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펌][초장편]악마의 피 Ch.1(도착) - 3
게시물ID : panic_144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4
조회수 : 8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4/25 10:40:37
ch.1 -도 착- no.3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걸어가며 노파는 희경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희경의 언니인 
진경의 마을에서의 평판이라던가 평소 생활 같은 소소한 일들에서부터 앞서 보았던 기괴한 모습 
의 공장이 들어서게 된 이야기까지 노파는 자신이 아는대로 희경에게 주저리 주저리 알려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희경은 그 공장이 완공되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 이제 두달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던가 마을 토박이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고 공장 직원들은 대부분 
근처 도시에서 통근하거나 공장내의 기숙사 건물에서 생활한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수 있었다. 
물론 진경이 시간만 나면 마을 어귀나 근처 산길을 돌아다니며 산책하는 것을 즐기고 종종 마을 
대소사에 참여하여 일손을 거드는 것 또한 잊지 않는 덕분에 평판이 좋다는 것도 알았다. 마을의 
몇 안되는 노총각 들에게 그녀는 한동안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였으나 산 바로 밑에 
위치한 조금은 스산한 느낌까지 드는 집에 여자 혼자서 생활한다는 사실과 종종 멍하니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듯 아무말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요근래에 들어서는 점차 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조금은 괴팍한 도시 여자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노파를 통해 
희경이 얻게된 언니에 관한 사실이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큰길이라 부를 수 있던 주도로에서 벗어나 논밭 주변을 따라 좁다랗게 난 길로 
들어서서 얼마간 걷자 드디어 노파의 목소리 뿐이였던 정적을 깨고 마을 주민 몇몇을 볼 수 있 
었다. 그것이 밭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있던 아낙이던 하릴없이 서성이고 있던 마을 노인이던 
간에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서서 노파는 희경의 소개를 해대는 통에 언니 진경의 집으로 가는 
길은 예상보다 꾀나 늦어졌으나 그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경험이였고 희경 자신도 그런 시골방식 
의 삶 속에 들어가 서있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좁은 길가 수풀속에 자전거를 뉘여 놓은 채 
동축에서 빠져나온 체인을 다시 끼워 넣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박노인과 이야기를 하게 된것 
역시 노파가 희경을 그에게 소개시킨 데서 부터였다. 

"그랬구먼, 진경이 처녀 동생이라... 이쁘게 생겼네" 

노인은 인심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체인에서 묻어난 기름으로 새까매진 손으로 이마에 흐르 
는 땀을 닦아냈다. 어떻게 한것인지 몰라도 그런 손으로 닦았음에도 용케 노인의 얼굴에는 기름 
때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 가실려구 자전거는 끌고 나오셨어요?" 

노파는 또다시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듯 먼저 박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있잖아, 거 뭐냐... 동천이네 셋째... 길복이. 그녀석하고 몇몇 친구놈들이 어젯 밤에 놀러 
나가서는 영 소식이 없다지 뭐야, 그 집도 그러려니 하다가 아침까지 연락이 없으니까 마을 사람 
모아서 지금 찾아보고 있는 중이여." 

박노인의 설명에 노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구먼.. 나는 장에 다녀오느라 까맣게 몰랐네, 근데 길복이 녀석들이면 지난번에도 말도 
없이 서울에 놀러 갔다가 3일만에 돌아온 놈들 아녀?" 

"그렇지.. 그래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치는 않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맴으로 한번 
마을 한바퀴 돌아보고 있는거지, 근데 이놈이.." 

박노인은 조금 신경질이 났는지 발로 슬쩍 쓰러져 있는 자전거를 발로 찼다. 

"갑자기 말썽이네 그려..." 

"에구.. 내가 뭘 알면 도와줄터인데... 욕좀 봐요." 

"그래요, 어.. 거기 뭐냐.. 진경이 동생, 아가씨도 잘 왔어... 즐겁게 놀다가 가요.." 

"예 감사합니다." 

희경은 다시 자전거를 고쳐보려고 주저 앉는 노인에게 살며시 인사를 하며 노파와 함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연락이 안되는 건가요?" 

"애들은 무슨.. 이제 고등학생이니 철도 들었을 나인데.. 원 워낙 말썽들이 심혀서..." 

"그렇군요..." 

희경은 딱히 더 할 이야기가 없자 다시 노파쪽에서 말문을 열기 전까진 가만히 있기로 생각하고 
주변 풍경을 익혀두는 쪽으로 신경을 쏟았다. 한동안 그렇게 걷고 있자니 저쪽에서 두 사람이 
조금 잰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엔 노파보다 상대방 쪽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려 총각들도 안녕들 하신가?" 

"하하, 지난번에 말씀 드렸잖아요 저 총각 아니라고." 

노파의 인사에 두 남자중 조금 나이들어 보이는 쪽이 웃으며 답했다. 그 사이 희경은 두사람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만났던 마을 사람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옷차림이였다. 두 사람 
모두 황색조의 얇아 보이는 잠바를 입고 있었고 그 안에는 와이셔츠 차림이에 넥타이까지 멘 
정장 차림이였다. 물론 바지 역시 상당히 활동성을 감안한 디자인이긴 하지만 정장바지 였고 
신발은 나이들어 보이는 쪽은 구두였고 상대적으로 조금 젊어 보이는 쪽은 등산화에 가까운 단화 
였다. 다른 무엇보다 황색 잠바 오른편 가슴 어귀에 대롱 대롱 달려있는 플라스틱 명찰이 그들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신왕 바이오 케미컬' 

도저히 뭐 하는 회산지 종잡을수 없는 애매한 영어 이름이였지만 하여간 그들이 예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왠일로 마을엔 왔어? 요샌 통 안보이더니..." 

"아.. 뭣좀 알아볼 일이 있어서요" 

나이들어 보이는 남자쪽이 얼른 대답하기는 했으나 약간의 텀을 두었던 데다가 조금 더듬으며 
얼버무리듯이 대답했다. 뭔가 숨기려 하거나 별로 정확하게 대답을 하기 곤란한 일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희경은 무시하고 넘겼다. 이런 시골까지 와서 복잡한 고민에 빠져 
있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쪽 아가씨는 첨 뵙는 분이시네요? 할머닌 손녀신가?" 

"하이구, 나한테 이런 큰 손녀가 있을려구.. 딸이면 모를까, 저기 산밑에 사는 진경이 아가씨 
동생 되는 사람이래요." 

노파의 소개에 희경은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흰 저기 공장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역시 의례적이고 특별할것 없는 인사로 응대했다. 그리곤 젊은 사람 쪽이 슬며시 다른쪽 
남자에게 눈길을 주며 재촉을 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저희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요, 가봐야 겠네요" 

"그래, 바쁜 사람 괜히 붙잡고 있었네 어서들 가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는 두사람은 다시 아까 올때보다 더 급한 걸음으로 길을따라 멀어져갔다. 

"얘기 들었지 저기 공장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가끔씩 마을에 와서 일도 도와주고 얘기도 하고 
그래요.." 

노파는 멀어져가는 두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경에게 말했다. 그러나 희경은 그런 노파의 
설명보다는 급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두사람의 모습에 더 신경이 쓰였다. 아까의 무언가 
감추려는 듯한 태도나 성급히 서둘러 가는 길을 재촉하는 모습에서 뭔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 별일 아닌걸 가지구.. 아마도 근무시간에 마을에서 놀다가 상사에게 들켜서 
급히 돌아가려는 걸텐데 말이야...' 

희경은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조금씩 느껴지던 알수없는 위화감과 불안을 그 두사람을 만나면서 
다시 느끼자 스스로 그런 상황을 설명하며 애써 별것 아닌 일로 몰아부쳤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새삼스러이 우습게 느껴졌는지 혼자서 쓴웃음을 소리없이 지어보였다. 

"자 가요 아가씨, 조금만 더 가면 언니네 집으로 가는 길 나오니까" 

"예 할머니." 

그나마 잠시동안 느꼈던 알수없는 그 불안감도 노파의 재촉에 발걸음을 돌려 내딫는 순간 다시 
희경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오랜만에 찾아온 시골의 낯선 풍경이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만들어낸 공포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반면 정말 무언가 알수 없는 존재가 여름의 따뜻한 
햇살속에 그리고 알맞게 달아오른 대기속에서 그녀를 압박해오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분명 
한것은 그녀가 1년전 찾아왔을때와 지금의 마을은 무엇인가가 확실하게 달라졌다는 것이였다. 

공장 사람들과 헤어진 후 10여분을 더 걸어가자 두 사람 앞에 두갈래 길이 나타났다. 

"여기서 이 왼쪽길 따라서 조금만 더 산쪽으로 올라가면 언니네 집이에요" 

"기억 나네요, 감사합니다 동행해 주셔서 할머니 아니였으면 한참 헤멜뻔 했네요" 

"무슨 감사는, 나중에 시간나면 우리집에 놀러도 오고 그래요 언니가 우리집 어딘지 알테니까" 

"예, 나중에 뵐께요" 

희경은 고개를 숙여 노파에세 감사를 전하고는 노파가 반대쪽 오르편 길로 걸어가는 모습을 본 
후에야 자신도 그녀가 가르쳐준 왼쪽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전부터 희경은 길이 낯이 익기 
시작했다 언니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1년전과 거의 달라진게 없었다. 단지 이곳 역시 앞선 길과 
같이 예전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조용하다는 점만이 달랐을 뿐이였다. 
희경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돋아나 있는 긴 갈대를 뽑아들고는 이리저리 장난스레 흔들며 길을 
따라 걸었다. 갈림길에서 얼마 가지 않아 길은 꽤나 가파른 경사를 이루기 시작했고, 그런 길을 
걷는 희경의 이마에는 송이송이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오르막 길을 얼마를 걸었을까 드디어 언니의 집이 보였다. 오르막이 다시 평지를 이루는 길 끝 
어귀에 최근에 지어진 표를 내기라도 하는듯이 깨끗한 외벽을 자랑하는 작은 양옥집이 보였다. 
놀래켜 주기 위해 언니몰래 계획했던 방문인 탓에 희경은 발소리를 죽이려 애쓰면서 현관으로 
향했다. 

'딩...동...' 

한동안 안쓴 표시를 내듯 기계식 초인종은 탁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누구세요?" 

집안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게?" 

희경은 장난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 어머, 희경이니?!!" 

처음엔 장난스런 희경의 대답에 잠시 당황해하는 듯한 언니 진경의 목소리는 곧 희경임을 알아 
채고는 기쁨어린 것으로 바뀌었고 이어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왠일이니, 연락도 없이!!" 

"언니 놀래주려고 그랬지 뭐." 

언니는 매우 기쁜듯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희경의 양손을 꼭 쥐었다. 

"정말 와줬구나, 혹시나 해서 전화했던 거였는데" 

"안그래도 오려던 참이였어..." 

"그래 잘왔다, 들어가자 밖이 덥지.. 뭐 시원한거라도 줘야지, 뭐 마실래?" 

"물이나 한잔 줘" 

희경은 웃으며 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냈음에도 역시나 자매답게 
둘은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수 있었고 그런 사실이 희경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정신없이 바쁘게만 지내왔던 도시에서의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는듯한 느낌을 
받으며 희경과 언니와의 대화는 끊임없이 계속 되었다. 

두 자매의 단란한 시간이 오랜만의 대화와 함께 지속되는 동안 창밖에는 어느새 도시보다 빠른 
산골 마을의 어둠이 살아있는 생물인 마냥 너무나도 조용히 잦아들고 있었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clancy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