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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손
게시물ID : panic_142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4
조회수 : 158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4/19 09:43:33
-밖에 추워? 손이 차갑게 얼었어 나는 그의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 -눈이 많이 와. 네가 내일 붕대를 풀르면 하얀 세상을 볼 수 있을거야. 그도 얼어서 뻣뻣한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대답했다. -정말? 어서 그러고 싶어. 앞을 못보니까 답답해 죽겠어. 나 눈 다 낳으면 우리 같이 동해에 일출 보러가자. -....그래..꼭 그러자. 왠지 그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내 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나도 그의 언 손을 녹여주려고 나머지 한 손을 그 위에 살며시 포개었다. 그는 청각언어장애인이었다. 날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아서 말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주위의 반대를 이겨내고 우리는 내년 봄에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단 둘이 설악산의 설경을 구경하러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가 나고 말았다. 관광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화물트럭을 들이받았던 것이다. 그와 함께 맨 앞좌석에 타고 있던 나는 우주인처럼 몸이 붕 뜨더니 어딘가 모서리에 얼굴을 세게 부딪혔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뜨듯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의 손을 꼭 붙들고 놓지 않는 그의 손을 느끼며 나는 의식을 잃었다. 지독한 악몽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병원 침대에서였다. 버릇처럼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할 준비를 하려다가 문득 주위가 온통 어둠뿐인 것을 알아챘다. 아직 꿈이로구나.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도 깨지 않았다. 휴지가 물에 젖듯 차츰 차츰 두려움이 내 영혼에 젖어들었다. 떨리는 손을 들어 더듬어 보니 내 얼굴에는 미이라처럼 붕대가 둘둘 감겨있었다. "엄마, 엄마 어딧어? 나 이상해. 앞이 안보여 엄마" 누군가가 통곡을 하면서 나를 얼싸안았다. 내 작은 등을 투덕거리는 투박한 손. 엄마였다.울먹이는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나는 꼬박 3일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고 했다. 3일 동안이나? 사고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중간 중간 몇번인가 정신이 들었다고하지만 나는 하나도 기억이나지 않았다.너무도 끔찍하고 되새기기 싫은 기억이라 스스로 기억을 봉인했는지도 몰랐다. 라디오방송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을 들려오고 있었다. 의사가 말했었다. 나의 눈은 신경이 완전히 망가져서 회복이 불가능했다고. 하지만 고맙게도 누군가가 안구를 기증했으니 그분에게 감사하라고. 나는 다행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과정은 성공적이었다. 의사들은 기존의 80% 이상 시력회복이 가능하다고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었다. 내가 말을 하면 그의 귀에 들리지 않고, 그가 수화를 하면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장난치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상대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는 것 뿐이었다. 나는 지루한 입원기간 내내 그의 손만 만지작거리고 놀았다.이제 내일이면 붕대를 푸른다. 그와 함께 다시 한번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엄마는 새벽 수산시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밤에는 자리를 비워야 했다. 아까 낮에 내 침대 옆에서 웅크려 자면서 엄마는 말했다. 맘 같아서야 밤낮 너 간호해 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만, 병원비 때문에 일을 놓을 수가 수가 없다고. 그나마 눈수술하게 된 것도 천만다행인데 내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열심히 일해서 병원비 대주겠다고. 푸념의 마지막은 항상 먼저 돌아가신 아빠 타령이었다. 내가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엄마는 억척같이 일하시면서 혼자 나를 키워오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만큼은 능력있는 놈한테 시집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밤에 엄마가 없어도 나는 무섭거나 외롭지 않았다. 밤에는 항상 그가 나의 손을 잡아주며 내 머리맡을 지켜주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내가 죽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맨 앞자리는 사고가 나면 보통 창밖으로 튕겨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살수 있었던 것이 끝까지 날 놓지 않았던 그의 강한 손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손을 뻗어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에미다. 그래 아프지 않고 잘 있나 해서" "아이참 엄마두, 조금 아까까지 같이 있었으면서 뭘..나 걱정말고 일해" "에구..에미가 되갖구 자식이 아픈게 같이 있지도 못하구..그놈의 돈이 뭔지..흐흐.." 나도 덩달아 목이 메어왔다. "난 괜찮다니까. 나 내일이면 붕대 푸르고 그 사람이랑 다시 세상 볼 생각하면 좋아 죽겠어" "어이구..이 철없는 것아.."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뭉개졌다. "그 사람은 이제 앞을 볼 수 없어..영원히" "뭐?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너한테 이식된 눈, 그거 그사람꺼야 이것아.." "..뭐?" 나는 정신이 멍해지며 한 손으로 그의 손을 꼬옥 마주잡았다. "말도 안돼! 그런걸 왜 나한테 말도 안하고 허락했어? 그 사람 안 그래도 장애인이야. 차라리 내가 앞 못보고 사는게 낫지, 귀먹고 눈멀고 어떻게 살어?" 나는 이성을 잃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그 사람.." 엄마가 머뭇거렸다. "그 사람, 죽었어. 사고 난 날 그 자리에서..그 사람 부모님 동의 받고 이식한거야. 늦으면 늦을수록 수술성공률이 떨어진다고 해서..흐흐흑" 그제서야..머리 한 구석에 억지로 봉인해 놓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피비린내와 통곡소리의 아비규환 속에서 응급실에 누워있을 때 희미한 의식속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주고 받던 말들이 떠올랐다. "선생님, 이 사람이 환자 손을 잡고 놓질 않아요" "죽은 상태로 근육이 수축되서 굳어버렸군. 별 수 없네. 살아있는 환자를 위해서 잘라내야지. 사망자 부모님하곤 아직 연락 안되나?" "조금 있으면 병원에 도착하신데요" "오시자마자 상황설명 드리고 안구이식 허락을 받게. 환자 약혼자라니까 가능할거야. 한시가 급해" 머릿속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쳤다. 그렇다면..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손을 붙들고 놓지 않는.. 이 차갑고 딱딱한 손은.. 출처 : www.muzachi.com 작가 : 안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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