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는 방법 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은 '반론'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증명은 사실 인간에 의해 이루어 지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종교인들이 '자신'을 통해서 신을 전파한다는 것을 신을 증명한다는 행위인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 자신이 분명히 신을 이해한다고 말을 한다 할지언정 그들이 말하는 논제거리들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이를 자신들의 부족으로 볼지, 아니면 신의 부재로 볼지는 종교인들의 선택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믿음을 흔드는데는 충분하다고 본다.
믿음뿐인 종교는 상상뿐인 애인만큼이나 덧없는 아집에 불과하므로 논할 필요가 없다.(....)
그들 스스로 신의 존재 증명을 못하는걸 인정하는 꼴일테니.
주로 언급하는 것은 신의 도덕성과 신의 존재 가능성을 들먹인다.
신의 도덕성은 신이 인간의 도덕보다 더 양질의. 더 우수한 도덕성을 가진다는 것이 논지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상정하는 가장 최상의 도덕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인간'이라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의 신은 인간의 존재를 가치있는 것으로 두거나 하지는 않는다.
일부분을 들먹이며 '생육 번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치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와중에 단지 '다르다'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인간을 학살하는 장면.
그리고, 도와줄 수 있음에도 묵과하는 장면들이 성경 곳곳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신의 '인간에 대한 애정'은 취사선택에 달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취사선택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국한되어 있다.
기존의 보편적으로 인간이라는 생명을 존중하는 것보다 더 좁은 범위를 선택하기 때문에 신이 인간보다 도덕적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신의 존재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할때는 주로 자연계가 완벽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애석하게도 자연은 완벽하지 않다.
'리처드 도킨스'가 눈먼시계공을 통해서도 언급하고, 동물의 생태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연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종교인들의 말하는 '우연'에 의존되는 경우가 많다.
생물이 정말 완벽한 존재로써 시작된 것이라면 적어도 자연에 대한 내성을 충분히 기를 만큼의 능력을 지녀야 하지만, 그런 것이 당연히 가능할 리가 없다. 진화학이 창조설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은 생물들이 되려 완벽하지 않고, '적자생존'에 의해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하게 되겠지만 결론은 '완벽'이라는 것은 신조차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다면 그건 신이 아닐 것이다. 유니콘과 같은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