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촌 "죄 짓고 사는 삶 이젠 끝내야죠"
9일 오후4시 서울대병원 12층 특실 112호실. 입구에 이름은 없었다.
병실에는 15년간 교도소에서 지내다 지난달 30일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일시 석방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57)씨가 침대에 누워 있다.
곁에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 2명이 심부름 및 경호를 맡고 있었지만 ‘조폭’ 이라는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 이영숙(56)씨가 김씨 옆에 앉아 있었고, 김씨의 누나 등 가족들이 자주 병실을 찾았다.
8일 잠시 병실을 찾았을 때만 해도 김씨는 성대가 아파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이날은 상태가 조금 호전돼 대화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자주 기침을 했고, 가래를 수시로 뱉어 냈다.
김씨는 과거 폐암으로 한 쪽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데다 수감 중 건강이 악화했다. 몸은 매우 수척해 보였고 걷는 모습도 힘이 없어 보였다. 전국을 평정했던 조폭 보스의 모습 치고는 초라했다.
김씨는 대뜸 아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목이 아파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데 아내가 미음, 죽을 만들어 와 그나마 잘 먹고 있어요. 가끔 내가 좋아하는 한식도 사오고 몸에 해롭다고 찬물은 못 마시게 해요.” 이씨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그랬다. 이씨는 자택인 경기 의왕시에서 오전 9시께 먹거리와 옷가지를 들고 병실로 와서 다음날 새벽 3시께 돌아간다. 남편의 말동무가 돼 주는 것이 이씨의 일과다.
김씨는 과거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의 면회는 일절 받지 않는다고 했다. 소식을 듣고 아내를 소개해준 최성규 목사와 야구해설가 하일성씨 등 지인들이 간혹 찾아온다고 했다. 과거 이야기를 묻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치면서 입을 열지 않았다.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아내와 함께 새 출발을 하기로 오래 전부터 결심했거든요.”김씨는 아내와 함께 선교활동 및 청소년 선도 활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에 대한 징표로 아내가 지난달 15일 출시한 복음성가 음반인 ‘이영숙 내 영의 찬양’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70년대 가수로서 유명세를 탔던 이씨는 ‘그림자’ ‘꽃목걸이’ ‘가을이 오기 전에’ ‘아카시아 이별’ 등 귀에 익을 노래를 불렀다. 총 11곡이 담겨 있는 이 음반에는 김씨가 옥중에서 회개하는 마음과 두 사람이 96년 첫 만남 후 8년간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10분씩 만났던 애절한 사연이 담겨있다고 했다. 노래는 아내가 불렀지만 가사는 김씨가 지었다. 김씨는 “음반 수익금은 양로원 고아원 등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국회에서 보호감호의 근거법인 사회보호법을 폐지하기로 함에 따라 김씨는 빠르면 이달 안에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될 전망이다.
김씨는 86년 발생한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 사건’에 대해서도 잠시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작년에 보호감호 재심청구 당시 법정에서 박모 검사가 자신에게 살인을 지시했고 그에 대한 증거로 녹취록과 혈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김씨는 이 날도 “박 검사가 자신의 가족을 돌봐주는 등 7가지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로 ‘信義(신의)’라는 혈서를 같이 썼는데 ‘信’자는 박 검사가, ‘義’자는 내가 썼다”고 구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말했다.
김씨는 또 자신이 구속된 후 박 검사가 검찰의 권력을 이용해 혈서와 자신과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 테이프를 없앨 것을 우려, 일단 미국으로 보냈으며 국내로 다시 들여온 뒤에도 수 차례에 걸쳐 장소를 옮겨가며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가 하는 말은 절대 거짓이 아니며 자유의 몸이 되면 적절한 시기에 자료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병원 특실에 입원 중인 김태촌씨가 9일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옥중 결혼식을 올렸던 부인 이영숙씨가 김씨를 간호하고 있다.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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