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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교 감
게시물ID : panic_142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4
조회수 : 16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4/19 09:50:45
영식과 유미를 태운 검은색 BMW는 대관령 고개를 내려오고 있었다. 산간지방이라 아직 오후 5시밖에 안됐는데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늦어도 12시전엔 집에 들어가야 내일 회사 출근하는데 지장이 없을 텐데..영식은 담배를 뻑 뻑 피워대며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평일이라 차가 안 막힌다고는 해도 회 한접시 먹으러 당일치기로 동해안까지 다녀오는 건 약간 무리가 있었다. 옆 좌석의 유미는 지쳤는지 한쪽 어깨에 고개를 떨구고 쌔근 쌔근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영식은 미소를 머금었다. 2년 넘게 사귀면서 보아온 얼굴이지만 오늘은 느낌이 색달랐다. 평소보다 더 청순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월차를 내면서까지 데이트를 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31세의 나이에 국내 최대라는 K광고대행사의 부장. 억대연봉. BMW, 거기다 집안이나 미모나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는 애인까지. 올 가을 예정했던 대로 유미와 결혼식만 올리면 영식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핸들을 잡은 영식의 약지 손가락에서 빛나고 있는 다이어커플링은 이 모든 행복을 약속해주고 있었다. 후두둑..두둑.. 아까부터 날씨가 꾸리꾸리 하더니 빗방울 몇 개가 앞창에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투신을 했다.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며 동심원이 커지더니 금세 앞창은 뽀얗게 부서지는 비의 살점들로 뒤덮였다. 노란 헤드라이트 광선 속에 바늘처럼 촘촘히 꽂히는 빗줄기를 잘라 담은 채 영식의 차는 끝도 없이 반복되는 꼬부랑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오늘 중으로 서울까지 갈 것 같지가 않았다. 영식은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속도계의 바늘이 올라가자 옆창을 스쳐가는 빗줄기가 옆으로 길게 드러누웠다. 띠리리링~ 유미의 핸드폰이 울렸다. "으음..? 아..네..여보세요...?" 유미는 일어나서 허둥지둥 전화를 받았다. "..어...응..지금 대관령 넘고 있어...참 내, 그렇다고 정말로 전화를 한거야?...알았어..곧바로 갈께...어우! 무슨 일은! 아무일 없었으니까 걱정말구..어..끊는다~" 삑. 유미는 핸드폰을 끊자 영식이 입을 열었다. "누구야?" "응? 어..으응..내 동생 혜미. 전에 말했잖아. 미스코리아 나가도 될 만큼 이쁜 동생 있다구" 영식은 피식 웃었다. "암만 하면 너만큼 이쁠려구" "아냐 오빠가 몰라서 그래, 나보다 동생이 훨씬 훨씬 훨씬 이쁘다구. 만일 오빠가 나 만나기전에 혜미를 먼저 만났으면 틀림없이 걔랑 사겼을걸?" 유미는 이상하리만큼 열을 내며 동생을 두둔했다. "그래? 그럼 언제 너 몰래 연락해서 만나자고 해볼까? 니 말 마따나 사귀어서 결혼도 하고" 영식이 그런 유미가 귀여워서 골려주려는 듯이 짖궂게 말했다. "흥, 그럼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두사람을 맨날 맨날 괴롭혀 줄껄? 하지만 내가 아니라면 오빠한테 어울릴 사람만한 내 동생밖에 없을 거야. 혹시라도 내가 일찍 죽기라도 한다면 그땐 귀신이 되어서라도 두 사람이 잘 되게 도와줄께." 영식은 대꾸를 하지 않고 너털웃음만 지었다. 충분히 예쁘면서도 스스로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겸손. 남의 장점을 스스럼 없이 인정할 줄 아는 여유. 이것이 유미만의 매력이었고 영식이 유미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아냐, 그래도 난 너만 사랑할거야" 영식이 오른손을 뻗어 유미의 손을 잡아며 진지하게 말했다. 전방을 응시하는 그의 두 눈이 믿음직하게 빛났다. "그럴리는 없겠지만..만약..네가 먼저 죽어도...나.. 한평생 너만 사랑하고 그리워하다가 홀아비로 늙어 죽을거야..진심이야.." "..오빠.." 유미의 촉촉이 젖은 눈동자가 물결이 인 듯 출렁였다. 빵빵빵- 그때 클란숀 소리가 비명처럼 울리며 밤하늘을 찢어놓았다. 빵빵빵빠앙- "어..어..? 저 차가 미쳤나, 갑자기 왜 저래?" 영식이 다급하게 클락숀을 울려댔다. 마주 오던 화물트럭이 중앙선을 넘더니 영식의 정면에서 미친듯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트럭 운전수의 발밑에 빈 소주병이 너덧병 덜그덕거리며 나뒹굴었다. 운전수는 술에 엉망으로 취해서 엑셀을 밟은 채 잠이 들어있었다. "미..미친 새끼!!" 영식이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핸들을 오른쪽을 꺾었다. 끼이이이익- 타이어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자동차가 콘트롤을 잃고 난간으로 돌진했다. 핸들이 심하게 덜컹거리는 바람에 영식은 들고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 꺄아아아-" 유미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질렀다. 콰-앙- "..유미야 괜찮니?" 먼저 정신이 든 영식이 옆 좌석의 유미를 흔들어 깨웠다. 난간을 들이받은 앞부분은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앞유리창이 모조리 박살났다. 다행히 안전벨트를 맨 영식은 깨진 유리창에 이마를 조금 긁혔을 뿐 심한 부상은 입지 않았다. 트럭은 벌써 뺑소니를 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오빠 다..다리가 안빠져" 그러나 유미는 좌석과 앞판 사이에 두 다리가 끼어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양쪽 다리가 완전히 으스러졌는지 끔찍한 고통이 엄습했다. "흐흐흐흑 아파 아파죽겠어..오..오빠..나 어떡해 으흐흐흑" "유미야 조금만 참아.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영식이 안간힘을 쓰며 유미를 일으켜서 당겨보았다. "아아아악 아파 아파! 아프다구!!!" 유미가 끔찍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도저히 그런 식으로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영식이 들여다 보니 두 번 꺽여서 접힌 정강이의 살점 사이로 하얀 뼈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빌어먹을..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그 명석하던 영식의 머리도 지금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어 버렸다. 119라는 번호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오..오빠..이상한 냄새가 나..기..기름이 새는 거 같애" 유미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신음하듯 말했다. "뭣?" 아닌게 아니라 앞부분에 있는 엔진에서 기름이 새어나와 유미의 발목부근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동그랗게 커진 영식의 눈동자에 운전석 바닥에 떨어진, 방금 전까지 피우다 떨어뜨린 담배꽁초가 보였다. 아직까지 빨간 불똥이 살아있었다. 바닥을 검게 갉아먹으며 퍼지는 휘발유가 바로 그 앞까지 접근해 있었다!!! "안돼!!!" 영식이 황급하게 손을 뻗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펑- 소리를 내며 옮겨붙은 불꽃이 삽시간에 자동차 안을 뒤덥었다. 유미가 화염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유미는 소금을 뿌린 지렁이처럼 몸을 뒤틀며 절규했다. 영식은 재빨리 뒤로 한걸음 물러나서 소매에 붙은 불을 껐다. 그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소화기! 아직 뒷트렁크까지는 불길이 번지지 않고 있었다. 영식은 뒤쪽으로 가서 비상키로 트렁크를 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유미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산채로 불에 타고 있었다. "참어..조금만 참어 유미야!!" 영식은 눈물과 콧물을 줄줄 쏟으며 소화기를 찾았다. 그러나 그가 소화기를 들고 앞좌석으로 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불길은 더욱 거세어졌고 유미는 아직 살아있기는 했지만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 얼굴피부가 녹아내려서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고 버둥거리는 손가락도 살이 녹아서 개구리손처럼 서로 엉겨붙어있었다. 도저히 인간의 형상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살아난다고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성대도 불에 타버렸는지 비명소리조차 낼 수 없었지만 유미는 고통에 겨운 처절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았다. 영식은 소화기의 안전핀을 뽑고 소방호수를 유미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영식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만일 유미가 살아난다면 평생 저런 끔찍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될 것이다. 내가 과연 그런 괴물과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전도유망한 내가 평생 괴물아내의 병수발이나 하면서? 아니다. 자신없다. 유미는 유미대로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을 내가 놀러가자고 불러댔기 때문이라고 평생 원망을 할 것이다. 처음 얼마동안은 책임감과 동정심 때문에 같이 산다고 해도 그건 사랑이 아니다. 결국 몰인정하다는 주변의 눈초리 속에서 헤어져야 하겠지. 그러면 나는 이혼남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막대한 위자료를 지불해야 하겠고. 한편 저렇게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유미 자신으로서도 큰 불행일 거야. 예전의 미모는커녕 말 그대로 괴물의 모습으로 망가진 두다리도 잘라내야겠지. 평생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살아갈 것이다..유미는 차라리 그 때 죽었어야 했다고 후회를 하겠지. 그래, 지금 죽는 것이 너를 위해서도 낫다. 내가 이러는 건 유미 너를 위해서야.. 영식은 끝내 소화기를 쏘지 않았다. 그대로 방치된 유미는 그의 눈앞에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죽어갔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지 그녀의 격려하던 몸부림이 둔해졌을 때. 갑자기 화염속에서 유미가 두 눈을 번뜩 뜨고 영식을 노려보았다. 지금 유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까. 영식은 주저주저 하다가 소화기를 옆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다 죽어가던 유미는 입술이 녹아서 잇몸과 턱뼈가 드러난 입으로 뭐라고 고함을 지르더니 유리가 박혀있는 앞유리창 틀에 자신의 머리를 짖찧었다. 쾅! 쾅! 쾅! 쾅!..엄청난 힘에 자동차 전체가 흔들거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죽어서 고통을 덜어보려는 처절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시커멓게 숯이 된 유미가 그 동작마저 멈추었을 때 영식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네.. S보험사죠? 자동차 사고가 났습니다..아..네..위치는 대관령...." 영식은 평소대로 침착한 말투로 사건 경의와 위치를 설명하고 타낼 수 있는 보험금의 액수까지 물어보았다. 그의 등뒤에서 자동차가 화려한 캠프 화이어처럼 불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불타고 있는 유미의 시체는 그런 영식의 등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 유미의 동생 혜미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사고가 난 후 6개월이 지난 후였다. 영식은 압구정동에 있는 바닷가재 전문레스토랑에서 혜미를 마주하고 앉았다. 길고 자연스런 퍼머머리에 단아한 톤의 정숙한 옷차림. 조각처럼 또렷한 이목구비. 유미에게 듣던데로 세련미가 넘치는 보기드문 미인이었다. 너무 완벽해서 부자연스러워 보일만큼. 자매라 그런지 유미와 놀라울 정도로 많이 닮았지만 전체적으로 조금씩 격상을 시켜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언니의 일은..정말 미안해요..내가 그 날 불러내지만 않았어도.." "아니예요, 잘못은 그 술마시고 운전한 사람에게 있지 영식씨에게 있는게 아닌걸요. 뺑소니 운전수도 잡혔으니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오히려 결혼까지 약속했던 언니가 그렇게 됐으니 영식끼께서 더 마음 아프셨겠어요" 혜미는 담담하게 말하는 듯했지만 슬픈 눈동자 속에는 아직 약간의 원망의 빛이 서려있는 듯 했다. "오늘은 언니의 생일이예요. 그런 의미에서 건배, 어때요?" 혜미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와인잔을 들어올렸다. "게다가 내 생일이기도 하니까요" 챙- 영식이 잔을 맞추었다. "그것 참 재밌네요. 자매끼리 생일이 같다니. 언니하곤 몇 살차이죠? 겉으로 봐선 별로 차이가 안나 보이는데.." "24살. 동갑이예요." "네?" "어머, 언니가 말해주지 않았나 보죠? 우린 쌍둥이예요." "아~ 어쩐지 언니랑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 했습니다. 목소리가 유미랑 똑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도 완전히 똑같이 생기진 않은 걸보니...?" "네, 우린 이란성이예요. 겨우 2분 늦게 태어난 탓에 제가 동생이 되었구요 호호호" 혜미는 이지적이고 도회적으로 보이는 외모와 달리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줄 아는 여자였다. 쌍둥이라 그런지 말투며 사소한 습관들이 죽은 언니를 쏙 빼닮아 있었다.그래서 영식은 문득 유미와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유미의 말은 사실이었다. 만일 유미와 만나기 전에 혜미를 만났다면 세 사람의 인생을 달라졌을 것이다. 영식는 자신의 마음속에 혜미를 소유하고 싶은 터무니 없는 욕망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유미가 죽은지 겨우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영식은 간사하게 흔들리는 자신 자신에게 실망감을 느꼈다. 잠시 이런 저런 주제로 잡담을 나눈 후 혜미는 핸드백을 뒤져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었다. "오늘 제가 뵙자고 한 건 이것 때문이예요" "..이건?" 영식이 케이스뚜껑을 열어보니 다이어가 박힌 반지가 들어있었다. 영식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와 똑같은 것이었다. 유미가 죽은 후에도 영식은 아직 커플링을 빼지 않고 있었다. 딱히 유미를 기억한다기 보다 그 후로 마땅히 만나는 여자도 없었고 항상 끼던거라 빼면 허전했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끼고 있던 커플링이예요. 사고가 나던 날 이걸 집에 두고 나갔거든요. 그래서 제가 돌려드리려고 왔어요." 두 손가락으로 반지를 집어들자 떠오르는 추억에 영식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집을 나가기 전에 이 커플링을 끼웠다면..반지를 끼울 시간만큼만 늦게 나갔다면 그 미친 운전수도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쯤 영식씨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텐데...훗..참 신기하죠? 한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작은 것에 좌우되다니 말이예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혜미의 옆얼굴이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영식의 머릿속에 이 반지를 저 여자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도 영식은 혜미를 자주 만났다. 영식 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고 밥을 먹고 요새 어디어디가 경치가 좋다고 하더라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럼 다음에는 거기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고..이렇게 만남이 반복되는 사이 어느새 둘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다. 혜미를 만날 때마다 영식은 내심 죽은 유미에게 미안했지만 도저히 혜미의 매력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영식은 혜미의 차 안에서 그녀와 키스를 나누며 죽은 유미의 말을 생각했다. "..혹시라도 내가 일찍 죽기라도 한다면 그땐 귀신이 되어서라도 두 사람이 잘 되게 도와줄게." 혜미의 단내 나는 혀가 영식의 입속으로 파고 들자 영식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녀의 감미롭고 섬세한 혀가 원형생물처럼 꿈틀대며 영식의 입술과 잇몸을 핥고 혀뿌리를 빨아들였다. 게다가 땀에 젖은 채 흘러내리는 혜미의 머리카락에서 뿜어져나오는 여인의 체취가 영식을 미치게 만들었다. 영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혜미의 볼륨감 넘치는 가슴을 움켜쥐고 애무했다. 그러나 혜미는 조심스럽게 몸을 틀어 영식의 손길을 떨치고 입술을 떼었다. 대신 그녀는 영식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말했다. "그거 아세요? 쌍둥이끼리는 보통사람들은 모르는 교감 같은 게 있는 거. 아무리 먼 곳에 떼어놓아도 보이지 않는 끈이 항상 두 사람을 잇고 있는 거. 한쪽이 행복하면 다른 한쪽도 행복해 하고 한 쪽이 아파하면 다른 한쪽도 아파한데요. 그래서 둘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도 서로 비슷하데요.." 영식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혜미의 작은 등을 쓸어 안았다. "저..오늘 가보고 싶어요..언니가 사고를 당했던 그곳에. 그 곳에 가서 언니에게 말할 거예요. 미안하다고. 미안하지만 용서해 달라고. 이래선 안되는 거 알지만 이런 감정,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영식의 가슴팍이 혜미의 뜨거운 눈물로 젖어들었다. 부우우우웅- 영식의 차가 대관령 길을 내려오다가 난간이 엿가락처럼 휘어진 지점에서 갖 길에 정지했다. 바닥은 아직도 검게 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예전 유미가 불에 타서 죽었던 바로 그 장소였다. 밤새도록 달려온 터라 어느새 밝아온 주위의 공기가 온통 푸른 색이었다. 차가운 새벽공기애 앞창에 하얀 서리가 끼었다. "다 왔어. 여기야" 영식은 아직 안전벨트도 푸르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혜미의 차였지만 위치를 잘 아는 영식이 운전을 했다. "그렇군요. 잠깐 트렁크 좀 열어주시겠어요? 언니를 위해서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 틀림없이 좋아할 거예요" 영식이 버튼을 눌러서 트렁크를 열어주자 혜미는 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혜미가 미리 준비한 물통 같은 것을 들고 뒤뚱 뒤뚱 나타났다. "뭐야? 그게?" "말씀드렸잖아요. 언니를 위한 선물이라고." 혜미가 물통의 뚜껑을 열더니 투명한 액체를 차에다가 뿌리기 시작했다. 시큼한 알콜 냄새가 영식의 코를 찔렀다. "무..무슨 짓이야 이게? 이건 휘발유잖아?" 영식이 놀라서 안전벤트를 푸르려고 했지만 한번 채워진 벨트는 꼼짝을 안했다. 운전석문도 마찬가지로 열리지 않았다. 사태를 눈치 챈 영식의 얼굴이 공포로 굳어졌다. "혜..혜미야 도대체 왜 이러는거니, 응?" "비겁한 새끼. 너 같은 건 살아있을 가치도 없어" 혜미는 차에 골고루 휘발유를 뿌리고 손에 라이터를 집어들었다. 새벽시간이라 오가는 차들도 없었다. 치익- 혜미의 손에서 켜진 라이터불을 바라보며 영식은 어젯밤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그거 아세요? 쌍둥이끼리는 보통사람들은 모르는 교감 같은게 있는거. 아무리 먼 곳에 떼어놓아도 보이지 않는 끈이 항상 두 사람을 잇고 있는거. 한쪽이 행복하면 다른 한쪽도 행복해 하고 한 쪽이 아파하면 다른 한쪽도 아파한데요. "서..설마" 혜미가 불붙은 라이터를 던지자 폭발하듯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차 안에서 영식이 유리창을 긁으며 절규하는 모습이 보였다. 혜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괴물처럼 혀를 날름거리는 뻘건 불꽃이 그녀의 앞 얼굴을 환하게 비추어주었다. '..이제 만족하는 거니..?'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멀리서 환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replay#3>> "아니, 이 많은 부위를 다 뜯어고치시려고요? 비용도 비용이지만 한번에 하면 위험해서 안됩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해야 합니다" 성형외과 병원장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돈은 원하시는 만큼 드리겠어요. 기간은 최대한 빨리 얼마나 걸리죠?" "우선 눈, 코랑 얼굴형을 바꾸시는데 최소한 6개월은 걸립니다. 그 정도만 바꾸셔도 주위분들이 도저히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인이신 분이 왜 고치시려는 겁니까? 이해할 수가 없군요."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무릅에 가지런히 모아 깍지를 낀 손에는 다이어 커플링이 끼어져 있었다. replay#2>> -아악 언니 아파 살려줘 언니 뜨거워 유미의 머릿속에 혜미의 고통스런 외침이 진동했다. 유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침대위에서 나뒹굴었다. 쌍둥이였던 혜미와 유미는 어려서부터 서로의 감정을 교감하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지금 유미는 혜미가 겪는 것과 똑같이 불에 타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아...안돼 혜미야.." 고통이 극에 달해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 캄캄하던 눈 앞이 번쩍 띄여지며 시뻘건 불길 너머로 소화기를 들고 서있는 영식의 모습이 보였다. "영식씨- 뭐하는 거야! 어서 소화기를 뿌려! 혜미가..혜미가 죽는단 말이야 으흐흐흑.." 혜미가 눈을 하얗게 뒤집고 방안에서 울부짖었다. 유미는 혜미의 눈을 통해서 그 지옥을 생생히 볼 수 있었 다. 그러나 영식은 소화기를 옆으로 내던진채 그저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언니 뜨거워..뜨거워 죽겠어 도와줘..어서..날 죽여줘.. 곧이어 혜미는 머리를 벽에 쿵쿵 들이박는 듯한 격심한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replay#1>> "혜미야아~ 언니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아~ 언니가 오늘 영식씨랑 동해 간다구 약속이 있는 줄 모르구 친구 결혼식에 꼭 간다고 했거든? 걘 가장 친한 친구라 안가면 안 돼. 그러니까 네가 오늘 하루만 영식씨랑 대타 뛰어주면 안될까? 응?" 유미는 혜원에게 유치원생처럼 엉겨붙어서 애원을 했다. 빠앙-창 밖에서 클락숀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구 참 언니두, 일란성이라 똑같이 생겼다는 걸 꼭 이런데 써먹어야겠어? 흠..언니가 아끼는 그 수정머리핀을 주면 한번 생각해 보지 뭐" "정말? 고마워, 진짜 진짜 고마워" 혜미는 유미를 얼싸안으며 좋아했다. 둘의 얼굴은 부모가 아니라면 구분하지 못할 만큼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그치만 너, 영식씨가 멋있다고 엉뚱한 생각해선 안돼! 우린 쌍둥이라 니가 이상한 짓 하면 내가 바로 알아챈다는거 알지?" "어이구 걱정도 팔자셔. 정 걱정되면 저녁에 전화라도 하지 그래?"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요것아" 둘은 침대 위로 쓰러져서 서로를 간지럽히며 깔깔거렸다. 빵-빵- 재촉하는 듯한 클락숀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영식씨 차세워놓고 기다리겠다. 어서 나가봐. 파이팅!" "언니두, 파이팅!" 혜미가 환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지금 나가 오빠!" 밖에서 유미의 톤을 흉내낸 혜미의 능청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미는 거울앞에 서서 자기 손가락에 끼워진 다이아커플링을 만지작거리며 싱긋 혼자 미소를 지었다. 출처 : www.muzachi.com 작가 : 안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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