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제일 무력감을 느낄 때는 라면을 끓이다가 계란껍질이 들어갈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뻔히 라면안으로 들어가는 계란껍질을 똑똑히 보지만
부글부글 끓고있는 뜨거운 라면국물안으로 부지불식간에 사라져버리죠.
젓가락질로 꺼내고 싶지만 보이지도 않고, 설령 보인다고 해도 그 작은 조각을 집어내는것은 힘듭니다.
무공을 익히지 않는이상 손으로 꺼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요.
하지만 경험적으로 알고있습니다.
방금전에 국물속으로 들어간 저 계란껍질을
쫄깃한 면발을 씹을 때 와그작
얼큰한 국물을 들이킬 때 와그작
고소한 계란을 베어물 때 와그작
하고 씹어버릴 것이란 것을.
치밀어오르는 무력감.
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쫄깃한 면발을 지키기 위해서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끓이는 시간을 맞출 뿐이죠.
계란껍질 특유의 버석거리는 감촉이 입안 가득 퍼질 때 우리의 표정은 도축당하는 닭과도 같지만
이 악마의 조각은 입 안의 라면때문에 뱉어버리기도 애매합니다.
하지만 삼킨다면 칼슘을 섭취하는 가장 불쾌한 방법이 되겠죠.
뱉느냐, 삼키느냐. 예고된 잔인한 악마의 농간.
에덴동산에서 사악한 뱀은 이브에게 계란껍질을 뱉으라고 했고
결국 라면과 계란껍질을 함께 뱉은 이브는 음식 아까운줄 모른다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나고 맙니다.
아아! 신이시여! 어찌하여 인간에게 1ml단위로 물을 조절할 수 있고 1초단위로 시간을 맞출 수 있는 는 초감각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끓는 물 속으로 들어가버린 계란껍질을 건져내거나 혹은 입안에서 계란껍질을 골라서 뱉어낼 수 있는 능력은 주지 않으신겁니까!
인류와 계란껍질의 싸움이 계속 되는 이상
인류에게 진화의 여지는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