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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교회 처음 간 사람)의 심리학
게시물ID : religion_160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발돈쫌
추천 : 11
조회수 : 65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2/26 21:38:23
예배에 참석한 초심자들은 우선 예배집전자나 설교자에 대해 막연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우선 성직자는 자신보다 많이 알고 많이 배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또한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거나 흠결이 있어도 무시할 정도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간혹 초심자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발언(예를 들어 헌금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거나
자신이 기존에 가졌던 도덕률과 부딪히는)을 할지라도 그 신뢰는 쉬이 깨지지 않는다.
 
이러한 신뢰의 바탕에서, 주변에 앉아 있는 신자들의, 때로는 열렬하고
때로는 조용하며 진지한 경청의 자세를 보았을 때 
초심자는 잠시나마 가졌던 의혹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까지 느끼곤 한다. 
물론 회의하는 사람은 조금 다르지만...
 
'그래, 이 선량한 사람들이 모두가 사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꺼야.'

생소하지만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을 주는 장소에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설교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할렐루야!!!", "주여~" 등등)하는 것을 보노라면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왠지 외톨이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이방인을 대하듯 주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는 쑥스럽지만 가식적이나마 주변 사람들과 같은 반응을 흉내내어 본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을 잘 살펴보면 자신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넋나간 표정으로
설교자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거나 혼자 고개를 숙이고 묵상하고 있거나 함을 알 수 있다.
 
그는 괜한 피해망상/자격지심을 가졌던 셈이다.
 

비록 남의 시선을 피했다는 자위는 하지만, 그의 양심은 가책을 받고 있으며, 
자신이 이곳에서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설교자의 말에서 자신이 동의할 만한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것을 찾아내는 순간(사실 설교자는 90%의 사실을 말하고, 
허위나 자신의 욕심을 두리뭉실한 말로써 10% 정도 슬쩍 끼워넣기 때문에
초심자가 동의할 만한 내용은 아주 많다) 의혹을 가졌던 부분은 잊어버린다.

이것도 확증편향에 속한다는 것을 초심자는 알 리가 없다.


그리고 그는 이 집단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 동질감은 아주 중요하다. 
대개 초심자들은 자신의 고민과 현실의 고통을 덜어줄 대상을 찾아 교회에 왔기에 
이 집단에 정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예배 말미에 하는 통성기도 시간이 되면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은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울부짖으며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사람들,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방언)을 주절대는 사람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뭔가를 갈망하는 듯한 멍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 

초심자인 그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오지 않고 불편하기만 하다.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계속 지켜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배워온 그이기에 
그 사람들을 계속 쳐다보는 것은 왠지 옳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척 한다. 



한편으로 이 '미친 짓'을 얼마나 강하게 하느냐가 신앙심의 척도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짐작 혹은 느낌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한 장소에서 예배를 하고 있기에 
그는 그들의 진정한 동료가 되기 위해 다음번 예배부터는 '함께 미쳐 보겠다는'
다짐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을 한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그는 한번 더 충격을 받는다. 
조금전까지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굴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시치미를 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에게는 두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냉정한 판단하에 이 "조울증 환자"들의 무리에서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이토록 열정과 환희에 차게 만드는 종교에 동참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가 잔류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는 진지함을 가지고, 의심을 버림으로써, 
"관객이 함께 참여하는 공연"의 연기자가 된다. 

물론 일말의 회의만 가져도 "실족한 어린 양"이 되겠지만, 
동참의식을 가지고 계속 푸닥거리에 참가하다 보면 
서서히 맹신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 맹신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예배나 부흥회는 의심을 품지 않는자로 하여금 엔돌핀 혹은 아드레날린을 분비케 한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그는 편안한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회의적 생각을 가지면 편안함은 허무함으로 금방 바뀌지만...). 

비록 바로 내일 월요일부터 험난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주일' 하루만큼은 편안하다. 
그리고 그는 계속 바보가 되어간다. 
(나는 그런 생활을 2년 넘게 했다. 그 시절에는 역전 광장에서 기타를 치며 
동요같은 "복음성가"를 부르는 짓거리가 하나도 쪽팔리지 않았었다.) 


이 편안함은 구원받았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으로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에 의한 편안함은 설교자와 주변 사람들의 주장에 거의 동화가 된 뒤의 일이다. 
이런 편안함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막을 법적인 근거는 미미하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건 말건... 

하지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봇대를 들이대며 이를 쑤시라고 하는 짓거리는 분명히 나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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