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경중은 없습니다.
모두의 인격은 소중하고 존중되어야 합니다.
왜냐? 인권은 가장 낮은 곳부터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히틀러가 1차세계대전 끝나고 패전국이 되어서 빵사먹을려면 돈을 마차에 실어 가지고 가야할만큼 심한 인플레이션을 해소하기 위해 쓴 방법은 유태인 탄압이었습니다. 돈많은 사회의 기생충같은 이미지(샤일록같은)를 가진 부유한유태인의 돈일 빼앗아 공장을 세우고 다시 산업을 살릴수 있었습니다. 유태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환호를 하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집시도 죽이고 좀있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민주주의자 나중에는 자기 뜻을 거슬리는 자는 모두 죽였습니다. 인권은 가장 낮은 곳에서 지켜야 합니다.
인권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와서 여자를 조낸 강간한다는 파키스탄 불체자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해줘야 하고(불법체류를 옹호한다는것은 절대 아닙니다.)
여자를 납치해 꼬챙이에 매달아 피를 빼고 토막낸 유영철같은 살인마도 얼굴공개를 막아주고 기본적인 사람대접을 해야 합니다. 왜냐고? 인권은 아래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정망과 무너지고 쓰레기 같은 범죄자의 인권이 무너지는 순간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우리에게 생겨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박원순 시장의 노숙자들에 대한 복지를 저는 대환영합니다. 노숙자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움이며 가장 약한 취약계층이며 어찌보면 얼어죽어도 누구하나 신경쓰지 못할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줌으로써 우리사회 모든 계층의 복지를 챙겨주고 도와줄 명분이 생긴 것입니다. 노숙자까지 지켜주는 서울시이기 때문이죠.
여태까지 어느 사회도 일정한 수준의 투명성을 갖고 있을때 복지를 하다가 경제가 망한 적도 사회가 혼란스러워진 적은 없습니다. 하층민의 대한 복지는 그들의 구매력을 향상시켜 사회전체의 경기를 부양시킵니다.
노숙자들에 대한 우월감으로 너희들이 고달픈것은 너희가 인생을 개같이 살았기 때문이야라는 생각을 갖지 마셨으면 합니다. 마치 재벌들이 서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