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때 동네에서 아는 형 한사람을 동네 껄렁패 20여명이서 집단 폭행을 가하던 장면이 그것이다.
한 사람을 두고 몇명도 아니고 무려 20명 정도나 되는 인간들이 그것도 손에 짱돌하나씩 들고 폭행을 가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 비겁함에 치를 떨었었다.
이게 양아치들의 행동방식이다.
양아치는 일대 일로 불리하다 싶으면 머릿수로 덤빈다. 그들은 그게 비겁한 건지 모른다, 그리고 그게 비겁한 것이라고 해도 그걸 부끄러워 할줄 모른다, 그게 양아치의 본령이다.
운전을 처음 배웠던 시절, 친구로 부터 맨 처음 주의 사항으로 들었던 말은 택시뒤에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택시는 시도 때도 없이 급정거하기 때문에 그들 뒤에선 추돌하기 쉽고 더욱 문제는 이들은 조금이라도 받히면 그대로 병원에 가서 드러누워 버리기 때문에 사소한 충돌로도 개값 치를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린 잘 안다, 사소한 추돌로 병원가서 드러눕고 일당및 병원비 그리고 합의금을 추돌차량운전자와 그 보험회사로 부터 타 내고는 병원에서 술 마시며 논다는 양아치 교통사고 환자들 이야기를...
우리가 양아치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렇듯 직업과 외양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근성으로 판별된다.
양아치의 대표적 특성은 이렇듯 상대방 약점 물고 늘어지기, 그리고 떼로 덤비기다.
지금 이건과 그 신문사가 한 짓거리가 이와 똑 같다.
자기 멋대로 사진 찍다가 제지를 당하고 그 와중에 카메라까지 부서지자 폭행당했다고 병원에 누워버리는 저 행동, 그리고 그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라고 하는 곳에서 자신들의 매체를 대동해서 그것도 모잘라 사회 각계의 언론인들을 부추키고 그네들의 말을 변조하다시피 해서 김병현을 폭행범으로 몰고간 짓거리 말이다.
이게 과연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과 그 언론사에서 할 행동이 맞는지 아니면 양아치와 그 소굴에서나 할 행동인지 지나가는 개도 분간을 해내지 싶다.
한 번 따져보자.
기자는 함부로 아무나 아무때건 취재해도 되나? 아니다.
그럼 그런 부당한 취재를 당할때 당하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야 하나? 아니다.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피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그래서 찍지 말라는 카메라를 계속 찍다가 카메라를 파손당하면 그게 정녕 누구의 탓인가? 카메라 주인탓이다.
그리고 그러다가 몸싸움이 벌어진 것을 가지고 폭행을 당했다며 병원에 누우면 그게 뭔가? 바로 양아치다.
그리고 그런 부당한 행동을 먼저 해서 사건의 발단을 만든 자신들의 직원탓은 하지 않고 무고한 개인을 폭행범으로 몰고가 보도한 측은 또 과연 어떤 집단인가? 물론 양아치 집단이다.
언론에 타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호불호에 달린 문제이다.
그건 스타, 특히 스포츠 스타의 경우엔 의무 사항이 아니다. 스포츠스타는 경기장에서의 모습으로 팬들의 환호를 사고 인기를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스포츠스타 치고 스포츠기량은 형편없는데 인간성이 좋고 사생활이 깨끗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기사로 읽어본 적도 없다.
스포츠 스타는 다른 대중연예스타와는 달리 스포츠경기에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는 순간에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온다, 스포츠지 기사에 그 선수의 개인 사생활이 아무리 건전 깔끔하게 나오고 그 선수의 인격에 찬탄해 마지않는 글이 나오더라도 말짱 도루묵이다.
그리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선수자신이 언론에 비치기 싫다면 그건 본인의 자유다. 그런 자유를 존중해주어야 할 의무가 기자들과 언론사에는 있다, 아니 전 국민이 서로 서로 그런 의무를 진다,
바로 헌법에 보장된 사생활의 보장을 통한 인간 존엄성의 구현 때문이다.
김병현은 언론과 말하기 싫댄다.
그 이유는 원래 언론에 대고 말하는 걸 즐기는 편이 못되는 데다, 나중에는 사석에서 한 말은 물론이고 인터뷰한 내용마저 자기들끼리 함부로 만들어서 보도하는 것에 질렸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그들이 점점 더 그를 가까이 올수 없도록 밀어냈던 것이다.
스포츠지에 실릴 스포츠스타의 풍성한 얘깃거리가 많아야 스포츠를 만드는 언론사들이 먹고살게 되며, 덩달아 그 속에 소속된 기자들의 밥그릇도 확보되는 법이다.
그런데 스포츠스타 깍아내리기 경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한국의 스포츠 신문들의 보도 태도를 보노라면 참으로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정녕 자신의 밥그릇을 들고 찰 정도로 그리 돌머리들만 모여있는 것일까?
김병현이 손가락을 추켜세웠을때만 해도 나는 어느 신문에서 조차 그가 그런 행위를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 것을 보지 못했고, 그의 행위에 대해 진정으로 안타까와하고 걱정해주고 배려해주는 마음으로 보도된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본것은 거의 모두 '거 봐라, 재 성질 머리 하난 유명하다니깐...' 식이었다.
사실이 이런대도 한국의 기자건 특파원들이고를 떠나서 그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픈 마음이 든다면 그건 완전한 성인군자이거나 아니면 완벽한 또라이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김병현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그게 이해심이 넓어서 그런 것이 아닌줄은 누구든지 잘 알수 있을 일이다,
내가 기자였다면, 난 혼자서라도 그를 아끼고 위해주는 방향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럼 그걸 김병현이 볼 거고, 그것을 공감해준다면 다른 사람은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그가 해줄수 있는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늘 김병현 특종을 독점하게 되니 내가 소속된 신문사의 신문은 다른 신문보다 잘 팔릴 것이고 따라서 회사에선 나에게 우대를 해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왜일까?
우선은, 그들은 자기들의 직업에 대한 되먹지 못한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병현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인기가 많아도 그저 한 명의 운동선수에 불과하다, 그들의 잣대로는 김병현의 정신적 사회서열은 그들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 정신적으론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퀘퀘먹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김병현에게 취재에 응해달라고 사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서서 김병현에게, 아니 꼭 김병현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취재 받으러 오라고 손가락질만 까딱까딱 하면 된다, 왜냐, 김병현은 그저 운동선수에 불과할 뿐이니까, 나이도 그들보다 어리고 아는 것도 그들보다 많지 않은 아랫것에 불과한 그런 대상이니까...
그래서 오지 않으면?
그땐 그냥 자기들 쓰고 싶은 대로 쓴다, 정확하게는 조금이라도 선수의 이미지에 먹칠할 개연성이 높도록 쓴다, 물론 이런 선수에 대한 불만과 괘씸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네들 스스로의 체통은 지켜야 겠기에...
다만 글로 밥을 먹는 족속들이라, 그 글쓰기는 여간 교활한게 아니다, 정말 심각한 인식으로 자세히 쳐다보지 않으면 그게 선수를 씹는 소린지 걱정하는 소린지 분간이 쉽게 가지 않을 정도로 쓸 재주들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무기를 가지고 보이지 않게 선수들을 협박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 다음날 삐딱하게 다룬 기사를 가지고 '봤지?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이리 되는 거여...' 라고 말이다.
이게 보통의 선수들 한텐 다 통했다, 그들은 신문지상에 그들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좋게 나오는 것이 그들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근데, 김병현 한텐 통하지 않았다, 그는 유달리 언론에 접촉하는 것을 싫어한데다, 그들에게 나긋나긋하고 공손하게 대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을 향해 필봉을 휘두르는 것을 보곤 절대 타협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자존심 무지강한 청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강력한 찌라시 필봉을 갖춘 아자씨들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네들은 여전히 김병현 주변에서 맴돌며 손가락만 까딱 거렸다, 그래도 김병현이 다가오지 않자, 그네들 특유의 장기를 발휘해서 삐딱한 기사들로 지면을 채웠고, 특히나 현지 언론사들이 쓰는 기사를 한 두줄 번역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맛도록 변조해서 기사를 송고하는 뻔뻔함까지 계속해서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김병현은 몸으로 때우는 하찮은 운동선수고 기자라는 신분은 머리와 붓만 쓰는 고매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취재원이 협조를 거부해도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취재원에 대고 사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찌 붓을 든 양반이 몸을 쓰는 상놈한테 고개를 숙일 것인가, 그것도 손 아랫것에다가? 에~헴~
그래서 그들은 이런 미운털이 박힌 그에게 틈만 나면 보복을 할 기회를 찾게 되고 심지어 한 기자는 자신이 직접 보지도 못했고 다른 현지 언론인들도 보지 못한 것을 가지고 그쪽 언론에 특종이라도 되는 양 제공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 그래서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취재원들을 점점더 그들에게서 도망을 가려 하고 사람들은 인터넷을 발달로 그들이 한 다리 걸쳐서 현지 언론에 난 글을 번역해서, 그것도 엉터리 번역내지는 왜곡된 번역을 일삼고 있는 것을 훤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점점 더 좁아지기만 하는 그네들의 입지뿐이다....
그걸 정녕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네들의 아이큐가 의심스럽고, 그 많은 찌라시 기자중엔 김병현 구워삶을 재주내지는 노력을 기울인 인간이 하나도 없는가 하는 점이 정말 한심스럽다.
나는 기자라는 직업을 생각할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전에 TV에서 본 것이다.
일요스페셜에서 본 것이었는지 정확히 프로그램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간 전쟁터만 찾아다니면서 전쟁의 참상과 비극의 현장을 취재하는 종군기자들 이야기를 TV에서 해준 적이 있다.
원래 방송국이나 신문사등에서의 종군기자는 돌아가면서 하면 되는데도, 보통은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왜냐면, 그건 목숨을 거는 일이라 정말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뭉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아무나 할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위험한 일도 누군가는 해야만 하고 그렇다면 그게 자신이 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응당 그런 일을 계속 하게된다고 했다.
거기서 언급된 어떤 기자는 그리 전쟁터만 찾아다니는 생활을 하다보니 개인적 삶을 돌볼틈이 없어 들풀처럼 혼자 사는 삶을 살다가, 전장에서도 꽃이 핀다고 우연히 같은 전장터에서 만난 종군여기자와 결혼을 해서 직업적 소명과 인생의 재미를 둘 다 엮어냈지만, 그는 부인과 어린 딸을 남긴채 전쟁터에서 비극적인 종말을 맞고 만다.
그런데 또한 종군기자였던 그 부인조차, 홀로 남겨질 지도 모르는 딸을 걱정하면서도 총탄이 튀는 전장을 누비고 다니면서 남편처럼 전쟁터에서 죽게 될 지라도 그 일은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그네들의 피는 아마 검으리라 했다, 자신의 생명의 불꽃을 살라 매체의 검은 글씨로 남으려면 그 피조차 검을 수 밖에 없으리라 했다.
종군기자,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사실과 현장을 보도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네 찌라시 기자양반들, 그대들은 도대체 무엇을 걸고 현장에 서는가?
혹시 지금은 밀고 다니는 그 잘난 턱쪼가리 수염과 머리위에 갓대신 얹은 모자를 걸고 그러는 것은 아닌가? 아님 상대적 약자를 위협하는 양아치 근성을 건 것은 아닌가...
목숨까지 걸고 취재하진 못할 망정 사실보도를 할 자세와 마음이 갖추어지 지지 못한 그대들, 그대들의 직업이 기자라고 생각해 주기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종군기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그러질 못하겠다.
'기자'는 말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이니 그대들 한텐 맞지 않고 그대들은 '이야기를 고안(考案)해내는 사람들' 이니 앞으론 '고자(考者)' 라고나 불리워야 할 일이다...,
칭호가 발음상 조금 마음에 안들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 자업 자득이라고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