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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구름
게시물ID : panic_147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받침돌
추천 : 0
조회수 : 14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4/30 11:15:48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까지는 햇빛이 쨍쨍하더니 이젠 한바탕 쏟아질 준비를 하고있다.

"아 어떡해, 진짜 비올것 같다..."
선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씨... 일기예보 비 안온다더니 진짜..."
나는 아주 그냥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적당히 대꾸해줬다.
사실 속으로는 춤이라도 추고 싶다.

선영과 나는 대학교 산악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군대에 있으면서 여친과 헤어져서 1년 더 놀다가 복학한지도 6개월이 넘어간 반면 선영은 이제 2학년이다.
선영은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동호회 활동도 적극적이라 인기가 꽤 많았다.
단 한가지 흠이 있다면 조금 준비성이 없다는 것.
등산할때면 꼼꼼하게 챙긴다고 챙겨도 꼭 한 두 물건을 깜빡하고 왔다.
자기가 생리하는 날 등산을 와버린 적도 있다...

나랑 둘이서만 등산하자고 물어봤을 땐 의외로 쉽게 승낙했다.
하긴 비교적 꼼꼼한 편인 내가 평소에 계속 잘 챙겨줬기 때문에 그랬겠지.
역시나 선영은 준비성이 조금 부족하다.
내가 일기예보를 보니 비가 안올꺼라 했다고 말하자 그대로 믿고 일기예보 한번 보지 않고 왔나보다.

즉 이번 일은 내가 꾸민 것이다.
매일매일 일기예보를 체크하면서 이런 날씨를 기다렸다.
일기예보를 안본 선영에게는 정말로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보일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계속 미안한 표정을 짓는 것 뿐.
미리 몇번을 다녀와서 알게된 바로는, 조금만 더 가면 잘 안쓰는 산장이 나온다.
특히 오늘 같은 날 일기예보를 본 사람이라면 거의 등산을 하지 않을테니,
이제 그 산장으로만 가면 나와 선영은 둘만 있게 되는거다.
여유가 다소 생기면 핸드폰으로 일기예보를 보겠지.
그때 내가 일기예보 날짜를 잘못 본것 같다고 사과하면 된다.
이걸 위해 지난 번 등산 때 선영이 물통을 깜빡하고 오자 일부러 준비성이 없는 점을 타박했다.
아마 꼼꼼한 성격인 내가 이런 실수를 한걸 고소해하겠지.

"오빠 이거 빨리 내려가야 하는 거 아냐?"
사실 내려갈려면 구름이 끼기 시작했을 때 빨리 내려가야 했다.
"에이씨... 그래야 될 것 같다."
나는 속으론 다급해졌다. 산장이 여기쯤에선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산장의 존재를 알면 눈치챌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구름이 좀 껴서 잘 안보이는 것 같다.
구름이 오늘따라 조금 낮은 곳에 있는 것 같다.
"근데 우리 벌써 꽤 올라와서 최대한 빨리 내려가도 중간부턴 위험해지겠는데..."
나는 선영이 눈치채지 못하게 빨리 윗쪽을 살펴봤다.
이번에 실패하면 두번은 힘들다.
분명 산장이 이쯤에선 보였던 것 같은데...
"어? 저기 저거 무슨 집 같은데?"
갑자기 선영이 윗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의외로 일이 잘되는 것 같다.
"그래? 난 잘 안보이는데..."
"저~기 저거, 집 맞아 산장같은 건가봐 올라가보자."
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걸 애써 가렸다.
나도 아니고 선영이 발견해주다니!
이제 나를 의심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곳 산장은 방은 서너개 있고 좀 큰편이긴 한데, 관리는 거의 안되고 있다.
먹구름이 완전히 하늘을 덮었기에 우리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좀 더 깨끗했다.
아마 최근에 누가 다녀갔나보다.
우리는 일단 짐을 벗고 먼지를 대충 털어낸 뒤 제일 큰 방에 앉았다.
이제 누가 오지만 않는다면, 내 작전은 성공한 셈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뒤에선 선영의 비명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선영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산을 뛰어내려갔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산장에서 자리를 잡고 서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덜컥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불러봤을 때 대답이 없어서 사람이 없는 줄 알았기에 우리는 흠칫 놀랐다.
잠시 자리를 떴다가 돌아온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어쩌면 야생동물일지도 모른다.
선영은 벌벌 떨면서 내 옆에 꼭 붙었고,
나는 혹시 모르니 신발 제대로 신고 뛸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들고있던 폰을 내려놓고, 산장 뒷쪽으로 천천히 가보았다.
산장 밖으로 나와보니, 구름이 훨씬 아래쪽까지 자욱하게 껴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게도, 집 안쪽으로 구름이 조금 들어와 있었다.
마치 구름의 손처럼.
이상했다. 분명 산장 밖 하늘엔 그렇게 높이있는 구름이,
산등성이로는 마치 산을 감싸듯이 산장 근처까지 자욱하게 껴 있었다.
나는 그때는 산장을 찾느라 그리 신경쓰지 않았지만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던 찰나, 갑자기 구름이 뱀처럼 움직이며 산장 안쪽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신기한 기상현상 정도로 알고 다시 산장 안으로 들어와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름이 움직이니 주변에 있던 물건들이 거기에 부딫히거나 넘어지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선영의 비명소리가 들려 다급하게 산장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구름이 산장을 거의 포위하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도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영.
선영의 발목도 마치 뱀이 조이는 것처럼 구름이 감싸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선영이 넘어져서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오빠!!! 이거 뭐야!! 살려줘!!!"
선영이 외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우지직하는 소리가 산장 뒤편에서 들려왔다.
미친 것 같겠지만 구름이 산장을 부순 것 같다.
구름이 짙은 부분은 나무마저 조금씩 부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패닉에 빠져서 구름이 나도 잡기전에 재빨리 산을 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아직도 선영의 비명이 메아리치고 있다.
나는 완전히 지쳐서 계속 위를 보며 바위에 앉아있었다.
이정도 속도로 뛰어내려왔는데 넘어지지 않은 게 신기했다.
다행히 구름은 어느 정도 이상 내려오지를 않고 있다.
나는 이쯤 되서야 선영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체 그 구름은 뭐란 말인가.
구름은 그냥 공기중의 수분이 엉긴 것 뿐이다.
그런게 산장 안의 물건을 휘젓고 선영의 발목을 잡아 끌어당기다니.
그러고보니 구름 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짙은 편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여기가 고도가 꽤 높다지만 저렇게나 낮은 곳까지 내려오다니, 말도 안된다.
그것도 산 주변만 마치 산을 타고 내려오듯이.
위로 다시 올라가볼까 아니면 마저 내려가서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하던 도중,
나는 믿기지 않는 걸 보았다.
구름은 나보다도 아래쪽까지 손을 뻗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양편으로 보이지 않게 나무 사이로 숨으면서,
이미 나를 완벽하게 감싸고는 서서히 다시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점점 포위망을 좁혀왔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구름에 닿기 전에 도로 위로 뛰어올라갔다.
하지만 이미 구름은 주변을 완벽하게 덮었고, 나무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는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렇게 구름에게 목을 잡힌 채 계속해서 위로 끌려올라갔다.
끌려가면서도 계속해서 나무나 바위를 붙잡았지만, 구름의 힘은 막강했다.
산장은 이미 구름이 꾸역꾸역 들어가 창문이나 틈새로 구름의 끝이 숭숭 튀어나와있었다.
이미 내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구름은 내 목과 어깨를 잡고 있어서 숨이 막혔다.
더이상 뭘 잡을 힘도 남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선영의 비명소리도 끊긴지 오래였다.

구름은 나를 잡고는 마치 탐색이라도 끝난 듯이 도로 산 위로 밀려올라가기 시작했다.
완전히 탈진해서 비명도 못지르고 끌려올라가면서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간 걸 극도로 후회했다.
아래를 보니 놀랍게도 구름은 산장에서 나와 선영의 짐까지 끌어당기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 산에 간다고 말한 사람도 없으니 - 선영은 어쨌는진 모르겠지만 - 우리는 완벽하게 행방불명 된 것이리라.


나는 구름 속에 완전히 갇혔다.
가끔씩 한 방향으로 끌려가다가 멈추곤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모르겠다.
나는 지금 구름속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이대로 비행기가 구름을 헤치고 오다가 나랑 부딫히면 볼만하겠구만.
그러던 순간, 나는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거기엔 수십개의 온갖 물건과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엔 내 가방이 보였다.
가방 윗부분은 잘려나간 듯 했다.
내 주변엔 괴로워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거나 꿈틀대는 사람들이 보였다.

"@$%$^$&$?"

갑자기 말소리가 들려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왠 붉은 머리의 서양인이 있었다.
눈은 탁 풀렸지만 그는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멍청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계속 실실대면서 뭐라고 중얼댔다.
딱 봐도 미친 사람 같았다.
미국? 영국? 아무튼 영어로 뭐라고 말하고 있긴 한데,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다리.
그 사람의 다리는 마치 미라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거의 아기 사이즈였다.
장애인인가?
그러고 보니 구름 속에서 휠체어 같은게 보인것 같기도 하고...
아니, 다시보니 다리가 부서진 의자같았다.

그 순간 구름이 한번 더 나를 끌어당기더니, 마침내 그 사람 근처까지 끌려갔다.
가까이서 들어도 여전히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영어를 좀 제대로 배울껄.
그는 계속 말하다가 눈짓으로 자기 오른편을 가리켰다.

나는 그곳을 보고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거기엔 선영이, 아니 옷은 분명히 선영으로 보이는 몸뚱아리가 보였다.
그럼 선영의 목이 날라가버렸다는 건가.
아니, 자세히 보니, 선영의 코 아랫부분은 멀쩡했다.
구름이 약간씩 움직이면서 천천히 선영이 돌면서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나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선영의 얼굴 윗부분이 쪼그라들어있었다.
눈은 눈구멍에서 튀어나왔는지 거기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그러더니 서서히 튀어나온 눈알마저 쪼그라들기 시작했고,
이내 '바싹 말라서' 축 늘어졌다.
이미 입과 코에선 피가 약간 흘러나왔고 죽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나는 갑자기 발 끝이 쑤시면서 비명을 질렀다.
아래를 보니, 이미 내 신발은 마치 부식되기라도 한 듯 거의 벗겨져 없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 발가락들이 쪼그라들기 시작하면서 마치 불로 지지듯 아파왔다.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자, 내 발이 쪼그라든 틈새로 피가 한번 뿜어져나왔다.
다음 순간, 내 발에서 나온 피는 공중으로 흩어지더니 서서히 사라졌다.
마치 구름이 흡수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 시체가 보였는데, 거의 다 반토막이었다.
움직이는 사람은 몇 안됬다.
발가벗은 남자의 하반신 위로는 내장이 튀어나와 있었다.
이미 상반신인지 하반신인지 구분이 안되는 너덜너덜한 시체도 있었다.
좀 더 뒷쪽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의 머리통 같은 게 두어 개 있었고, 신발이나 냄비, 도끼날도 있었다.

이미 나도 내 발은 복숭아뼈까지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구름이 수분을 완전히 흡수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갑자기 천둥소리가 한번 들렸다.
뒷편을 보니 공중에 떠있던 도끼날이 보이지 않았다.
쇠붙이는 이렇게 처리하는 건가.

나는 그렇게 몇시간째 구름 속에 떠 있었다.
구름이 나를 먹는 속도는 잔인할 정도로 느리고 고통스러웠다.
저 미친 남자는 얼마나 오래 붙잡혀 있었을까.
미쳐버린 남자는 선영의 시체를 가리키면서 실실 웃고 계속 중얼대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그 남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She is lucky... She is lucky...
by 받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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