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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보르헤스의 세번째 편지 '현실씨에게'
게시물ID : readers_159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보르헤스
추천 : 0
조회수 : 1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21 03:17:18
지금 당신이 듣고, 쓰고, 대답하는 모든 글은 지금의 내가 써왔던 편지가 될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무서운지를 나는 지금의 나는 당신이 느끼는 감정의 절반도 못느끼고 있을것이다. 은희경 작가의 태연한 인생이라는 제목처럼 내 자신의 안락함과 부모의 등 뒤에 나를 기댄채 이대로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 없는 욕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을 품는다는 것과 지금의 당신의 모습이 어찌 될지 모른다. 나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나 자신의 대한 의미가 아니라 타자로서 쳐다보고 싶다. 타자라는 이방인적 관계. 내가 아닌 또 하나의 나. 유희왕의 둘로 나눠진 의식처럼 우리도 잠시 둘로 나눠 이야기 하자.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미래의 당신?, 과거인 나? 추상적이고 뻔한 의미보다는 나는 당신을 이제부터 현실이라고 부른다면 어떻게 맞아 떨이질까?
현실씨.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렇게 받아 들이는 것이 당신에게도 편할것이다. 그럼 나는 무엇이 좋을까. 그래 나는 이상으로 대답하자 현실씨와 이상. 정해진 표현을 쓰겠지만 그것이 통할지는 모르겠다. 현실싸. 어째든, 나는 당신 현실에게 대답하고 싶은 말은 지금의 나 자신을 보는 관점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어느 순간 글은 써야하는 것에서 벗어나 나의 성공 진로를 잡아야하는 도구로 변질했다. 그것이 현실씨가 택한 방안인 것일까? 아니면 이상이 결국 포기한 타협안일까? 그것은 아마 누군가를 비난 하기 위한 변명일 것이다. 그래서 더이상의 추궁보다는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순간 그래왔을까? 현실씨는 알 수 있을까? 현실씨는 좀 더 오랜 시간을 거친 방패처럼 나를 막아 왔다. 그것이 장점이자 나에게는 단점처럼 들릴 수도 있을것이다. 이중적 고나계에 나는 잠시나마 혼란에 쌓이기도 했지만 이것이 현실씨의 역활이라면서 받아들이는 것도 당연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처럼 현실씨의 역활에 뚜렷한 점은 아마 지금의 내가 이야기 할 가장 큰 중점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글을 소통이었다. 변질되지 않은 순수. 아니 이미 시작점부터 변질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위한 도구. 그것이 나의 글의 시작이었으니까. 초등학생때 무작정 써낸 시 한편에 낭송과 상장을 거머지고 부터 이미 나의 글을 현실씨의 교정과 지시로 얼룩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비난 하지 않는다. 나도 그것이 증폭되어 또 다른, 글을 수 없이 찾아 낼 수 있었으니까.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것이고, 찾아야 하는 모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모험의 끝에 결과가 있고, 결과는 곧 나를 소통이라는 이름의 욕구로 내뱉어지기에 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작가. 그래 욕구의 충족은 곧, 타인에 대한 갈구에서부터 시작되었을테지. 거짓으로 써내왔던 시들이 점점 더 깊숙한 곳에서 끌어오는 욕망이 증폭되어 결국 경기도에서 시 잘쓰는 중학생으로 상타서 손꼽히게 되고. 소설을 쓰겠다며 덤빈 시간들이 결국 인맥으로 모여, 또다른 욕망이 되었고, 결국 도구로 다시 남게 되었지. 그것은 대학의 입시를 시작으로 되지는 않았을거다. 그보다 오래전 오래전이지만, 일단은 입시로부터 이야기 하자.
 
도구는 결국, 남의 시선 혹은 나의 욕구를 충족에만 필요로 하게 되었지, 진짜 욕망이 아니라 그저 타자를 공격하거나, 나를 우러러 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
 
그것은 입시가 절정이었을때 더욱 강렬하게 일어났다. 수능을 치르고 싶지 않고, 다른 애들보다 더 대학에 잘 갈수 있다는 허풍으로 시작된 내가 가진 유일한 재산을 이곳에만 쏟았다. 결과는 산산히 부셔졌다. 그리고 난 부서진 검을 들고 덤빈, 신춘문예와 신인문학상에서도 완전히 가루처럼 남겨져버렸지 그것은 아직 군대에 제대도 못한 내가 할말은 아닐 수 있어. 하지만 이미 도구로 쓰고 있던 나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말이었지 현실씨.
 
지금은 많은 생각이 들어버렸어. 과연 내가 정말 글이라는 것에 대단한 욕망을 품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것은, 다시 내가 소설에 대한 펜을 잡고서였어. 소설을 잠시 접었을 당시에 나는 서평과 아버지 일에만 열줄하고 있었어 성실이라는 가면안에 나를 집어넣고, 일단 현실씨에 말을 따르자고.
그런데 군대라는 공간은 참 이상해, 욕망이 감춰질 수 없는 약간 묘한 공간이랄까. 그래서 다시 펜을 들었을때는 이미 내가 도구의 글이 아닌 시선으로 글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깨달아버렸어. 여전히 작가라는 욕망과 노벨문학상 그리고 웹소설 작가의 수익 등. 작품보다 내가 가질 직책에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던거지. 하지만 큰 작품이 나에게 박혀왔을때 느낀 것은 그래, 이런 말로 표현하면 되겠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때, 그 음식에 레시피에 궁금증과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그 요리에 대한 끊임 없는 욕구가 샘솟는 느낌이랄까. 현실씨 나도 그랬다고 말해야 할것 같아. 나를 이렇게 만든건 너무나 많지 열거하라면 해야겠지 그것이 현실씨를 설득시킬수 있다면 말이야.
 
처음은 아마 미나토 가나에 이겠지 고백과 모성. 어느 작품에 흠도 잡을수 없고 이것이 진짜 작가의 필력인가라는 무서움마저 느꼈어. 그리고 코맥매카시였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더,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소년을 위로해줘, 웹툰에서도 느꼈어 앨리스를 위하여 베스트 도전이었는데. 열정과 시선. 그것은 천재라기보다는 수 없는 자료조사와 욕망에 의해 뒤섞여진 진심이었어. 언제가 나도 그런 욕망에 휩싸여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잊어 버렸는지 모르겠어 결국 이것이 현실씨가 대답한 사회겠지 하며 버린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본다면 그 분도 작가라는 도구보다 순전히 작품에 욕구가 더 크지 않았을까? 그것이 내 생각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작가가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겠어 라고 대답하고 싶어. 현실씨 나는 그런 모습 속에서 나도 내가 해야 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부모에게 받을 재산도, 집도 직업도 있는데 포기하려는건 아니야 우회하는거지 현실을 피하는 것보다 현실에게 허락을 구하려는거지 그러니까 현실씨 믿어줘.
 
믿어줘 ..
 
(요새, 고민이 많네요. 앨리스를 위하여라는 작품을 보고나서 이 작가의 대한  대단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올렸네요. 어느날 이 글을 제가 미래에 와서 본다면 현실를 설득했을지가 궁금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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