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외국자본 국내진출 ‘법률 교두보’ [한겨레 2006-04-18 08:00:11]
[한겨레] “국유은행을 외국 투기자본에 팔아넘긴 동맹관계를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몸통을 밝히려면 론스타 쪽의 회계·법률 자문회사에 대한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11일 외환은행 헐값매각 논란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이 낸 성명의 일부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 과정에 동시에 등장하는 김앤장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를 정면으로 겨냥한 의혹 제기다. 김앤장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의 국내 입성 과정에서 거의 빠짐 없이 법률 자문이나 대리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손’ 구실을 했다. 우수한 인력을 보유한 국내 1위 로펌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법원과 검찰 출신의 고위 간부들을 ‘싹쓸이’하다시피 영입해 “로비 목적 아니냐”는 지적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오는 게 사실이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외환은행 매각 과정의 의혹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김앤장과 이곳에 소속된 고문들의 구실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외국자본 진입 때 김앤장이 관문?=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 김앤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해 9월 론스타가 주식 초과보유 승인신청서를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하면서부터다. 론스타의 법률 자문사는 미국 로펌인 스캐든 압스였지만, 김앤장은 국내법 자문을 맡아 관련 사항 검토와 신청서 작성 등 현지 업무를 대신했다. 3년 뒤 외환은행 매각 협상에서도 김앤장은 론스타의 법률대리 업무를 맡았다. 특이한 점은 김앤장이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국민은행의 법률대리 업무도 함께 맡았다는 사실이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동시에 대리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김앤장은 “이해가 충돌하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김앤장은 1999년 7월 제일은행을 뉴브리지캐피탈에 매각할 당시 법률 자문을 했고, 2000년 7월 한미은행을 칼라일펀드에 매각할 때도 법률 자문을 맡았다. 2003년 4월 진로의 최대주주 골드만삭스가 진로 파산을 신청한 뒤 매각할 때도 골드만삭스의 파산신청 재판에 관여했다. 그해 7월 에스케이와 소버린자산운용 경영권 분쟁 때도 소버린의 주식취득 신고를 대행했다.
금감위마저 김앤장 의견 인용=론스타는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었지만,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의 예외 조항을 인정받아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이런 예외는 앞서 제일은행(뉴브리지캐피탈)이나 한미은행(칼라일)에도 적용됐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2000년 6월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 허용 때, 금감위가 내부 보고서에 김앤장의 법률 자문 내용을 인용했다는 점이다. 금감위는 금융기관이 아닌 칼라일이 은행을 인수해도 되는지를 두고, “금융기관이 아닌 자의 은행 지배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가능하다”는 김앤장 정아무개 변호사의 견해를 인용했고, 그 뒤 인수를 승인했다. 3년 뒤 론스타는 금감위에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요청하는데, 이때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한 대리인 역시 김앤장의 정아무개 변호사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 때 이런 사실을 공개하면서 “정아무개 변호사가 같은 사안을 두고 승인자(금감위)와 신청자(론스타)를 동시에 대리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앤장 쪽은 “정 변호사는 법률 검토 내용을 한미은행에만 제공했다”며 “금감위가 이를 어떻게 인용하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김앤장 전 고문들 역할 있었나?=외환은행 불법 매각을 둘러싼 의혹의 중심에는 항상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있다. 그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무렵 김앤장의 고문이었다. 이 전 부총리의 인맥을 축으로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 등이 손발을 맞춘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김앤장이 금감위에 론스타의 주식 초과보유 승인신청서를 낸 다음날, 재경부가 금감위에 승인 협조 공문을 보낸 점 등이 이런 사례다. 정종남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투기자본은 어느 나라에서든 영향력 있는 정관계 인사들을 필요로 하고, 한국에서는 이들과 투기자본을 연결하는 끈이 바로 김앤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론스타 사태는 이헌재씨가 자신의 인맥에 김앤장의 실력을 정교하게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앤장 자문위원을 지낸 김형민 외환은행 부행장의 행보도 의문이다. 김앤장 자문위원이던 그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몇 달 뒤 이 은행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은행 경험이 전혀 없는 김 부행장의 발탁은 의외였다. 김 부행장은 “경영진의 제의가 있었고, 론스타와 인연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헐값매각 의혹이 불거진 뒤 김앤장 변호사와 만난 적 있느냐”는 질문에 “만났지만, 대응 방안을 의논하기 위한 회의였다”고 답했다. 그는 상무 발탁 1년6개월 만에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김앤장 쪽은 “김 전 자문위원은 김앤장에서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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