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고무신을 신고 오신 선생님 졸업을 앞둔 중학교 3학년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 지게를 세워놓고 땔감을 준비하고 있는데 영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흰 고무신을 신고 찾아오셨다. 당시 학생회 간부였던 나는, 부끄럽다거나 싫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누추한 집으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선생님의 방문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바위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던 선생님께서는 누런 월급봉투를 통째로 내밀며 부모님과 상의해서 진학 준비를 서두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3년 간 학비 일체를 책임질 테니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엉겁결에 봉투를 받아든 나는, 집에 들렀다가 가시라는 말도 못한 채 멀어져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날 밤 나는 잠을 못 이루며 갈등했다. 결국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힘으로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나는 다음날 아침, 선생님께 월급봉투를 돌려드렸다. 졸업 후 1년 동안 서울에서 주경야독하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게 되자 공부를 그만두고 가족을 돌보았다. 그 후 내가 군 생활을 마치기까지, 가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 군에서 제대한 후에도 우리 가족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다행히도 지난날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모든 일이 잘 풀려 사십을 훌쩍 넘긴 지금은 그 시절에 쓴 빛바랜 일기장을 들춰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깊고 넓은 사랑과 관심을 선생님으로부터 받았고, 그 사랑은 내 삶을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몇 년 전, 선생님이 경상도 밀양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로 인사를 드렸더니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선생님은 옛날의 그 일을 기억하고 계셨다. 지금도 졸업과 입학의 때가 되면 흰 고무신을 신고 찾아오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할때면 혼자 눈물짓곤 한다. - 강 윤 휘 - -----------------------------------------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은 선생님의 진심어린 격려의 말씀과 신실함을 보여준 제자사랑의 행위는 뭉클한 감동이 되어 가슴을 울립니다. 오늘은...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신 존경하는 선생님께 전화 한번 드려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