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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훈족과 아틸라 이야기 - 두번째
게시물ID : history_157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5
조회수 : 8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14 15:29:05

434년 봄, 루아(Ruga)가 죽고 왕권을 계승한 것은 루아의 형제인 문주크(Munchuk)의 아들인 블레다(Bleda, Buda)와 그의 동생 아틸라(Attila)였습니다. 블레다와 아틸라는 부친인 문주크가 일찍 죽은 관계로 숙부인 루아 밑에서 여러 정복 전쟁에 참전하면서 주변의 여러 종족과 국가에 대한 정황을 파악할 기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통치자로서의 덕목과 국가 경영에 대한 경륜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인 블레다가 낭만적이고 정적이었던 탓에 대부분의 통치권은 아틸라에 의해 행사되었습니다.



아틸라는 지금의 세르비아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모라바 강가에 있는 마르구스(Margus) 성채 맞은편에 있는 투나 북안의 콘스탄티아(Constantia) 성벽에서 동로마 사절들을 말 위에 앉은 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평화를 위한 훈의 요구 조건을 단호하게 전달하였습니다. 훗날 ‘콘스탄티아 평화 조약(혹은 마르구스 조약)’이라고 알려진 이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선, 동로마는 훈의 복속민과의 접촉과 연대를 중지할 것, 동로마에 인질로 있는 자를 포함해서 훈에서 도망한 자의 비잔틴 유입을 차단하고, 도망자는 즉각 훈으로 돌려보낼 것, 양국의 무역 거래는 지정된 국경 마을에서만 허용될 것, 특히 동로마의 훈에 대한 연간 공납액을 2배로 올려 700 리브레(약 315kg)로 할 것 등이었습니다. 플린타스와 에피게네스라고 하는 동로마의 사절들은 아틸라의 단호한 요구 조건을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조약은 훈족의 완벽한 승리였으며, 뿐만 아니라 급습에 성공하지 않고도 자기네 왕국의 안전과 경제적 이득을 보장해주는 조건들을 강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로마 측은 훈과의 협정을 철저하게 수행하여, 협정 이행의 첫 단계로 동로마로 도망친 자들을 훈에게 인계하였습니다. 아틸라는 그들을 훈의 영역도 아닌 동로마의 영역인 트라키아의 카르수스(Karsus)에서 처형함으로써, 동로마를 비롯한 여러 주변 국가들에게 그의 권위와 위세를 새롭게 했습니다. 



이후 동로마와 훈 제국 사이에는 불안한 평화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블레다와 아틸라 통치 하의 훈 제국은 435년 볼가 강변의 샤라구르(Sharagur)족의 반란 기도와 442년에 일어난 아카티르(Akatir)의 반란을 내각 수반인 오네게시우스(Onegesius)와 아틸라의 장자인 일레크가 이끄는 훈 군대에 의해 진압한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로마와 서로마는 훈이라는 강력한 힘에 밀려 제국으로 밀려들어오는 게르만 민족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특히 서로마는 게르만 민족들의 유린과 약탈, 그리고 도탄에 빠진 농민들의 반란을 일으켜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에 서로마는 아에티우스를 통해 훈에 원병을 요청했습니다. 2년간에 걸친 반란에서 아에티우스는 아틸라의 원병의 도움으로 겨우 반란 주모자를 처형하고 소란을 평정할 수 있었습니다. 436년 서로마 영지 내에 있던 부르군드족의 군디카르(Gundicar) 왕이 훈의 서부 지역을 위협했습니다. 이에 훈 제국은 서부 지역의 엘리그인 옥타르의 지휘 아래 네케르 강변에서 군디카르가 이끄는 부르군드의 군대와 격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부르군드는 군디카르를 포함하여 2만 명이 전사하는 크나큰 패배를 겪었습니다. 이 전투는 훗날 독일의 유명한 서사시인 ‘니벨룽겐(Nibelungen)'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 부르군드, 바야부르, 프랑크, 롱고바르드족 같은 많은 종족들이 새롭게 훈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440년 아틸라는 동로마에 대한 공격을 다시 감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는 테오도시우스 2세의 협정 불이행 탓이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훈의 포로 중 고트 출신 아르네기실후스(Arnegisilhus)를 송환하지 않고 오히려 장군으로 임명해 훈 접경의 트라키아에 파견함으로써 아틸라를 자극하였으며 또, 국경 시장에서의 거래 원칙도 그리스 상인들에 의해 종종 위반되었습니다. 게다가 마르구스의 주교가 콘스탄티아 근교의 훈의 무덤을 도굴하는 사건이 발생한데다가 앞서 언급한 아카티르의 반란에 동로마가 배후에서 개입함으로써 동로마와 훈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때마침,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 게이세르크(Geiselick)가 지중해 진출을 방해하는 동로마에 대항해 아틸라에게 원병을 요청했습니다. 이 때가 441년이었습니다. 아틸라는 전군을 진두지휘하며 마르구스 점령을 시작으로 제1차 발칸 원정(441~442)에 나섰습니다. 아틸라가 지휘하는 훈 군대는 다뉴브 강을 건너 모라바 강으로 이동하여 나이수스(Naissus)를 점령하고, 트라키아로 진군하였습니다. 훈 군대의 진격은 서로마의 총사령관인 아에티우스의 중재로 멈출 수 있었습니다. 아에티우스는 테오도시우스 2세의 평화 협정 준수를 확인하고, 그에 대한 보장으로 자신의 아들 카라필리오(Carpilio)를 인질로 훈 궁정에 보냈습니다. 아에티우스의 제안을 수락한 아틸라는 투나 강변에 산재한 동로마 성채들을 접수하고, 훈에 대한 공격 거점이 될 수 있는 발칸 반도의 요새들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습니다.



445년 아틸라의 형인 블레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로써 아틸라는 훈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445년 블레다의 죽음으로 아틸라가 통치하게 된 훈 제국은 발칸반도에서 카프카스, 발트 해안, 우랄산맥, 알프스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예속된 종족의 수만 하더라도 45개 에 이르렀으며, 군사적으로도 동서 로마를 비롯해 그에게 대항할 만한 세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의 동로마 역사가인 프리스쿠스는 이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신성한 신의 검은 오랫동안 분실되었다가 훈의 한 목동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아틸라에게 바쳐졌다. 이제 아틸라의 세계 정복이 눈앞에 닥쳐왔으니, 이는 아레스의 검으로 지구를 통치할 힘과 정당성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프리스쿠스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인들은 아틸라가 ‘전쟁의 신 아레스의 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테오도시우스 2세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망명자들의 소환을 거부하고 공납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동로마가 협정 이행에 충실하지 않자 아틸라는 447년 제2차 발칸 원정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도 아틸라는 전군을 진두지휘하며 투나 강을 거너 두 방향에서 동로마 영내로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사르디카(Sardika), 필립포폴리스(Pilippopolis), 마르키아노폴리스(Marcianopolis), 아르카디오폴리스(Arcadiopolis) 성채와 요새들을 정복하고 도시들을 약탈했습니다. 공격의 고삐를 당긴 훈 제국의 군대는 게속해서 테살리아(Tesalia)의 테르모필레(Termopylae)까지 진군하여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 위해 아티라(Athyra)에 포진하였습니다.



사태의 긴박함에 테오도시우스는 즉각 정무관 아나톨리우스(Anatolius)를 아틸라에게 보내 휴전 협정을 진행시켰습니다. ‘아나톨리우스 협정’으로 알려진 이 휴전 조건은 투나 남쪽 5일 거리 공간에 동로마 제국 군대를 주둔시키지 말 것, 양국 무역 시장은 훈 변경 도시인 나이수스에 설치될 것, 동로마는 전쟁 배상금으로 금 6000 리브레(약 2700kg), 연공을 3배 인상하여 금 2100 리브레(약 945kg)로 할 것 등을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틸라는 동로마 측에 영토 할양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테오도시우스는 다뉴브 강의 남쪽 지대 즉.횡으로는 벨그라드(Belgrade)에서 스비쉬토프(Svishtov)에 이르고 종으로는 니스에 이르는 반경 500km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할양해 주었습니다.



*출처 

세계 각국사 시리즈 ‘이희수 著 터키사’

르네 그루쎄 著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

패트릭 하워스 著 ‘훈족의 왕 아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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