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루마 교수는 일단 여성부터 분석했다. 모든 생물은 자신과 유전자가 같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산다. 다른 말로 하면 더 이상 번식을 할 수 없으면 죽게 된다. 강물을 거슬러온 연어가 알을 수정시키고 바로 죽는 것에서 잘 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 여성은 다른 동물과 달리 45세 전후에 월경이 멈추는 폐경을 맞이해 더 이상 생식을 할 수 없음에도 30년을 더 산다. 현대 의학의 혜택을 받지 못해 평균 수명이 40세 이하인 원시부족에서도 전체 여성의 3분의 1 이상이 폐경기를 지나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폐경기를 지나고도 살아있는 비율이 3% 이하에 불과하다.
연구진은 2004년 '네이처(Nature)'지 발표 논문에서 그 이유를 이른바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로 설명했다.
침팬지는 젖을 떼자마자 제 힘으로 먹이를 구하지만, 인간은 10대를 넘어서도 제 힘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 또 노산일 경우 산모가 생명을 잃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손자를 잘 보살펴 집단을 계속 융성하게 하는 할머니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루마 교수에 따르면 여성은 폐경 이후 10년마다 평균 2명의 손자를 더 얻는다.
◆남성은 일부다처제일수록 오래 살아
그렇다면 자손을 보살피기 위해 할아버지 역시 오래 살아야 한다는 '할아버지 가설'도 가능하지 않을까. 연구진은 교회에 보관된 18~19세기 핀란드인 2만5000명의 기록을 분석했다. 당시 핀란드인들은 거의 한 곳에 모여 살았고, 피임도 하지 않아 최적의 연구대상이었다.
남성은 여성과 달리 60대 이후에도 계속 자식을 만들 수 있다. 당시 핀란드 사회는 일부일처제이지만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재혼이 가능했다. 예상대로 재혼한 남성은 한번만 결혼한 남성보다 아이가 많았다.
그런데 손자는 한번만 결혼한 남성에 비해 결코 많지 않았다. 연구진은 남성의 경우 오히려 '신데렐라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남성이 재혼하면 전처(前妻) 소생에 대한 보살핌이 형편없어진다. 결국 이 아이들이 자라 다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낮아진다. 자식은 늘어도 손자는 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 가설이 배제되자 남은 것은 여성이 오래 살기 때문에 그에 맞춰 남성도 오래 살도록 진화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설명대로라면 일부일처제이든 일부다처제이든 남성의 수명이 비슷해야 한다. 하지만 연구진이 세계보건기구(WHO)의 189개국 데이터를 토대로 사회경제적 요인을 감안해 분석한 결과, 일부다처제에 가까워질수록 수명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루마 교수는 "결국 남성은 아내와 자식이 많아질수록 수명이 늘었다"며 "노년에도 생식능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는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성을 보살펴줄 사람이 없어져 수명이 줄어든다는 설명도 내놓고 있다. 일부일처 사회에서 결혼한 남성이 독신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홀로 되신 아버지에게는 새 어머니가 필요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