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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자존심을 굽히는것도 좋은것
게시물ID : soda_15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테이킷보이
추천 : 16
조회수 : 4316회
댓글수 : 71개
등록시간 : 2015/10/01 04:25:53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제 친구(이하 A)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A는 굉장히 자존심이 높고 남의 행동때문에 자기가 피해 보는걸 도저히 용납안하는 그런 애였어요. 예전에 워터파크로 가자고 친구들끼리 약속했는데 1시간 30분이나 늦게 온 애가 좀 늦은거 가지고 섭섭하게 그러지 말자고 하니까 대뜸 주먹을 날리면서 "너 때문에 1시간 30분동안 찐따처럼 기다린 우리들은 그럼 폼이냐 이 새꺄!"라고 소리쳤던 적도 있었죠.

아무튼 몇년전 걔 생일이였을때 우린 다같이 A집에 모여서 파티를 하자고 했었죠. 선물 담당, 음료수 담당, 먹거리 담당 이런식으로 쭉 나눠서 하나둘씩 A집에 모였는데 케이크 가져오겠다고 했던 애(이하 B)가 1시간이 지나도록 안오는거에요.

B는 성격이 정말 착하고 순한 애였어요. 오죽했으면 A가 "기집애처럼 책만 보지말고 나가서 같이 놀고 그러자" 이래도 "ㅎㅎ 난 이게 더 좋은걸 ㅎㅎ"이러는 애라서 A가 "어우 답답해! 어우 답답행!"이랬던 기억이 있어요.

하튼 B가 안오니까 A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핸드폰도 안받았죠. 이러니까 A가 열받아서 "오면 내가 가만안둘꺼다. 말리지마 나 진심으로 화났다"이러면서 씩씩대고 있었는데 마침내 B가 도착했어요. 근데 걔가 목발을 짚고 들어오면서 미안하다고 A한테 연신 사과를 하는거였어요.

알고보니까 B가 케이크 가지고 오다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를 다쳤고 그래서 집에 있던 목발을 들고(걔네 동생이 그때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서 목발 짚고 다녔던걸로 기억해요. 마침 그때 동생이 자고 있어서 목발을 빌렸다고...) 박살난 케이크를 하나 더 사서 오느라 늦었던거에요. 핸드폰은 집에 두고 있어서 못받았던거구요.

당연히 우린 "야 이 등신아 뭐 그렇게 무리해 그냥 '나 오다가 다리 다쳐서 못가겠다 미안'이러고 케이크 배달시키든가 하지"이랬는데 B가 하는말이

"A가 기다리고 있는데 꼭 가야하잖아. 케이크야 또 사면 되지만 A 생일파티는 1년에 한번뿐이잖아. 오늘이 아니면 안되는거잖아."

이러니까 A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걔한테 "니가 그 꼴이 된줄도 모르고 나혼자서 헛소리 하고 있었으니 어서 날 때려."라고 하는거에요. B가 당황해서 그러지말라고 하니까 A가 "니가 안때리면 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꺼야. 그러니까 어서 때려줘."이러면서 엄청 굳은 목소리로 말하는거에요. A가 고집은 또 드럽게 쎄서 이러면 누구도 못말리거든요.

결국 B가 그냥 딱밤한데 살짝 때리는선에서 끝났고 생일 파티를 즐겼답니다. 그 이후로 A가 B를 보는 시선이 좀 달라진건 보너스구요.
나중에 세월이 좀 지나서 새삼 느끼는건데 다친 몸으로 끝까지 찾아온 B도 대단하고 자존심 굽히고 무릎꿇어서 사과한 A도 대단한거 같아요. 여러분들이 느끼는 그런 사이다는 아니겠지만 제가 이때 나름 A가 무릎꿇는거 보고 '저 자존심 쩔어주는 놈이 무릎을 꿇다니! 대단하다 B야!'이랬던 기억이 나서 써봤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좀 독선적인 면이 있던 A가 내심 싫었었거든요.



그랬던 친구들을 지금은 만날 수 없어서 너무 아쉽네요 허허... 다들 먼 곳에서도 잘 지내고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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