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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단편,브금]증식하는 거울
게시물ID : panic_146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7
조회수 : 32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4/28 10:28:29
제1장 결과 “나 저기 들어가고 싶어.” 맨처음 거울의집에 들어가자고 말한 사람은 아즈미였다. 인터넷의 미스테리 소설창작 동호회에서 알게 된 나와 아즈미, 그리고 다이스케와 미노리는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 동경의 놀이공원에서 더블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내 여자친구인 아즈미는 23살로 나와 동갑이었다. 약간 오바한 듯한 짧은 치마 밑으로 바비인형처럼 쭉 뻗은 다리가 눈부셨다. "언니는 유치하게 무슨 거울의 집이야. 나 발 아퍼 죽겠어. 그만 집에 가자 응? " 미노리가 나무벤치에 털썩 주저앉으며 샌달을 벗고 조그만 발을 조물락 거렸다. 자랑삼아 새로 신고 나온 빨간색 에나멜 샌달 때문에 복숭아뼈 부근에 물집이 잡혀 부어있었다. 아즈미보다 두 살 어린 미노리는 동호회에서 부운영자를 맡고 있었는데 깜찍한 외모에 비해서 글이며 생각이 성숙했고 동호회 내에서 남자 경력도 화려했다. 사실 아즈미와 만나기 3달전까지만 해도 나는 미노리와 사귀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미노리의 과거 남성편력을 알게되었고, 나와 사귀면서도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있다는 낌새가 느껴지자 깨끗히 마음을 접고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기로 했던 것이다. "바보같이 밖에서 죽 때리지 말고 아무데나 들어가자구." 다이스케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미노리의 새남자친구 다이스케는 나보다 한살 어렸는데 미노리에게 듣기로는 유명한 폭주족의 간부라고 했다. 싸가지 없는 말투에서부터 폭주족 심벌이 프린트된 너저분한 티셔츠까지 개양아치티가 줄줄 흐르는게, 어디 한구석 제대로 되먹은 녀석 같지가 않았다. 미노리는 남자 보는 눈은 높았지만 막상 고르는 눈은 바닥인 아이였다. 다이스케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개장시간부터 지금까지 실컷 놀았기에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우리는 아즈미의 말에 따라 거울의 집에 들어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아즈미가 다정하게 나의 팔짱을 끼고 앞장섰다. 술 취한 남자라도 꼬실려고 안간힘을 쓰는 늙은 창녀처럼 얼룩덜룩한 뺑끼칠로 떡칠을 해 놓은 '거울의 집' 간판은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 페인트비듬이 떨어질 정도였다. '거울의 집'은 수많은 공원 시설 중에서도 길에서 장애인이 파는 좀약같이 가장 인기가 없는 곳이었다. 오후3시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우리가 첫손님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무표정하고 사무적인 도우미에게 자유이용권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울의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거울 저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이제 여러분들은 거울 속의 자기 자신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최선을 다하세요" 거울의 집에 들어서자 테이프로 녹음해서 백만번쯤 돌렸음직한 음질최악의 방송이 들려왔다. 음질뿐만 아니라 멘트도 최악이긴 마찬가지였다. 요즘엔 유치원생도 저런 말은 안 믿는다. 그러나 평소부터 겁이 많은 아즈미는 커다란 눈망울을 불안하게 깜박이며 내 소매를 꼭 붙들고 놓지 않았다. "흥! 그런 놈들이 나타나면 이걸로 해치워버리면 되지" 다이스케가 뒷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찰칵 펼쳐들며 웃었다. 말끝마다 거들먹거리는 불량기가 맘에 들지 않아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거울의 집은 말그대로 천장과 바닥, 사방이 온통 거울로 되어있는 미로였다. 지하 시설이라 밖에서 보던 것보다 상당히 넓었고 특유의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미로가 두 갈래로 갈리는 지점에 이르자 다이스케와 미노리는 왼쪽 길을 택했고, 나와 아즈미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늦게 나오는 커플이 저녁을 쏘기로 했다. 이것은 흡사 출구로 찾아 벨을 누르면 보상으로 먹이가 주어지는 흰쥐의 미로 찾기와도 같은 게임이었다. 나는 겁에 질린 아즈미의 동그란 어깨를 꼭 껴안은 채 부지런히 오감의 더듬이를 사용해 길을 찾았다. 흘깃 흘깃 바닥거울에 비치는 짧은 치맛속 아즈미의 귀여운 곰돌이 팬티를 감상하면서. 거울의 집에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온 지 시간이 상당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거울이라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내’가 내 주변을 둘러싸고 나와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지러웠다. 방향감각을 잃은 나는 여러 번 거울에 코를 박았다. 길인가 싶으면 벽이고, 벽인가 싶으면 길이고..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즈미는 나만 철썩같이 믿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이렇게 거울 사이를 걷고있으니까 정말 신기하다" 아즈미가 말했다. "두개의 거울 사이에 어떤 물체를 놓으면 빛이 두 거울 사이에서 무한히 반사되면서 무한히 많은 허상을 만들어 낸데. 그러니까 이쪽 거울에 비친 물체의 상을 저쪽 거울이 반사하고, 그 반사한 상을 다시 저쪽 거울이 반사하고..이런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는 거야. 쿡 쿡 어렸을 땐 그런게 얼마나 신기했던지" 아닌게 아니라 양쪽 거울벽은 무수히 많은 내 모습을 흡사 나의 복제인간부대가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진군하는 것같이 장엄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즈미, 우리 이러지 말고 둘로 나눠서 길을 찾아볼래?” 좀처런 출구가 보이지 않자 내가 제안했다. “싫어, 혼자 있기 무서워” 아즈미가 내 팔을 꼬옥 껴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나이에 곰돌이 팬티를 입을 용기는 있으면서 혼자 길 찾을 용기는 없냐?” 내가 놀리자 아즈미는 얼굴을 확 붉히며 놀란 조개처럼 다리를 딱 오무려붙였다. “이..이 변태!!!” 아즈미는 골이 나서 발딱 일어나더니 앞의 막다른 거울벽으로 성큼 성큼 다가갔다. “야 너 뭐하려구? 거긴 막다른 길이란 말야” 나는 당황해서 소리질렀으나 아즈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거울에 손을 가져다 대자 놀랍게도 벽이 회전문처럼 빙글 회전하면 뒷 면의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다른 미로로 통해 있었다. 아즈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울 뒷편으로 사라지자 360도 회전해서 제자리로 돌아온 거울벽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서있는 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쿠궁.. 하는 요란한 진동과 함께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퍽 소리를 내며 조명이 나가고 칠흑같은 어둠이 나를 싸안았다. 요즘들어 일본전역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횟수가 증가하더니 더이상 이곳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엄청난 진동에 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여기저기서 거울벽이 쩍 쩍 쪼개지며 날카로운 쪼가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적막. 다행히 잠시후 조명이 다시 들어왔다. 그 잠깐이 나에겐 영원과도 같이 느껴졌다. 주위는 엉망진창으로 망가져있었다. 나는 다행히 별다른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아즈미가 걱정되었다. “아즈미~ 아즈미~ 어딧어?” 앗차 하는 사이에 아즈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목청껏 불러보아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혹시 지진때문에 사고라도 당한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걱정에 나는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마냥 아즈미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또 하나의 내가 버티고 서 있었다. 앞이 거울로 막혀있었서 내 모습이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주변상황이 낯익다 싶어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까 왔던 장소였다! 나는 계속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었다. 나는 앞만 보고 똑바로 걸었으므로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 번 방향을 틀긴 했지만 한바퀴를 돌 정도는 아니었다. 길이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 씩 휘어져서 커다란 원호를 그리면서 시작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 그것이 가능하려면 거울의 집이 놀이동산 전체넓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니면 내부공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기묘하게 비틀리고 닫혀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때서야 비로소 영원히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서늘하게 등골을 타고 엄습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왠지 이제까지 보아오던 거울과는 느낌이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거울 속으로 한없는 공간감이 느껴졌다. 씨익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거울 속의 나도 따라 웃었다. 나는 거울을 향해 가만히 손을 뻗었다. 거울 속의 나도 완전한 대칭을 이루며 같은 속도로 손을 뻗어왔다. 이대로 계속 손을 뻗으면 거울의 차가운 표면을 뚫고 그 속의 손바닥과 마주칠 것 같았다. 거울에 1mm앞까지 접근하자 따뜻한 체온까지 느껴지는 듯 했다. 막 거울 속의 나와 손바닥이 마주치기 직전 나는 손을 거두고 주머니를 뒤졌다. 나는 일단 그곳에 뭔가 표시를 해 두기로 했다. 어쩌면 사람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단순히 똑 같은 구조로 보일 뿐 실제로는 다른 장소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상식적으로 합당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소설 아이디어메모용 수첩과 일회용 싸인펜이 나왔다. 이거라면 거울 위라도 문제없다. 나는 사인펜으로 거울 앞 바닥에 “1”이라고 표시를 해 놓고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뚜벅 뚜벅..내 발자국 소리가 거울에 반사되며 약간씩 박자가 어긋나며 울렸다. 내가 첫번째 희생자를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갈림길 바닥에 사인펜으로 표시를 하고 간혹 회전거울을 통과하기도 하며 아즈미를 찾아 헤맨지 10여분이 지났을 때 나는 뭔가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닥에 걸죽한 액체가 역겨운 철분냄새를 풍기며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피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앞쪽 코너에 사람의 두 발이 삐죽 나와있는 것이 보였다. 유난히 하얀 발에 걸린 빨간 샌달이 눈에 띄었다. 나는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체에 다가섰다. . 피가 솟아나는 근원지는 바로 미노리였다. 다이스케와 따로 떨어져서 길을 찾아려다가 당한 듯 싶었다. 사방의 거울벽이 마치 핏물을 찍은 대걸레로 미친듯이 문댄듯한 핏자국으로 빨갛게 얼룩져 있었다. 더군다나 미노리의 두 눈은 흉기로 끔찍하게 찔려서 움푹 파여있었다. 목과 배에 칼자국이 있었는데 급소 부위라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단번에 죽은 것 같았다. 자국의 크기로 보건데 작은 칼로 쑤신 것이 분명했다. -흥! 그런 놈들이 나타나면 이걸로 해치워버리면 되지 잭나이프를 만지작 거리던 다이스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렇다면 설마 다이스케가? 하지만 자신의 애인을 도대체 왜? 나와 미노리의 과거 사이를 알고 질투심에 저지른 일일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살인을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다니..아니, 어쩌면 아까 지진이 일어났을 때 실수로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뭐가 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끄아아아아아” 그때 어디선가 폐가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절규가 내 고막을 파고들었다. 나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몇번을 길을 잘못든 후에야 나는 한 사람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이스케였다. 그는 배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다이스케 정신차려, 이게 어떻게 된거야?” 다이스케를 일으켜세운 나는 충격으로 눈을 부릅떴다. 예리한 것으로 마구 난자당한 다이스케의 배에서 꾸불꾸불한 창자가 마구 쏟아져나와 있었다. 필름을 마구 잡아뽑은 카세트테입처럼 회생할 가망이 없어보였다. 다이스케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손가락에는 타다만 피에 젖은 담배꽁초를 든 채로. 온몸이 주책없이 떨려왔다. 다이스케도 아니다. 도대체 누.구.의.짓.이.란.말.인.가. 이 방안에 우리 4명 외에 누군가가 더 있단 말인가. 확실히 나는 아까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지진이 일어난 후부터 느껴졌다. 그것은 아무래도 '거울의 집' 안에 우리 4명 이외의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예감은 확실한 근거를 가진 것이 아닌 막연한 것이었다. 뭔가가..뭔가가 부자연스러웠다. 이를테면 내가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나의 허상들도 동시에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것은 빛과 거울의 반사와 상호작용을 생각하면 매우 복잡한 움직임이었지만 분명 그 속에는 물리법칙에 따른 일정한 질서가 있었다. 그것은 엄밀한 계산이 아니라 육감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하나의 환영이 다른 방향으로 거슬러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나의 예감은 보다 확실해 졌다. 거울의 집에는 우리 4명 외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정신이상의 살인마가! 나는 미노리와 다이스케가 죽은게 슬프다는 생각보다도 남은 아즈미가 위험하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렇다고 아즈미를 무턱대고 소리쳐 부르면 한들 오히려 내 위치가 노출되서 적에게 습격당할 위험이 있었다. 아즈미를 만날 때까지 소리를 죽이고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테세우스에게 실타래가 있었다면 나에겐 사인펜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괴물로부터 공주를 구해내는 일 뿐이었다. 더구나 나에겐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어 나영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지하라서 연결될지 걱정됐지만 다행히 신호가 갔다. 뚜우..뚜우..뚜우.. “여..여보세요..?” 핸드폰을 통해 아즈미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즈미 나야 아키라. 지금 어디 있는 거니? 무사하니? 자세히 설명할 순 없는데, 지금 상황이 안좋아. 위험하니까, 나 외의 사람은 아무도 믿지 말고 내가 바닥에 사인펜으로 표시한걸 따라서 “1”이라고 표시한 곳으로 찾아와, 알았지? 여보세요? 아즈미! 아즈미?” 아즈미는 대답이 없었다. 탁.. 곧이어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충격음이 전해졌다. “여보세요? 아즈미! 무슨 일이야! 대답해!” 누군가가 아즈미의 핸드폰을 집어들어 조용히 듣고 있는 것이 느껴다. 보이지 않아도 느낌으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씨익- 씨익-하는 그의 숨소리가 느껴져 온몸의 솜털이 곧두섰다. 갑자기 탁!하고 핸드폰이 꺼졌다.도대체 지금 아즈미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중일까. 누구와 함께? 나는 걱정이 되서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지나가는 코너나 회전거울 앞에 사인펜을 이용해 아즈미와 나만이 알아볼 수 있게 표시를 해두었다. 모든 표시는 "1"지점을 향하도록 했다.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그냥 마구잡이로 찾아다니면 서로 엇갈릴 가능성이 높았다. 한편, 나는 표시를 참고하여 수첩에 미로의 지도를 작성했다. 입구가 있는 이상 어딘가 출구가 있을 것이다. 1등 실험쥐가 되려면 지도를 작성해서 헤매는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었다. 지도는 나중에 혹시 살인마의 추격을 받게 될 때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었다. 꼬르륵..친구들이 둘씩이나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배는 고파왔다. 어서 아즈미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저녁을 먹고싶었다. 내기에서 이긴다고 한들 저녁을 사줄 사람들은 이미 이세상에서 사라졌지만. 그로부터 약 15분 정도를 더 헤매자 거울의 집은 코너는 나의 사인펜 표시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나의 미로지도도 거의 완성단계에 있었다. 단순히 길 뿐만 아니라 일일이 벽을 손으로 밀어보며 회전문의 위치까지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즈미를 만나지는 못했다. 서로 타이밍이 묘하게 어긋나는게 아즈미쪽에서 나를 피해다닌다는 느낌마저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지도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했을 때 나는 코너를 돌아서 살짝 사라지는 치맛자락을 보았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즈미의 것이었다! 나는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재빨리 뒤를 쫒았다. 그러나 내가 코너를 막 돌았을 때 아즈미의 모습을 거짓말 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망연자실 하게 서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주변의 환영들이 싸악 한꺼번에 변하는 듯한 낌새가 들었다. 거울로 반사되는 행동반경 안에 누군가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신호였다. 정면의 거울을 통해 내 뒤에서 벽이 서서히 회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속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것은 아즈미였다. 콱! “으윽..” 내가 뒤돌아 보는 순간, 어깨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나를 아즈미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깨진 거울조각이 예리한 빛을 발하며 들려있었다. 아마 지진 때 깨어진 거울조각인 듯 했다. 아즈미의 하얀 맨손바닥이 거울날에 베어 빨간 피를 뚝 뚝 흘리고 있었다. 아즈미는 실성한 듯 풀린 눈빛으로 큭 큭 큭 웃었다. “아..아즈미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야, 나 아키라라구! 어서 정신차려!” 그러나 이미 그녀의 귀에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거울조각에 찔린 어깨가 불로 지지는 듯이 아팟다. 그 순간 퍼뜩 짚이는 것이 있었다. “서..설마 미노리와 다이스케도 네가 한 짓이니? 그런거야?” 아즈미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한번 거울조각을 치켜들었다. 나는 미간으로 파고드는 그것을 옆으로 굴러서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거울조각은 허공을 가르고 오히려 아즈미 자신의 허벅지를 찔렀다. 눈밭에 피가 퍼지듯 아즈미의 하얀 허벅지에서 너무도 선명한 핏자국을 흘러내렸다. “아으..” 아즈미는 고통과 두려움이 섞인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휙 몸을 돌이켜 절룩거리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기다려 아즈미!” 나는 아즈미가 다리에서 흘린 핏자국을 따라갔다. 핏자국의 끝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피의 연못이었다. 그리고 피의 연못 한가운데는 아즈미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그녀의 목에는 다이스케의 것이 분명한 잭나이프가 꽂혀있었다. 순간적으로 먼저 죽어버린 다이스케의 나이프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아..으…아즈미! 아즈미!” 나는 아즈미를 껴안고 울부짖었다. 피가 빠져나간 그녀의 작은 몸이 젖은 해초처럼 축 늘어졌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엎어져서 울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울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살인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노리고 있을 지도 몰랐다. 나는 아즈미의 손목에서 시계를 풀러 내 손목에 찾다. 무엇 하나라도 그녀의 체온을 간직한 것을 지니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흰 목에 꽂힌 잭나이프를 잡아뽑았다. 이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아즈미,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네 복수는 내가 반드시 해줄게..” 나는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수를 할려고 해도 우선은 길을 찾는게 급선무였다. 나는 통로로 걸어나가려다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바닥에 “1”이라고 사인펜으로 쓴 것이 보였다. 아까 내가 거울 앞에 표시한 자리였다. 아즈미는 내 말만 믿고 내가 시키는데로 따라왔다. 그런데도 내 앞에서 죽고 말았다. 나는 내 자신의 무력함이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곳에 내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내 주위의 모습은 모두 비치고 있었는데 내 모습만 칼로 오려낸 것 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으로 뚫려 있었다! 반대쪽 공간은 이쪽과 좌우가 반대로 된 채 완전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마치 거울에 비친 듯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그렇다면 아까 나와 마주서 있었던 ‘날 닮은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손끝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숨을 쉬며 서 있었던 그것은! 턱!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화들짝 놀라서 뒤돌아보니..그곳에는.. 또.하.나.의.내.가.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나는 비명을 지르며 놈의 목에 잭나이프를 찔러넣었다. 놈은 미쳐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눈을 부릅뜬 채 뭐라고 말하려고 입을 벙긋버렸으나 목의 기도가 관통당하는 바람에 피식 피식거리는 피거품과 함께 공기가 새어나올 뿐이었다. 불컥…마지막 숨을 토하고 놈이 고개를 옆으로 꺽었다. 죽은 녀석은 나와 똑같이 생겼다. 심지어 옷차림마저도. 그러나 자세히 쳐다보면 옷에 프린트된 글자들이 반대로 뒤집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치하게 생각했던 안내방송 그대로 녀석은 거울 저편에서 온 나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나의 친구들을 죽인 것도 모두 이녀석의 짓이었을 것이다. 가만, 더 생각해 보면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미노리는? 다이스케는? 아즈미는? 어쩌면 ‘거울에서 나온’ 그들 모두가 공범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즈미의 목에 꽂힌 것이 먼저 죽은 다이스케의 나이프였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또하나의 다이스케의 짓이었을 테니까. 이 통로는 틀림없이 거울 저편과 통하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까 일어난 지진의 충격으로 거울 이편과 저편이 통하는 불가사의한 사태가 일어났음이 틀림없었다. 만일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이것은 미스테리소설의 좋은 소재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성큼 발을 내디뎌 거울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제2장 원인 예상대로 거울 건너편은 이편과 정반대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아까 전 지진의 여파 때문인지 깨진 거울 조각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이미 작성해 좋은 지도를 좌우를 거꾸로 읽으며 길을 찾았다.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사냥감이 되어 쫓기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사냥꾼이 되어 녀석들을 쫓고 있다. 더구나 나는 복잡한 미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다이스케, 자꾸 고집만 피우면 어떡해. 지금와서 나가자고 하면 나더러 어쩌란 말야” 가까운 곳에서 미노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이야. 나는 발자국소리를 죽이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내밀 필요도 없이 거울벽이 잠망경 역할을 해주었다. 그곳에선 다이스케과 미노리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내가 아는 다이스케 미노리는 이미 죽었으니 저것들은 거울저편의 허상에 불과할 것이다. 저 살인마들!!! 나는 내 위치가 반사되어 들통나지 않게 특히 조심했다. “그럼 언제까지 이 속에서 길이나 찾으라구? 이제 아키라인가 하는 놈한테 맞추어주기도 힘들어. 원래 오늘은 단둘이 우리 아버지 별장에 가기로 한 날이잖아? 너 아직도 그 자식 좋아하는 거 아냐?” “다이스케!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좌우간 싫으면 너혼자 이 유치원속에 남아.난 왔던길로 다시 나갈 테니까.” “다이스케!!” 다이스케가 저쪽으로 성큼 성큼 사라지자, 미노리 혼자 멍하니 남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미..미노리 여기 있었구나”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키라..” “미안..엿들을려고 숨어있던 건 아니었는데..끼어들기 싫어서 있다보니..” “아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이스케랑..잘..안되니?” “아냐...그런게 아냐..아..” 미노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자연스럽게 내 품에 안겨왔다. 연인이었을 때처럼. 그녀의 작은 가슴이 느껴졌다. 미노리가 내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작은 새처럼 속삭였다. “내가 바보였어. 왜 아키라 같은 사람을 두고..” 이 가증스러운 것. 나는 왼손으로 미노리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엉덩이 뒤쪽에 감춘 칼을 쥔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나는 왼손으로 미노리의 긴 머리칼을 확 낚에채서 뒤로 제꼈다. 푸욱- 미노리가 영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칼은 이미 그녀의 목젖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칼의 끝이 목뼈와 닿는 둔탁한 느낌. 난생처음 사람을 찔렀다는 짜릿한 감촉이 손끝에 전해져 왔다. 미노리의 도톰한 입술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왜..?” “니 눈이 재수 없어서” 나는 씨익 웃으며 칼로 그녀의 두 눈을 미친 듯이 찔러댔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그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나는 미노리의 머리칼을 확 잡아끌어 거울벽에다 내동댕이쳤다. 그녀는 잡다 만 닭처럼 몸부림을 치며 사방에 피칠을 했고 삽시간에 걸죽하고 뜨듯한 피냄새가 진동을 했다. 마침내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이 멈추었다. 하아 하아..거친 호흡을 내쉬며 정신을 차려보니 보니 어느새 내 티셔츠에도 분무기로 뿌린 듯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이걸로 미노리의 복수는 끝났다. 내가 굳이 두 눈을 찌른 것은 미노리가 놈들에게 당한 그대로 그 ‘허상들’에게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피 묻은 칼을 옷자락에 닦고 다이스케의 ‘허상’이 사라진 곳을 향해갔다. “어? 아키라형이 여긴 왠일이슈?” 다이스케는 나를 보자 아무런 경계심도 품지 않고 대뜸 말을 걸어왔다.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이녀석은 남자라서 완력이 있다. 더구나 다이스케가 폭주족이었으니, 그 허상도 싸움에 어느정도 익숙할 것이다. 더구나 놈도 칼을 지니고 있을 테니 정면승부로는 내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어..미노리랑 헤어져서 길을 찾다가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됐어. 미노리는 어디있어?” 내 입에서 미노리란 말이 나오자 녀석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나도 몰라, 그깟 계집얘” 놈은 주머니를 뒤적여 습관처럼 담배를 꺼냈다. 지하 공공장소에서 흡연이라니. 죽은 다이스케나 지금 살아있는 녀석의 허상이나 예의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녀석이 담뱃불을 붙이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틈이 생겼다. 나는 주저없이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어 명치에 칼을 찔러넣었다. 다이스케가 경련을 일으키며 내 어깨를 움켜잡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칼을 그 상태로 밑으로 내리그었다. 순식간에 놀라울 만큼 따뜻한 창자가 흘러나왔고 녀석의 끔찍한 절규가 울려퍼졌다. 내 손은 피에 씻은 듯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두번째 복수도 막을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아즈미의 허상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즈미의 허상을 죽일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미노리의 허상이나 다이스케의 허상과는 경우가 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했던 아즈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어쨋든 아즈미의 허상을 찾아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아즈미의 허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회전벽! 나는 내 지도에 표시된 회전벽을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밀어보았다. 그런 식으로 대여섯개의 회전벽을 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회전문 뒤쪽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아즈미의 허상과 눈이 딱 마주쳤다. 영악하게도 통로로 도망가는 대신 회전벽에 붙어서 반대쪽으로 숨으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나는 잠시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녀’도 내 손과 옷에 묻은 피를 보고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가 서 있는 회전벽 너모로 방금 전 내가 죽인 다이스케 허상의 시체가 보였다. 아마 그녀도 그 장면을 보았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우선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때 어디선가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여..여보세요?” 그녀가 핸드폰을 받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짧은 치마 밑의 흰 다리가 부들 부들 떨리고 있었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내가 칼을 꺼내들자그녀는 갑자기 홱 뒤돌아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어찌나 재빠른지 아차 하는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떨어진 핸드폰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집어들었다. 귀를 기울였지만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탁. 나는 핸드폰의 폴더를 덥었다. 그곳의 바닥에는 놀랍게도 내가 했던 것과 똑 같은 사인펜 표시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글자의 좌우가 반전되어 있었다. 거울 저편 세계에서의 ‘나의 허상’ 역시 내가 했던 일을 그대로 했던 것이다. 나는 화살표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러면 ‘아즈미의 허상’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화살표를 따라가서 한 5분정도 헤맷을 때 나는 다시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한쪽 다리에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상처는 설마.. “이야아아아아아” 내가 생각을 더듬을 틈을 주지 않고 그녀가 두 손에 유리조각을 들고 공격해 왔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숙이고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푹- 운 나쁘게도 칼은 곧바로 그녀의 목을 찔렀다. 그녀는 그자리에 마네킹처럼 털썩 쓰러졌다. 나는 칼을 다시 뽑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나는 그녀가 입고 있는 티셔츠의 글자들이 반전된 것이 아닌 정상인 것을 알아챘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정신이 혼미해져 왔다. 분명..분명 나의 아즈미는 아까 전에 죽었는데. 나는 왼손을 들어 아까 가져왔던 아즈미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 시계는 초침이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게다가 모든 숫자들도 좌우가 반대로 뒤집혀져 있었다. 그렇다면..아까젼 죽은 것이 아즈미의 허상이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죽인 것이 진짜 아즈미였던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아즈미만이 아니라..미노리와 다이스케도...아..이런..내가 무슨 짓을..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벽에 기대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모든 퍼즐조각들이 단번에 맞추어 져서 추악한 전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숫자 “1”이 씌여진 통로를 통해 거울 이쪽과 저쪽은 서로 연결되어있지만 아까의 갑작스런 지진으로 뭔가 착오가 생겼음에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과정까지 알 순 없었지만 아마도 거울이 깨지면서 시간의 축이 어긋났을 것이다. 즉 내가 통로를 통해 들어간 것은 거울 저쪽 세계의 ‘과거’에 해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통로를 통과했던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미노리와, 다이스케, 아즈미도 모두 그 통로를 통해 거울 저편으로 갔던 것이다. 그리고 뒤따라간 나는 그들 모두를 ‘허상’으로 오해해서 잔혹하게 살해하고 말았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나 자신이 저질렀던 짓이었다. 내가 거울 저편으로 들어가 저지른 일들이 원인이 되어 내가 사는 세계에서 재현되었던 것이다.그런데 거울 저편은 과거로 통해있었으니까 재현이 되는 시점은 거울 이편의 과거에 해당한다. 즉 '결과'가 시간적으로 '원인'보다 선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거울 이편’ 세계에서 ‘거울 저편’에서 온 미노리와 다이스케와 아즈미의 허상들을 죽인 것은 역시 ‘거울 저편’에서 온 또 다른 ‘내’가 된다. 나는 그것을 오해하고 ‘허상’들을 죽이겠다고 다시 거울 저편으로 건너가서 나의 진짜 친구들을 죽이고..또다시 반복되는 살육들..그 살육들이 원인이 되어 또다른 살육을 낳고..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된 이런 말도 안 되는 비극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마치 두 거울 사이에 놓인 물체가 양쪽 거울에 무한한 허상들을 만들어내듯이 거울은 수없이 많은 차원으로 증식할 것이다. 어디선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잠시후 낯익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상대는 내가 마치 거울 속의 허상에 불과한 양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는 또다른 나였으니까. “아..으…아즈미! 아즈미!” 그는 아즈미를 껴안고 울부짖었다. 한참을 업드려 울던 그는 불끈 일어나 그녀의 목에 꽂힌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아즈미의 손목에서 시계를 풀러 자신의 손목에 찼다. "아즈미,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네 복수는 내가 반드시 해줄게..” 그는 ‘통로’앞에 섰다. 이대로 두면 그는 거울 저편으로 건너가서 영원한 살육의 비극을 되풀이 할 것이다. 그런 악순환을 막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단계에서 그를 막아야 했다. 나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홱 고개를 돌리고 내 모습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지더니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나는 그가 찌른 잭나이프가 내 목을 꿰뚫는 기분나쁜 감촉을 느꼈다. <끝> 출처 : 붉은 무당 벽돌집 작가 : 안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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