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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에 대한 사견
게시물ID : history_7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악바르대제
추천 : 0
조회수 : 42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4/18 13:38:55
여기서 환빠라는 표현을 굳이 쓰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 해외나와서 살다보니 한국인인데 , 계속 치노라고 중국인 취급받는게 굉장히 기분나쁜걸 느껴서 특정집단에게 놀림을 주는 표현은 뭔가 기분이 나쁠것 같아서,
그렇다고 환까라는 표현도 썩 좋은 표현은 아닙니다. 
별로 이러한 지루한 논쟁이 끼고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만... 눈팅족이었는데..... 

그런데 궁금한게 있는데 , 원래 사료를 읽을때는 사료의 맥락을 읽는법이 필요합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 당 사료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 사료가 언제 어느시기에, 누구에 의해서 , 그 원자료는 무엇이며 ,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 무엇을 목적으로 지어졌는가 ? 이른바 사료의 맥락읽기 

사료를 쓴 주체는 주체가 들어간 인간 
인간은 종교,재산,가치관,국가관,등에 따라서 오염된 가치관을 가지고 역사를 변개시키곤 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오염된 의식으로 사료를 짓는 행위 역시 그 사료를 신뢰할 수없다는 뜻입니다.
『삼국사기』를 사대주의에 오염된 쓰레기 책으로 매도하기도 합니다만, 정작 사학자들 역시 『삼국사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정사에 속하는 『삼국사기』조차 초기기록을 불신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지증왕 이전의 기록을 무시하고 지증왕이후의 기록을 인정합니다.
이유는 무엇인가  ? 『삼국사기』초기기록은 사료의 맥락을 읽는 측면에서 보았을때 조작된것이 다분하기에 인정하지 않는겁니다. 중국25정사 또한 , 사료의 맥락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문제되는 사료들이 즐비합니다. 『일본서기』역시 더하면 더하지 절대 덜하지 않습니다. 판타지란 말이 그냥 생긴게 아니죠

역사를 연구하려면 , 기본적으로 사료의 맥락을 이해해야합니다.
사료만능주의 사고로는 절대로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히 고대의 경우 역사는 고대로 가면 갈수록 , 사료는 엉망입니다.
다분히 신화적인 측면이 강하며 , 사료를 제대로 집필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 호구조사도 힘들며 , 그 흔한 지도또한 아주 실종수준이라서 , 정확한 지리에 대한 표현도 드뭅니다. 
아울러 , 사료에 나오는 지명들은 주관적인 의미에서 쓰여진거지 객관적인 의미에서 쓰여진게 아닙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 중국에서 바라보는 어떠한 자연적인 지명과 한국인이 바라보는 자연적인 지명 
그리고 그 외에 북방 유목민족이 바라보는 자연적인 지명은 틀립니다.
고유명사나 보통명사냐 따지는 것은 그 이유에서입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단순히 사료만능주의에서 벗어나 , 사료를 참고하되 역사학 이외의 학문에도 접근을 해야합니다. 올바른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단순히 사료만 보아선 안됩니다.
우선 고고학적인 정황이 필요합니다. 무언가 아직 이론이 되지 못한 가설을 이론으로 정립화 하기 위해선 고고학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일본이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발굴에 경악하고 기뻐했던 이유가 다 있습니다.
사료적인 측면인 『일본서기』와 『호태왕비』의 고고학적 정황으로 가설을 이론화 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엄밀히 말하자면 가설과 이론과 법칙은 다른 표현법입니다.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타학문에서의 인정도 받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적 정황이 없으면, 1차적으로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 고고학적 정황이 왜 중요하냐면 전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고고학적 성과가 굉장합니다.
단순한 신화로만 이해되던 <트로이 목마>신화는 <트로이 목마>의 발굴로 증명이 되었듯이 , 실제 역사를 이룬 그 주체는 그 흔적인 고고학적인 흔적을 반드시 남기기 마련입니다. 
한반도에 가득한 그 유적과 유물들은 한반도를 영유했던, 그 존재를 증명시켜줍니다.
특히 특정유구의 경우 , 이름까지 상세히 남기고 있어서 , 그 존재를 확실하게 어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고학적 정황이 없으면 가설은 이론이 될 수 없습니다.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 이건 아주 중요한건데 , 단순히 사료만 보아서는 안되는것이 , 
사료는 원래 그 자체적으로 믿기는 정말 힘듧니다. 
평원왕에게 욕설을 하며 주먹으로 쥐어 팬 중국사신이라던가 , 알에서 태어나온 혁거세라던가 , 동물들이 알을 보호해줘 태어났다는 동명이나 , 도술을 부릴줄 알았다는 탈해 수로 
아버지가 해모수에 어머니가 하백의 딸인 유화라던가 , 꿈에서 나타난 진지왕과 성교를 맺어 아기가 태어났다는 얘기등 이건 아주 단편적인 모습이고 , 이외에 신화적인 모습부터 시작해서 .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다분합니다. 사료를 그대로 바라보는 바보사학자는 없습니다.

그럼 아주 상식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구석기시대-중?석기시대 - 신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 철기시대 - 원삼국시대(삼한시대) - 삼국시대 
등으로 크게 달립니다만...
석기시대에는 금속기가 없이 돌로 도구를 만들던 시절입니다.
그러면... 돌이 과연 ... 어느정도의 문화적인 파급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 생각해보셨나요 ? 
BC10000년 전 세계는 신석기시대입니다.
그러면 신석기시대에 이제야 농사가 시작되었는데 , 그 농업으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선 어느정도의 쌀이 필요한지 아실까 궁금합니다. 
석기로 만든 농기구와 청동기로 만든 농기구 철기로 만든 농기구는 아주 질적으로 틀립니다.
휴한농법이 그냥 생긴게 아닙니다.
유럽의 땅들의 경우 휴한농법이 생긴 이유중 하나가, 철기로 만든 농기구가 없어서였습니다
봄에 땅을 튼튼한 철제농기구로 깊게 안파주면, 그 땅은 지력을 회복하지 못해서 쓸수가 없게 됩니다.
돈있어서 철제중쟁기를 가진 사람들만이 그 토지의 지력을 회복해서 , 경쟁기를 가진 집단보다 훨씬 많은 수확량을 거두었습죠.

그런데,, 청동기도 아니고,. 석기로...
그것도 농사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 그리고 농사가 보편호 되지도 못했고 , 농기구 또한 초보적인 단계에 있으며 , 농사에 대한 경험도 부족하며 , 농사에 대한 <농사직본>과 같은 책도 없는 초고대 문명이 게다가 토질이 좋은 땅도 아닌 척박한 땅에서 대규모 인구를 부양가능할까요? 한반도의 경우 토질이 좋은 땅인편입니다.
중국의 강남지방 한반도의 삼남지방 등은 좋은 편에 속하지요. 근데 한반도의 북삼도의 경우 물론 10대평야에 속하긴 하지만 삼남지방에 비하면 ... ㅎㄷㄷ  그러면 한반도를 넘어서 만주지방은 ... 더 열악하죠
시베리아는? 거긴 아닙니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 동아시아의 경우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인구 1억명을 부양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까요...

조선시대에 여러가지 측면에서 농업적인 혁명이 일어나 기술적인 측면(이앙법 등 여러가지 기술) 
집약적인 농사를 실시한 결과로 생산력이 많이 향상됬었습니다. 
근대 조선이 부양 가능한 인구가 1600만명... 이것이 한계였습니다.
조선의 비옥한 토지와 확연한 농업기술과 인구의 집약적인 투입으로 개혁의 결과로서의 산물이 고작 1600만명입니다. 참고로 , 인구의 집약적인 투입도 농지의 지력을 회복시킬 수 있을때나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철기는 커녕 청동기도 없는 신석기시대에 지력회복따윈 없습니다.
휴한법뿐만이 아니라, 벼농사도 안됩니다.
축산업은 곡물업보다 , 인구유지가 힘듭니다. 

1억명유지는 장난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믿고 말고할게 못됩니다.
영토유지 또한 하나의 나라가 대규모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선 필요한것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중앙집권화는 당연한 건데 , 원래 권력이란게 생겨난것은 ... 농업생산의 발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잉여생산물이 생기지 않았다라고 한다면, 신석기 시대 청동기 초기시대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분화도 없었을겁니다. 원시공동체 사회는 기본적으로 그나마 비슷한 사회가 공산주의
공동사회이죠.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라는 뜻입니다. 이 수평관계가 깨지기 위해선 , 잉여생산물이 필요합니다. 사냥따위로 생겨날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곡물업의 발달로 인해 , 단순분배수준의 이상으로 잉여생산물이 남게 되면 그제서야 개개인의 사유재산개념이 생겨나게 되고 그것이 발전하여서 , 부자가 생겨나고 , 그 결과 지배층 피지배층의 계급사회가 성립이 되는건데 , 신석기 사회는 잉여생산물이 많이 남고 할 시기가 아니라서 계급분화가 잘 안이루어집니다. 아직 작은 촌락 정도의 개념에서 부락같은곳에서 마을 공동의 창고를 두고 , 사냥하면 축제를 열고 공동의 축전을 열고 , 농사를 짓기 시작할건데, 

아직 계급분화가 확실하게 않이루어졌던 시절이니만큼, 중앙집권화를 이룬 거대제국이 생길 수 없음은 자명하죠. 성문화된 제국의 법도 필요합니다.
문자도 없이 성문화된 법을 만들 수 없고 , 강력한 법전을 만들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지방통치체제의 완비는 커녕 중앙통치체제도 불가능 하며 , 자기 나라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 개념도 없습니다. 원시인들의 그림이 개판인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림도 발달 안해서 지도 표기같은것도 힘드니 , 지방통치는 더욱 불가능하죠. 
적어도 최소한 청동기시대에 들어와야만이 나라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상식적인 측면에서 접근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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