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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버지는 굉장한 분이십니다.
게시물ID : gomin_1588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이니아
추천 : 1
조회수 : 84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1/05/29 00:23:17
글이 두서없을 것 같지만 복잡한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저희 아버지는 굉장한 분이십니다.

소위 말하는 막노동꾼 할아버지에 맏이로 나셔서 그야말로 공부만 하시고

1,2등을 놓치지 않으시며 소위말하는 앨리트 그룹의 의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쉬지않고 노력하셨고 행운이 따라 주셔서 긴 노력끝에 개인 병원을 성공적으로 개업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고 50이 넘으신 지금도 영어 공부를

간간히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지금도 서울에 배우러 가시는 분이십니다.

가족을 많이 사랑하셨고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스스로의 취미생활 시간도 가지지 못할정도로 힘들게 앞만 보고 달려오셨고

유일하게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가족의 맏이로서 힘든일이 있으면 언제나 아버지를 찾았고

돈이 필요하다 하면 가능한한 도우며 사셨습니다.

그때문에 거의 20년 가까이 세월을 휴가 한번 제대로 즐기시지 못하셨고 취미생활이라는 것이

일을 마치시고 하루 30분 바둑. 케이블 tv 영화. 그리고 사놓고 잘 치시지도 않는 기타.

정말 고생하셨고 힘드신 여정을 달려오신 분이고 그렇기에 저는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뜬금없지만 제 취미생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전 만화책을 근근히 사서 모으고 애니메이션을 보는게 취미인 22살 대학생입니다.

네. 소위 인터넷에서 오타쿠라 불리는 족속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국립대에 들어갔고

학업을 소홀히 해본 적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항상 1등을 달리지는 못했습니다. 반에서 4,5등 정도하는

그냥 공부를 그럭저럭 하는데 공부 말고는 재주가 없는 애매한 학생이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제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 1등을 못한다고 하십니다.

틀린말은 아닐겁니다. 아버지는 평생 공부만을 하시며 이렇다할 취미생활도 없으셨던 분이셨고

공부 외의 학생이 즐기는 생활을 이해하기 힘드실 테니까요.

어머니도 어머니 세대에서는 드물게도 대학원까지 마치신 분이셨습니다.

당연히 저의 만화책 취미가 못마땅하셨겠죠.

어머니는 항상 제가 만화책을 사면 크게 혼내셨고 그래서 몇권 모으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어머니께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살림살이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한 시기쯤이었을겁니다.

이때부터 저는 제 취미생활에 더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어머니께서 돌아가신걸 핑계삼아 학업을 소홀하기 시작했고 취미생활에

심취하였습니다. 그나마 고3때 정신을 차려 국립대를 들어갈 성적을 아슬아슬하게 만들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눈에는 그마저 만족스럽지 않으셨을겁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들이 철없는 마음에 아직 만화책을 졸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겠지요.

아버지는 저를 많이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깊게 느꼈습니다.

내 인생이 내가 원하는대로 흘러가길 빌어주시고 그걸 위한 지원이라면 아끼지 않으실 분입니다.

어머니께서 안계시는 만큼 아버지께서는 그만큼의 사랑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저의 취미생활은 인생에서 버려야할 물건이라고 하십니다.

딱잘라 하찮은 물건이라 하셨습니다.

솔직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취미생활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시는지.

억지로 모른척 하면서 이때까지 버텨왔습니다.

만화책 사는 돈은 최대한 알바비로 충당하려고 노력했고 학업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과제를 소홀히 하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제가 1등이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부모님의 사랑이 보기에는 제 취미생활은 내 인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버려야할 취미로 보이시나봅니다.


저의 세대는 인생의 모든걸 스펙에 바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끔찍한 경쟁세대입니다.

아버지도 그걸 아시고 저도 압니다.

그렇기에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이 만화책같은걸 보고 모으는 꼴이 

한심해 보이셨겠죠.

하지만 저는 솔직히 모든걸 이해하고도 제 취미생활을 포기하기가 힘이 듭니다.

유치하고 철이 없는 멍청이라 비난받아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인생에 있어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못해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인가 봅니다.


이런 글을 쓰는것이 처음인지라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 쓸데없는 푸념을 들어주신 분이 계신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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