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인이 주는 촌지의 변천과 무상함에 대하여 입력 :2007-02-27 12:17:00 서영석 정치전문기자 (
[email protected]) 나는 촌지의 변천과 무상함을 몸으로 느낀 사람이다. 물론 광주학살범 전두환이 집권한 다음에 기자가 됐기 때문에, 그 이전의 일들은 잘 모른다. 선배들로부터 들은 전설(?)로만 알 뿐이다. 그러나 촌지의 변천을 몸으로 느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김영삼이 집권한 이후부터 촌지는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드디어 이 정권 들어와서는 촌지가 "음지에서만 기생하는" 음습한 뒷거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최소한 표면에서는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정치인들이 주는 촌지는 천차만별이었지만, 대략 20만~10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 물론 많이 받아먹었다. 나도 당시에 기자생활을 했고, 남들 다 받는데, 나만 안 받는다고 해서, 나름대로의 조직 풍토(?)에 물을 흐리는 식의, 튀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달라고 해본적은 없다는 점, 갖다 바치는 촌지만 받았다는 점을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다. 당시 한겨레신문이 창간됐던 시점인데, 처음에는 분명하게 촌지를 받지 않았다. 아니, 거절했다. 신선했다. 그러나 다른 언론사에 영향은 주지 못했고, 확인은 못했지만 정치권의 풍문으로는, 한겨레신문 기자도 뭐 그렇고 그렇게 된 것 아니냐는 식의 얘기를 들은 기억은 있다. 정치권에서 받는 촌지는 대략 두가지로 구분됐다. 정당에서 공식적으로 주는 촌지가 있었고, 정치인들이 개별적으로 챙겨주는 촌지다. 정당에서 공식적으로 주는 건 거의 월급이나 다름없었다. 3당 합당 이후 형편 어려운 평민당에서는 기자당 월 10만~30만원 선있던 것으로 기억되고, 형편 좋은 민자당의 경우 30만~50만원 선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같은 당에서도 액수가 차이나는 것은 출입기자들이 한 신문사에서도 적게는 2명, 많게는 5~6명에 이르렀기 때문에 차등을 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액수가 별 것 아닌 것 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은 엄청난 돈이다. 당시 민자당에서는 전국 규모의 신문 방송 통신의 출입기자, 그리고 사진 및 카메라 기자의 총수가 거의 200명에 육박했다. 1인당 월 30만원씩만 지출한다고 해도 월 6000만원이 든다. 1년이면 7억 2000만원이다. 그 뿐인가. 각종 식대, 향응비, 편의시설 이용비 등은 이 액수를 서너배 능가한다. 뿐인가. 신문사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등등 대접해야 할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절대로 그대로 넘어가지도 못할 뿐더러 출입기자 수준과는 다른 촌지가 들어간다. 지방지는 또 어떻고!! 그러니 총액이 얼마나 됐을까 짐작도 어렵다. 연간 수십억원 수준은 너끈히 됐을 것이다. 물론 이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에게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에서 충당됐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형편이 이러하니, 민자당 흉내라도 내야할 판인 평민당에서는 그야말로 가랑이 찢어졌다. 나는 야당을 오래 출입했기 때문에 어떤 때는 한 30만원 받아먹은 적도 있었는데, 사실 좀 미안키도 했었다. 정치인이 개별적으로 챙겨주는 것도 두가지로 나눠진다. 유력한 정치인들은 매월 월급처럼 촌지를 준다. 가령 민자당 시절에 넘버 투맨(내가 소속된 회사의 민자당 출입기자 5명 가운데 서열 2위란 뜻이다)이었던 나는, 지금은 작고한 허주(김윤환 전 의원의 아호)로부터 매월 50만원씩 받아챙긴 기억이 난다. 새정치국민회의 시절에 월 50만원씩 챙겨준 사람은 권노갑 당시 최고위원(직함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이었다. 허주는 빳빳한 새돈으로 50만원을 봉투에 넣어줬는데, 권노갑 전 의원은 언제나 헌돈으로 50만원을 챙겨줬다. 그래서 같은 액수인데도 허주의 봉투는 얇았고, 권노갑 전 의원의 봉투는 항상 두툼했었다. 유명하지 않은 정치인들은? 명절이나 건건이 준다. 국회 대정부질문을 하는데 크게 좀 써달라는 의미로 촌지를 갖다 바친 모 의원이 지금은 유력한 야당의 최고위원을 역임하기도 했었다. 액수는 대략 20만~50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명절 때는 한 50만원 쯤 준다. 명절 때 하니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13대 국회, 3당 합당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90년 새해였겠지. 4당 시절이니 각당에서는 출입기자들 명절 떡값을 챙겨줬다.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나는 신민주공화당을 출입했는데, 수입이 짭짤(?)했다. 신민주공화당은 제4당이어서 나 혼자 출입했는데, 당시 김종필 총재, 최각규 사무총장, 김용환 정책위의장, 이희일 비서실장(모두 3당합당후, 혹은 DJP연합후 부총리 장관 등을 역임했었다) 등 기라성 같은 거물(?)들이 있었고, 모두 3공화국 시절 한 촌지 했던 분들이라 인심이 후했기 때문이다. 민정당은 아마도 박태준 씨가 대표최고위원을 하고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양 김씨가 나란히 2당과 3당 총재였다. 다들 자기 출입기자들을 서열순대로 30만원~100만원씩 챙겨줬을 것이다. 물론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들은 따로들 챙겨주는 낌새였다. 놀랄 일은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는 통일민주당 출입기자뿐만 아니라 전 언론사 출입기자들에게 명절 떡값을 돌리는 사상 초유의 만행(!)을 저질렀다. 인심후하기론 역시 김영삼이 제일이라니까. 그가 기자들에게 제일 인기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영삼 장학생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요즘 기자들 들으면 기절할만한 이 봄날은 김영삼의 집권으로부터 서서히 몰락기로 들어선다. 김영삼이 집권하기 전에는 자기가 제일 촌지 많이 돌렸으면서도, 대통령이 되자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지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정확히 언제였던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실제로 김영삼의 금융실명제가 기자들의 촌지 시장(?)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어느 정치인이 집팔고 논팔아 기자들에게 촌지 줬겠는가. 다 검은 돈 아니면 국고보조금이지. 금융실명제로 인해 검은 돈 만들기가 어려워지자 기자들의 촌지시장에도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졌다. 물론 김영삼의 측근인 홍 머시기, 이 머시기 등은 친한 기자들에게 여전히 촌지를 돌렸다. 촌지 금지령이 내려지자 우스운 현상이 벌어졌다. 즉 부익부 빈익빈이 그것이다. 공개적으로 촌지를 못 주니까 음성적으로 주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이른바 "약발"있는 유력지 기자들에게 촌지가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약발 있는 유력지 기자가 아니었으나, 한편으로는 못 말리는 기자, 친한 기자 반열에 들어서여서인지, 그런대로 중간은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DJ 집권시에도 하락세는 계속됐다. 물가는 오르고 월급도 오르는데, 촌지는 별로 올라갈 줄을 몰랐다. 금융실명제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몰아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IMF의 후유증도 무시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권노갑이나 박지원 정도의 실력자가 돼야 기자들에게 공개적인, 혹은 집단적인 촌지를 돌릴 여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정권 들어와서는 완전히 시장이 죽었다는 풍문만 듣고 있다. 이제 나는 현장기자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딱 한번 대통령과 비공식 면담한 일이 있었는데, 무슨 기념품 하나도 안주는 걸 보면, 대략 짐작이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끔씩 재계의 유력자가 정치권에 입문하면, 촌지 시장은 풍년이 드는 격이다. 정주영 씨의 국민당이 그랬다고 한다. 당시 국민당 출입기자들은 상당히 풍부한 촌지시장의 혜택을 누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불행하게도(?) 나는 당시 정치부에서 밀려나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기술할만한 정보가 없다. 아마 이명박 씨가 정치권에 입문했던 때도 그랬을 것이다. 김유찬 씨가 한 40명 관리하면서 월 4000만원 썼다고 하는데, 뭐 이게 그리 크게 지출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물론 당시 나는 정치부 기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추리로만 하는데, 40명 관리했다 함은, 당시 신한국당 출입기자 가운데 자신의 담당기자들과, 카메라및 방송기자들을 헤아려 보면 대략 그 정도 될 것 같다. 촌지로 월 30만~50만원 줬을 것이고, 회식대, 룸싸롱 접대 등등을 감안하면 한 4000만원 정도 들지 않을까 싶다. 룸싸롱 하니까 생각난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절까지 정치인들과 한잔 한다면 모두 룸싸롱을 갔다. 룸싸롱 가면 1인당 평균 100만원은 들지 않았을까. 발렌타인 17년산 폭탄주는 기본이었으니까 말이다. 한번 가면 보통 10명 정도 어울려서 가니, 한큐에 1천만원이 후딱 날아간다. 김대중 시절엔 단란주점으로 격하되더니, 이 정권 들어와서는 포장마차로 격하됐다고 한다. 성접대... 내가 겪은 바로는 정치권에서 공식적인 성접대는 없었다. 룸싸롱 가서 한잔 들어가면, 꼭 그것(?) 밝히는 사람이 있을 법한 일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개별적으로 무슨 접대가 있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공식적으로는(여기서 공식이라 함은 집단적이란 것을 의미한다. 성접대가 무슨 좋은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까발리겠는가) 없었다는 얘기다. 내 개인적으로 술이 약해서, 폭탄주 몇잔 들어가면 인사불성이 되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일을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 결론으로 가 보자. 정치인들이, 혹은 정당들이 왜 이런 촌지를 돌렸을까. 왜 이런 향응을 제공했을까. 결론은 한가지다. 펜대를 놀리는 기자들을 관리함으로써(기자들 스스로는 절대 관리당한다고 생각지 않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쓰게 만들기 위해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는 크게 쓰고, 불리한 기사는 축소하거나 아예 빼버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효과가 있었는지는 기자 개별의 영역으로 갈 때 모호해진다. 그러나 집단적으로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전두환이야 돈 뿐만 아니라 몽둥이로 언론을 관리한 인간이니까 예외로 치고... 노태우 김영삼이 노무현 대통령보다 점잖게 얘기하는 사람은 아니다. 실수도 많이 한다. 매우 대통령 답지 않은, 무식한 발언도 무수히 했다. 그러나 이 정권 들어와 조중동이 그야말로 "쌩쑈"를 한 것처럼 보도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 효과가 무엇이었겠는가. 과거 정권은, 기자들에게는 촌지로, 언론사주들에게는 이권으로 관리했다. 물론 권력이 갖고 있는 적당한 채찍도 곁들여졌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검찰의 내사가 바로 채찍에 해당한다. 그래서 끼리끼리 잘먹고 잘살았다. 아무런 문제도 없이 말이다. 그게 바로 권언유착이었다. 이게 촌지에 얽힌 모든 얘기는 아니다.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치권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다. 다음 기회에 또 하겠다. 나는 당시 별 죄의식 없이 촌지 받아먹었다. 촌지 받았다고 개인적으로 펜대 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좋지 않았던 일이며, 이를 공개함에 있어서 기자들을 대신해 독자 여러분들에게 죄스럽단 얘기를 하고 싶다. 당시 기자뿐만 아니라 전 사회가 부패와 촌지의 큰 사슬 속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인으로서 나는 결코 떳떳하지가 못했다. 사과한다. 뱀발... 이명박은 96년 15대 총선 재선에 성공한 뒤 선관위에 약 7100만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당시 종로에 출마한 사람 가운데 꼴찌였던 김을동도 9300만원을 신고했다. 당시 수십명의 인력을 운용했던 이명박이 7100만원을 신고했다는 건 참으로 무식한(!) 짓이었다. 문제를 안고 간 것이다. 결국 김유찬이 폭로하고, 무마하고 해서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말썽이 되고 있으니, 인과의 사슬은 길게 보면 어느 누구에도 용서가 없는 모양이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이 글을 보니 어제 시게에 올려진 '언론은 여론몰이를 하는 양치기 개다.' 라는 글이 이해가 되네요. 자기 밥그릇 뺏어갔으니 좋을 말 써줄리가 없겠죠. ㅡㅡ; 암튼, 조중동이 아무리 저주를 해도... 조금씩 조금씩 깨끗해져가는 나라를 보면서 희망을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