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얀', 아니 '이로운'(28)씨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훔쳤다. 지난 2년의 노력이 억울해서였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과거를 잊고 싶었죠. 그래서 이름까지 개명했는데….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습니다. 제가 에로배우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부모님까지 알아버렸어요."
이로운씨는 케이블채널 Mnet의 '아찔한 소개팅'(이하 아찔소) 제작진을 원망했다. 제발 방송만은 막아 달라고 울면서 사정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기 때문이다. 고작 배려라는 게 음성처리 정도였다. '에로배우'라는 말이 나올 때 잘 안들리게 '삐삐'소리로 가린 게 전부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지난 23일 저녁 몇번의 설득 끝에 이로운씨를 만났다. 어렵게 약속장소로 나온 그녀는 촬영 동안 당했던 서러움을 떠올리며 울고 또 울었다. 당시 아픈 기억을 다시 끌어 낸다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이로운씨는 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부터 '에로배우'라는 사실이 밝혀진 과정, 이후 제작진의 무성의한 태도까지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이로운씨 뿐만 아니라 함께 출연했던 '퀸카' 배수민양과 '킹카' 홍승현씨 역시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제작진의 자극적인 연출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그들은 이로운씨의 괴로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당시 카메라 뒤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가감없이 들려줬다. 배수민양과 홍승현씨에 따르면 '이하얀 사태'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다음은 이로운과 가진 일문일답이다.
☞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이로운 : 3월초에 미니홈피를 통해 쪽지가 왔다. 사진을 보고 의뢰를 했다고 한다. 직업을 묻길래 타투이스트가 되려고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전화통화를 한뒤 밖에서 만나 면접을 봤다. 합격됐다고 연락이 왔고, 그래서 출연하게 됐다.
☞ 에로배우 경력이 알려질 것이란 생각은 안했나.
이로운 : 2005년에 은퇴했다. 지난 2년간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주로 모바일을 통해 화보나 동영상을 찍었기 때문에 업계 종사자 빼고는 거의 못 알아본다. 게다가 지난 2년간 나 스스로도 에로배우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그만큼 평범한 여자로 지냈다.
☞ 어찌됐든 방송을 통해 에로배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운 : 정말 억울하다. 굳이 방송에서 내 전직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일반인으로 살면서 재밌는 경험이 될거라 생각하고 출연했는데 거기서 내 전직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것도 제작진에 의해서다. 만약 방송이 끝난 뒤 내 과거가 밝혀졌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방송 중에 에로배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슈를 그쪽으로 끌고 갔다.
☞ 제작진에 의해서 (과거경력이) 밝혀진 것인가.
이로운 : 원래 '킹카'로 나온 홍승현씨와 3단계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중단됐다. 촬영감독 중 한명이 "이로운 저애 에로배우야. 이하얀으로 활동했어"라고 말하면서 상황이 뒤집힌 것이다. 제작진에 의해 내 과거가 밝혀졌고, 내 이름이 인터넷으로 검색됐다. 그리고 데이트에서 탈락하는 결정적인 사유가 됐다.
☞ 그렇다면 홍승현씨는 이로운씨의 과거를 전혀 몰랐나.
이로운 : 녹화를 끝내고 홍승현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는 전화였다. 승현씨는 그렇게 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승현씨에게 어떻게 내 과거를 알게 됐는지 물었다. 옆에서 촬영감독이 내 에로배우 전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서 알게 됐단다.
☞ 제작진은 처음부터 이로운씨가 이하얀씨인 걸 알았나.
이로운 : 작가나 PD가 내 과거를 알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촬영감독은 내 과거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촬영을 하면서 나만 보면 '킥킥' 웃어댔다. 중간 중간 신경이 쓰였다. 2차 데이트를 끝내고 '속마음'을 따는데 촬영감독이 다가와 "너 나 알지? 예전에 같이 일했잖아"라고 하는 거다. 너무 놀라 심장이 내려 앉는 줄 알았다.
☞ 그럼 그 촬영감독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그랬나.
이로운 : 그래서 감독을 계속 찾았다. 비밀로 해달라고 말하고 싶어서였다. 한편으로는 기대도 가졌다. 같은 업종에서 일했기 때문에 비밀을 지켜줄 거라 믿었다. 원래 에로업계는 의리가 두텁다. 힘든 환경 속에서 고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감독은 승현씨가 3단계로 가겠다는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내 과거를 흘렸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 내 과거를 이용한 것이다.
☞ 홍승현씨가 인터넷으로 '이하얀'을 검색한다. 이것 역시 의도된 것인가.
이로운 : 제작진이 유도한 결과다. 승현씨에 따르면 그는 데이트 도중 내 과거를 직접 물어볼 계획이었다. 한데 제작진 중 일부가 인터넷으로 확인해보자고 했단다. 승현씨는 제작진의 뜻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촬영 분위기가 그렇다. 출연자 한 사람을 제작진 여러명이 둘러싸고 몰아부치듯 이야기를 하면 안따를 수가 없다.
☞ 제작진이 방송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유도하는 부분이 있나.
이로운 : 여지껏 방송에 출연한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속마음'을 딸 때 상대방에 대해 좋게 이야기를 하면 가식적이라고 몰아 부친다. 나쁜말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게 이 방송의 재미라면서 무조건 상대방에 대해 험담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중간 중간 짤라 엉뚱한 장면에 갖다 붙인다. 예를들어 '재수없어요'라는 말을 잘라 엉뚱한 장면에 '재수없어요'를 갖다 붙이는 식이다. 편집의 '묘'로 방송을 자극적으로 만든다.
☞ 촬영장 분위기는 어떤가. 특히 탈락된 이후가 궁금하다.
이로운 : 생각지도 못한 과거 경력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탈락됐다. 어찌나 서럽던지 펑펑 울었다. 내 과거를 폭로한 촬영감독이 너무 미워 그를 찾았다. 그러자 제작진은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며 "그게 더 큰 잘못이다"고 쏘았다. 심지어 한 제작진은 "차라리 직업을 누드모델로 해라. 그게 너를 위해 더 좋다"는 식의 헛소리를 해댔다. 한 사람을 둘러싸고 의도한 방향으로 몰아가는데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제작진 모두 반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촬영 분위기가 상당히 위압적이다.
☞ 촬영이 끝나고 예고편을 통해 에로배우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로운 : 지난 2년간 평범한 여자로 살았다. 스스로도 에로배우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평범하게 살았다. 새출발하겠다는 마음으로 복잡한 절차를 거쳐 이름까지 개명했다. 한데 모든 게 끝났다. 친척은 물론이고 부모님까지 내 과거를 알게 됐다. 죄송스럽다. 학원은 일주일째 안나가고 있다. 밖을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수군거린다. 미칠 것 같다.
☞ 방송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로운 : 울면서 사정했다. 인권침해가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방송을 안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이름이라도 빼달라고 했다. 최대한 훈훈하게 편집해주겠다고 했다. 물론 '이름'과 '에로' 부분이 '삐'소리로 처리되긴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미 알고난 뒤다. 아무 소용없었다.
기자는 배수민양과 홍승현씨를 통해 당시 분위기를 전해들었다. 우선 배수민양과의 일문일답.
☞ 당시 상황을 알고 있었나.
배수민 : 전혀 몰랐다. 눈치도 못챘다. 사실은 언니(이로운)와 함께 3단계로 진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촬영이 중단됐고, 오빠(홍승현)가 언니를 탈락시켰다. 잠시후 감독이 오더니 '미안하다'며 오빠의 등을 두드리고 갔다. 촬영이 끝난 뒤 오빠로 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 왜 미안하다고 했을까.
배수민 : 제작진의 유도가 있었을 것이다. 오빠는 (이하얀이라는 이름을) 검색까지 해서 탈락시킨게 미안하다고 했다. 촬영을 하다보면 제작진이 원하는 대로 분위기를 몰고 가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 오빠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한 것 같다.
☞ 분위기를 몰고 간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배수민 : 시청률을 올리려는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가끔 자극적으로 몰고 간다. 같이 출연한 몇명을 아는데 그 중 일부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신고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다들 기분이 안좋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를 위해서 출연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극적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강요는 아니지만 유도하는 경우는 많다. 특히 '속마음' 멘트를 딸 때 더 그렇다.
☞ 여자 입장에서 이로운씨의 마음을 이해하는가.
배수민 : 언니가 얼마나 힘들지 알 것 같다. 여자 입장에서 치명적인 과거가 공개됐으니…. 나 같으면 죽고 싶겠다. 사실 그냥 탈락시켰어도 충분했다. 오빠는 언니의 과거를 전혀 몰랐다. 왜 굳이 제작진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서 탈락시켰는지 이해가 안된다.
다음은 홍승현씨와의 대화다.
☞ 이로운씨가 에로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홍승현 : 전혀 몰랐다. 나중에 촬영감독이 후배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알게 됐다. 3단계로 가자는 결정을 한 뒤였다. 순간 촬영감독이 후배를 부르더니 "너 저 애 몰라. 에로배우잖아. 예전에 작업 같이했는데" 등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때 이로운씨의 과거를 알게 됐다. 하지만 믿진 않았다.
☞ 결국 검색하지 않았는가.
홍승현 : 에로배우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냥 3단계 데이트 중에 물어볼 생각이었다. 한데 제작진 중 누군가가 옆에 인터넷 되니깐 검색해보자고 말했다. 같이 가서 검색을 했다. 검색창에 '이하얀'을 치니까 바로 뜨지 않았다. 찾기가 힘들었다. 잠시 후 옆에 있던 제작진이 새로 검색하니 관련 블로그가 떴다. 사진 몇장이 나왔는데 솔직히 그때도 긴가민가했다.
☞ 원래는 이로운씨와 3단계 데이트를 할 생각이 있었나.
홍승현 : 3단계로 가기로 했다. 한데 제작진이 '스톱'을 걸었다. 덩치 좋은 촬영감독이 와서 "왜 이렇게 방송을 재미없게 하느냐. 이렇게 해서는 분량 못채운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 촬영감독은 처음부터 고압적이었다. 반말을 해서 그런지 분위기는 더 험악했다. 내 생각이 바뀌지 않자 이로운씨의 과거를 흘렸다. 에로배우 경력은 내 판단을 바꿀만 한 중요한 요소였다.
이로운씨는 지난 2년간 평범한 여자로 살았다. 미술학원을 다니며 타투이스트가 되기 위한 단계를 차근 차근 밟고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재미삼아 출연한 방송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악령이 됐다. 요즘 이로운씨는 두문불출하고 있다. 그녀의 소원은 단 한가지다. 8방까지 계획된 재방송이라도 막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방송이 나간 뒤 부모님은 아직까지 아무 말씀도 안하세요. 그게 더 힘듭니다. 차라리 화라도 내시면…. 한 사람의 과거가 방송의 재미와 바꿀 수 있을 만큼 하찮은 건가요? 재미를 위해서라면 제 과거와 현재 미래는 전혀 상관없나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방송을 막을 겁니다. 끝까지 싸울 겁니다. 제2, 제3의 이하얀이 생겨서는 안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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