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혁신경제정책, 이렇게 이해하자. 혁신경제정책 즉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가 너무 낮다. 그 결과 참여정부가 좌파정부니 신자유주의에 치우쳐 있다느니, 말이 많다. 노 대통령은 급기야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다고 했다. 어느 쪽이든 좋은 것이면 보다 적극적으로 정책으로 개발해 국정운영에 활용하겠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의미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문제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국민총생산(GDP) 대비 재정규모를 놓고 그것을 말할 때, 우리는 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를 가르는 기준을 GDP 대비 재정규모의 크기에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 비율이 50%대에 이르더라도 큰 정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정부의 역할 문제로 귀결되며,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할 때도 있고, 작아져야 할 때도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정부는 국민에 대해 그 희생을 요구했다. 특히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빈곤층의 희생이 더 컸다. 기업의 경우에도 중소기업과 영세소기업의 피해가 더 컸다. 대기업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공적자금을 투여 받는 등 회생의 길을 걸었지만 중소기업 및 영세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부도라는 이름으로 퇴출되었다. 그들의 생산설비는 대부분 해체되어 고물이 되었거나 외국으로 팔려나갔다. 그 문제로 인해 실업자가 양산되고, 중산층의 붕괴와 더불어 빈곤층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 당연히 정부는 중산층 복원노력과 빈곤층에 대한 지원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금융 산업 및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투입된 막대한 공적자금에 대한 부담이 모두 국민에게 귀속되었다. 이제 그 국민적 부담을 정부가 어느 정도 들어주어야 한다. 중소기업 혹은 영세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배려 또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역할확대가 불가피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부의 역할확대란 과거 금융 산업의 지배를 통해 정부가 경제정책을 주도하던 것과는 다른 의미다. 참여정부가 동반 성장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형화된 그릇이 될 수 없다. 이 문제는 우리국민의 사회의식 혹은 경제의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항상 반만년 역사와 배달민족을 강조해왔다. 사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의 역사를 지켜낸 힘은 바로 단일민족이라는 사회적 유대 즉 민족주의 정신이었다. 그것은 혈연과 지연이라는 인연의 고리에 기초해있었다. 사실 지연 혹은 혈연에 기초한 사회는 사회제도(법률)보다는 사회적 유대 즉 공동체 정신에 의해서 존속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지난 50년 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연과 혈연에 기초한 사회관계가 사회발전에 오히려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역설인 셈이다.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이 땅과 민족을 지켜낸 우리의 정신(지연과 혈연에 기초한 공동체 정신)이 사회발전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미덕이며, 우리사회가 지켜내야 할 공존을 위한 윤리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사회는 우리들에게 우리민족이 그 동안 대대로 지켜온 미덕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아름답고 고결하기까지 한 민족적 유대 즉 공동체 정신을 버려야 하는가? 그것은 국가 혹은 사회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우리의 전통사회와는 다른 가치의 새로운 사회제도와 문물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입한 것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이며,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다.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지연 혹은 혈연을 기초로 하는 사회적 유대 즉 공동체 정신이 아니라 바로 효율성을 추구하는(서구의 문화와 제도를 지탱하고 있는)과학주의 혹은 합리주의 정신이다. 결국 우리사회는 불과 50년 만에 지연과 혈연을 중시하던 공동체 사회에서 과학주의와 합리주의를 강조하는 개인중심의 사회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공동체 정신과 합리주의의 접목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서두른 나머지 그것을 접목하지 못했다. 앞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양자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모든 국민이 합리주의 속에 숨어있는 책임의식 즉 공동체 정신은 바라보지 못하고 그 혜택만 누리고자한다.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이유이다. 법률과 제도가 엄격하게 지배하는 사회(법치주의) 속에 있으면서도, 언제든지 그것을 무력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력화 시키려고 노력한다.(가장 대표적인 집단으로 대기업의 강성노조를 들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 내부에서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한 권리 행사를 나무랄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정당성이란 법률 혹은 제도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그 어떤 이유로도 권리의 행사는 법과 제도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국민의 다수는 아직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혁신경제정책 주된 내용은 경제주체로서 기업이든 정부든 아니면 개인이든 간에 바로 법률과 제도의 범주 안에서 이들의 경제행위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을 통해 동반 성장하려면 협력을 하는 것은 필수이지만 엄격하게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어야 한다. 법률과 제도의 범주를 벗어나면 결코 상호 협력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의 토대란 바로 보다 엄격한 법률과 제도 내에서의 경쟁을 의미한다. 앞에서 간단한 언급이 있었지만 왜 참여정부는 혁신경제정책의 전략으로 동반성장을 선택했는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는 하나의 비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필자는 ‘농수로경제정책론’이라는 이름을 붙여둔다. 우리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물이 필수다.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로를 조성해야 한다. 지난 50년 간 우리사회는 농수로를 개설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결국 맨주먹으로 물길을 만들고 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본격적인 작물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수로는 급조한 나머지 문제점투성이 인체 급한 대로 큰 농장에만 연결되는 대형수로이다. 우리는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물이 공급되는 소형수로는 건설하지 못했다. 그 대형 농장은 많은 사람을 고용해서 많은 작물을 생산함으로써 국민 배불리기에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그곳에 합류하지 못한 다수의 국민은 빈곤층으로 전락해있다. 대형수로를 조성해 모든 물을 일부 계층이 싹쓸이하는 머리 일반 국민들은 선의의 피해자가 되었다. 참여정부는 급조된 농수로를 보수하여 물의 손실을 최대한 줄여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원하는 곳이면 모든 곳에 물이 공급될 수 있도록 전면적인 농수로 제 정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참여정부의 혁신경제정책의 성과가 더딘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문제점투성이인 대형수로에 대한 전면적인 개보수다. 초대형 물난리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실한 수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물 공급의 효율성을 제고해야만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물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공급되도록 작은 농수로의 개설이다. 이에 대해서 대형수로를 이용하던 집단은 반발한다. 그저 자신들의 논에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여 그 수로의 부실에 대해서 손을 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기득권의 유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로 보수작업을 두고 좌파적인 정책이라고 저항한다. 더군다나 대형수로에서 여러 갈래의 작은 수로를 개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못마땅해 한다(균형발전). 그러나 작은 수로를 이용해야 할 집단은 자신의 논에 언제 물이 들어오느냐며 야단법석을 떤다. 이 집단은 오히려 대형수로의 개보수에 대해 못마땅해 한다. 이것을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비판에 열을 올린다. 대형수로의 개보수가 완료되어 물의 손실이 없어야만 작은 수로에까지 물이 공급될 수 있다. 물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대형수로에서의 물의 유실을 막지 않으면 작은 수로에는 물을 공급할 수 없다. 우리국민은 이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참여정부의 혁신 경제정책 즉 동반성장 전략이란 바로 앞의 비유 즉 대형농수로의 개보수를 통해 물 공급의 효율성 제고하는 한편, 그것을 실현함으로써 비로소 작은 수로의 개설과 함께 그 곳에도 물이 공급될 수 있다고 보는 것과 같은 이치의 경제정책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참여정부의 혁신경제정책 즉 동반성장론은 우리사회의 새로운 100년을 위한 경제 전략인 셈이다. 일평경제연구소 소장 정 상 출처:
http://assembly.joins.com/content.asp?board_idx=2005&page=1&tb_name=d_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