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는 보건지소에는 그다지 환자가 많지 않습니다. 워낙 작은 마을인데다 근처에 다른 병원들도 있거든요. 하지만 환자수는 많지 않아도 어르신들이 주로 같은 버스를 타고 오시기 때문에(사실 버스도 하루에 몇대 안다닙니다 ^^;;;) 환자분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연세드신 분들, 특히 할머님들의 특성(?) 상 버스 한대에서 우르르 할머님들이 내리시면 지소안은 곧 많이 소란스러워지죠. 이른바 시장바닥이 됩니다.
그날도 버스가 지난간 뒤 할머님 부대의 침공(?)이 시작되었죠. 장날이 겹친지라 그날은 유독 더 소란스러웠습니다. 순서대로 환자분들을 진료하고 있는데.. 밖에서 조그만 다툼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진료실 안에서 얼핏 들으니 할머님 한분이 새치기를 했다고 말싸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님들의 다툼 소리 들으면 죄송한 말이지만...재미있습니다. 구수한 시골욕도 많이 나오고요. 왠지 정겹습니다. 하지만..그냥 둘수도 없는 일. 잠깐 진료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습니다.
"할머님들 진정들 하세요. 제가 얼른 봐드릴께요"라고 말하며 문을 여는 순간.. 할머님 한분이 다른 할머님(이분 만으로 78세셨습니다)께 결정타를 날리시더군요. " 이 새파랗게 어린 X이 어디서!!! 요즘 어린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니까"
잠깐의 황당함.... 78세... 새파랗게 어린~ 어린~ 어린~ 머리 속에서 메아리가 되더군요 고개를 돌려 욕하신 분을 보았습니다. 네...그렇군요 근처 부락에 사시던 96세 할머님이셨습니다. 순간 전 왜그렇게 그 상황이 웃긴 것지.... 소리내어 크게 웃어버렸습니다. ...제가 웃는 바람에 시선이 제게 쏠려 상황은 종료가 되어 버렸지요. 순간 뻘쭘.
제가 있는 곳엔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많으세요. 90세가 넘는 분들도 자주 뵐수 있죠. 100세가 넘으셔서도 밭일을 거드는 분들도 계십니다. ...대신 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청년회 회장하시는 분이 60대시고요. 다른 지소가 있는 주변 마을들도 상황은 비슷한 것 같아요.
곧 설날이 오네요. 다들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 찾아오시겠죠. 하지만 명절 말고라도 평상시에도 안부 연락 좀 자주 하세요. 여기 시골 어르신들...편찮으신 곳이 참 많아요. 때론 큰병이 걱정되어 서둘러 큰 병원 가시도록 할려고 자녀분들 연락처 달라고 해도 자녀들이 걱정하신다고 좀처럼 연락처들을 주지 않으세요. 당신들께선 이곳저곳 아프시면서도 자녀분들 아시면 속상해하실까봐 끙끙 앓으면서도 고집들을 피우세요. 큰일난다고 목소리 높혀(죄송하지만 어쩔수 없어요) 겁을 드려도 이분들 고집을 꺽기가 쉽지 않아요. 가끔씩 속이 상합니다. 약값도 없으시고 난방비도 없어 냉방에서 지내시는 분들도 자녀들이 있어 영세민에도 못들어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몇년째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들 떄문에 아주 작은 혜택들조차 못받으세요. 백내장으로 눈이 전혀 안보이시는 84세 할머님도 쓰러져가는 집에서 혼자 사시는데 자녀분들이 서울에서 큰 부자라고 하시더군요. 버스비가 없다고 진료실까지 한시간 반씩, 도합 3시간을 걸어왔다 걸어가시는 할아버님 한분도 아들만 다섯이라고 하시더군요. ...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아요. 본인 편하시다고 자녀랑 같이 안사시는 분들도 계시지만...실은 짐이 될까봐 그러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실거에요. 얼마나 외로워들 하시는데요. 제가 방문진료날이나 개인적으로 군것질거리 가지고 찾아뵙고 손 한번 잡아드리는 걸로도 기뻐서 우실만큼 외로워들하세요. 그래도 그분들은 본인들보다 자식들 걱정에 눈물지십니다.
어쩌다 한번 온 자녀분들 전화에도 그분들 정말 기뻐하시고 자랑하십니다. 자기 자녀분들 효자라고... 손자 손녀 목소리 들으시고는 너무 똑똑하다고... 며칠씩 기뻐하십니다.
지금 전화하세요. 안부 여쭈어 보시고 손자손녀 목소리 한번 더 들려 드리세요. 그게 그분들께는 정말 큰 힘이고 위로입니다.
이런....유머글을 쓸려고 했던 건데...웃기지도 못하고 이상한 글이 되어 버렸네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