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엽-
나 어릴 적에
집을 나서면
이슬에만 웃어주던
깍쟁이 나팔꽃이
검 보라색 월남치마 입고서
문 앞에 앉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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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전 아버지 구두처럼
광이 나던 풍뎅이는
바쁜지 놀자면 부웅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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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울 누나가 촌스럽게 발랐던
루즈만큼 빨간 장미에서
가시 하나 꺾어서는 코에 붙이고
코뿔소처럼 뛰어 다니다가
문뜩, 하늘 올려보면은
태양이 정말로 째~앵 소리 내며
말 걸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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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요즘은 말이 없다.
지저귀는 새들도
수다쟁이 꽃들도
.
부쩍 말이 많아진 나는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