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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금속활자 구텐베르크가 배워가다.
게시물ID : humorbest_1579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차녕이
추천 : 36/7
조회수 : 1708회
댓글수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7/02/05 04:08:17
원본글 작성시간 : 2007/02/01 23:39:02
한국의 금속활자 구텐베르크가 배워가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50년경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때의 금속활자는 남아있지 않고 인쇄된 책(성경)만 남아있다.(1452 ~1454 인쇄) 그 인쇄된 성경을 보고 구텐베르크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다고 해온 것. 구테베르크가 당시 만들었다는 금속활자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텐베르크 기념 박물관의 에바 한네부트-벤츠 관장의 발언. [연합뉴스 2004-10-30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805987§ion_id=104&menu_id=104 그런데 한국에는 구텐베르크보다 70여년 이전인 1377년에 만들어진 [금속활자 책]이 있다. 바로 [직지심경] -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 그런데 미국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는 구텐베르크가 한국으로부터 금속활자기술을 배웠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2005-05-19 ] 1. 당시 교황사절단이 한국에 와서 금속활자기술에 대해서 배워갔다. 2. 그 사절단 중에 구텐베르크의 친구가 있었다. 3. 구텐베르크는 그 친구의 도움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4.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에서 그러한 사실에 대한 기록을 봤다. 이상이 '앨 고어'의 주장.

구텐베르크 금속 활자는 한국에서 배워간 기술    <- 관련글

그런데 이번에는 조선 세조 7년(1461)에 만들어진 금속활자 실물이 발견되었다. [연합뉴스 2007-01-04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1512749§ion_id=103&menu_id=103 1450년경에 만들었다는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실물은 전해져오지 않는데 (지금 없는데) 그보다 불과 10년 정도 후인 1461년에 만든 한국 금속활자는 저리도 생생히 남아있는 것이 발견된 것. (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됐다. 보유한 수십만개의 금속활자 중에서 찾아냈다 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된 금속활자가 발견될지 모르는 일.) 물론 기록상 보면 한국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보다 최소한 2백년 앞선다. 지난 천년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얘기되어지는 금속활자. 이리보나 저리보나 금속활자는 한국의 발명품. 한국의 과학기술이 세계사를 뒤바꾼 것. 출처 http://cafe.daum.net/hankookhistory 산수유와 산새 지리산 온천과 함께 산수유로 유명한 전남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 산수유 가지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빨갛게 익은 산수유 열매를 따 먹고 있는 산새의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연합뉴스] 이상 2장 - 전북 무주 덕유산에서 출처- http://hawk.pe.kr 네팔 포카라의 사랑곶이란 산정상에서 찍은 사진 (새벽) 사랑곶이란 지명은 언뜻 들으면 한국명칭처럼 들리지만 실제 네팔지명이 사랑곶 출처- http://www.slrclub.com/bbs/vx2.php?id=work_gallery&no=318514 고대 한민족의 금속기술 중국보다 앞섰다. 중국 고대 기록은 금속문명이 동이족(東夷族: 한민족)에서 생긴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鐵古夷字也 (철(鐵)은 옛날에는 夷자였다.)] -『사기(史記)』권2-5 [鐵夷通借作 ( 鐵(철)자 夷(이)자가 변한 것이다.)] -『한서(漢書)』권28 [金夷 古文鐵 ( 金夷 자는 鐵(철)자의 옛글자다. 鐵(철)은 원래 金夷 자였다.) -『설문해자(說文解字) 』 중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책으로 손꼽힌다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나 『한서(漢書)』, 『설문해자(說文解字) 』 등이 모두 말하기를 쇠 철(鐵)자는 원래 夷 , 金夷 자 였다고 쓰고 있는 것. (金夷 자는 요새는 쓰이지 않는 글자.) 게다가 銀(은) 역시 간(艮)의 금속(金)이라는 뜻인데 간(艮)은 동북(東北)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중국의 동북방은 한민족(동이족(東夷族)이 있는 곳. ( 간방(艮方) - 동북방) 銀(은) 역시 [동이족(東夷族)의 금속]임을 나타낸다 하겠다. 게다가 동(銅)을 [구리]라 하는데 예로부터 한민족을 구이(九夷) 혹은 구리(九黎)라 하였다. 그래서 사마천도 『사기(史記)』에 [黎東夷國(리동이국)]이라는 이름으로 한민족에 대해서 설명하였고 " 구리(九黎 = 구이(九夷))의 임금은 치우(蚩尤)이다." 고 하였던 것. 그러므로 [구리(청동)]역시 한민족(동이족(東夷族)이 처음 만들었다 하여 [구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보이고 『사기(史記)』에 나오듯이 4천7백여년전의 중국인들이 금속투구를 쓴 치우임금을 보고 동두철액(銅頭鐵額) 즉 '청동 머리에 쇠 이마를 한 괴물'이라며 놀란 것을 보아도 원래 한민족(동이족(東夷族))의 금속문명은 그 수준이 중국보다 훨씬 더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는 참고글 -------------------------------------------------------- 고조선과 漢나라의 금속기술 [조선일보 - 2006.06.29 ] 한국사 연구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중국보다 문명 수준이 낮았다”는 고정관념이다. 사대주의적 유학자들과 일제(日帝)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이 신화는 아직도 살아있다. 청동기는 구리·주석·아연의 합금인데, 중국 것은 주석 성분이 많은 반면 고조선 것은 아연 성분이 많다. 과학자들은 아연·청동 합금을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청동은 섭씨 1000도까지 가열해야 용융(鎔融)이 되면서 주물로 이용되지만 아연은 섭씨 900도 정도에서 끓으면서 날아가기 때문이다. 서로 비등점이 다른 아연·청동 합금은 고도의 합금(合金)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고조선보다 훨씬 뒤인 한(漢)나라 때에나 나타났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잔무늬거울)은 청동 주조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 - 고조선(기원전 4세기)] 20cm가 안 되는 원내에 깊이 0.7mm, 폭 0.22mm로 구성된 1만 3300개의 원과 직선이 새겨져 있는데, 선의 굵기는 머리카락 같다. 현대의 컴퓨터 기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한 이런 청동거울을 기원전 4세기경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여전히 수수께끼다. 제철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철은 탄소 함유량에 따라 연철·선철·강철로 구분한다. 탄소가 많은 선철이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것은 서기 14세기경 이후이고, 선철에서 강철을 얻는 제련 방법도 대략 이때부터 사용된다. 그 전에 사용했던 강철은 연철을 단조하여 얻은 것이다. 그런데 고조선 사람들은 기원전 수백 년 전에 연철과 선철을 제련하고 강철도 제련하여 사용했다. 이는 철에 대한 지식과 가공 기술이 매우 높았음을 말해 준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동이족(東夷族)의 수령인 치우(蚩尤) 집단이 “머리는 동(銅:구리)이고 이마는 철(鐵:쇠)”인 동두철액(銅頭鐵額)이라고 전하는데, 이는 이미 금속문명기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사기(史記)’에서 동이족이 화하족(華夏族)보다 빨리 금속문명을 사용했다고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중국보다 문명이 낮았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TV 드라마 주몽이 한사군(漢四郡)의 제철 기술을 우리 민족의 그것보다 월등한 것으로 그려서 논란이다. 역사적·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덕일·역사평론가 [email protected] BGM S.E.N.S. - Like Wind(바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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